풍계유고를 바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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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계유고를 바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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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8.06.03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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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년섭(수필가, 칼럼위원)

| 중앙신문=중앙신문 | 장황하게 늘어놓는 남의 집 글은 얼른 눈이 안 가고 억지로 읽자면 지루하며 따분하다. 잘 알면서도 내 조상 얘기를 꺼내어 우를 범하는 건 이번이 아니면 기회가 없어서이다.

풍계유고(楓溪遺稿)라는 책이 이 세상에 있다는 걸 안 지 채 한 달이 안 된다.

그 책은 나의 13대 조부 호 풍계 자 평중 (宋國準 1588선조21-1651효종2)할아버지께서 쓰신 글, 시 183수, 서(序) 1편, 제문 2편, 부(賦)1편, 책문(策文)1편, 부록으로 시 5수, 묘표 1편을 수록한 2권 1책 석인본(石印本)이다. 1권이 123쪽이고 2권이 96쪽이니 보통 보는 고문서와 비슷한 크기이다. 제목에서 보듯이 할아버지께서 직접 만드신 것이 아니고, 10대손-나에게는 증조부 되는 항열- 여러분이 흩어져 있던 것을 모아서 1929년에 제작한 것이다.

풍계공은 아버지 송월재 희득(松月齋 希得 1571-1603)공과 어머니 한산이씨(목은 이색선생의 9 대 손녀)사이에 2남3녀중 장남으로 태어나 37세의 늦은 연세에 사마시에 합격하였고 3년 후 문과에 합격하여 관직에 나가셨다.

대대로 높은 관직에 오른 분은 드물었지만 문풍(文風)이 가득했던 집안이라 인성(人性)이 올바르고 분수에 안주하여 사람을 널리 사귀지 않았는가 하면 관직에 있을 때 상관에 아부하지 않고 하관과 패거리를 짓지 않았기 때문에 벼슬살이 수 십 년이 되었으나 전답이나 노복이 늘지 않았고 주위로부터 평판이 좋았다. 조상으로부터 깨끗한 절개와 드러난 덕행을 이어 받아 출세를 위해 달리지도 않고, 경쟁하지도 않았다(우암이 지은 풍계공 묘갈명중에서).

성균관 전적, 병조좌랑, 예조정랑을 지내셨다. 벼슬을 살되 승진에 뜻을 두지 않아 관직에서 물러나 있을 때, 1636년 병자호란이 발발하였다. 인조임금께서 남한산성으로 피난하시자 박중영, 이영현, 윤집 등 지사들과 의병을 일으켜 밖에서 항쟁하였으나 인원, 군비 등 힘이 턱없이 부족하여 만족스러운 성과를 거두지는 못하였을 것이다.

전쟁와중에서도 시나 글을 쓰시어 참담한 심경을 표현 하셨는데 책 두 권의 분량이 된 것이다. 나라가 망할지도 모르는 긴박한 상황, 무관도 아닌 힘없는 사대부의 절개만으로는 어림없는 전쟁, 국방을 제대로 하지 못한 자괴감, 전쟁의 참상을 적은 글들이다. 후세에 부끄럽지 않은 처신을 하신 할아버지는 존경받아 마땅하다.

전란 후 다시 관직에 임명되어 통훈대부, 상의원정, 부평부사를 지내시다가 양양부사로 재직 중 64세에 돌아 가셨다.

묘지는 여주시 대신면 하림리 뒷산인데 비문은 좌의정이던 우암께서 지으시고 글씨는 당대의 명필이었던 곡운 김수증(1624-1701. 영의정 문곡 김수항의 형)청풍부사께서 썼다. 나에게 우암할아버지(1607선조40-1689숙종15)는 방계 12대조가 되시는 어른으로 풍계공의 조카가 되신다.

여주에는 10대조이상 입향조(入鄕祖) 가문이 48성씨가 된다. 우리 송가도 13대 조부께서 여주에 자리 잡은 후 양반자리를 지키며 지금껏 가문을 이어오고 있다.

우연한 기회에 이 ‘풍계유고’ 책이 연세대학교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는 걸 알고 언론사에 있는 집안 아저씨에게 이 책을 반출하여 복사본으로 만들어 세상 빛을 보게 하려고 의논하였다. 반출하여 복사본으로 만들려던 생각은 연세대 관계대학장과 도서관장에게 떼를 써도 반출은커녕 열람도 안 된다는 규정에 막혀 유리 상자에 모셔진 원본을 겉표지나 구경하게 되었다. 억울하다. 그분들의 조언을 받아 국립중앙도서관에 CD형태로 사본이 보관중인 것을 확인하였으나 그곳에서도 마찬가지, 반출이 안 된단다. 가까스로 사본을 제작하여 여주문화원, 여주향교, 종가에 보관본을 배포하고, 시제 모실 때 할아버지께 경과를 보고하며 헌정 하였다. 책의 내용이 한글은 하나도 없이 모두 한자이니 읽기는 하되 번역이 안 되어 막막하다. 여주향교에 들러 하소연을 하며 부탁을 드리니 권오열 전교께서 일부 번역을 해 주셨다.

才乏萬人敵 無名一藝成 재주 없음은 만인의 적이지만 이름 없이도 한 재주를 이룰수 있고,

饑寒須斗料 ?到笑吾生 춥고 배고파 한 말의 식량을 기다리니 노쇠한 내 생은 비웃음 꺼리구나.

聯壁存交分 桃燈見舊情 구슬을 꿰듯 교분을 지키니 도원등 같은 옛정을 보네

時危迷死所 莫惜酒尊傾 시대가 위태함에 죽을 곳 몰라 헤매니 술잔 기우림을 아끼지 말라. (시 次隣友 번역)

예나 이제나 국방의 중요함은 다를 바 없고 공직자의 마음가짐은 백성들에게 귀감이 되어야 한다. 책을 번역하여 후대에 남겨야 하는 숙제가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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