깬 돌에서 카드까지, 그리고 금도끼에 대한 회상
상태바
깬 돌에서 카드까지, 그리고 금도끼에 대한 회상
  • 중앙신문  webmaster@joongang.tv
  • 승인 2018.05.31 16:56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상국(수필가, 칼럼위원)

| 중앙신문=중앙신문 | 기차를 타고 휴가를 떠나며 우리들은 ‘지갑을 들고 “괜찮아, 괜찮아”하다 수렁에 빠져버리는 청년’을 그린 TV 공익광고에 대하여 ‘지갑을 카드로 해야 한다’와 ‘카드는 지갑에 들었으니 그대로 좋다’는 의견으로 엇갈려 논쟁을 벌이고 있었다.

하루에 수도 없이 신용불량자를 만들고, 부모 자식 간의 인연을 끊게 하기도 하며, 자살을 강요하는 카드의 정체는 무엇일까.

카드에 얽힌 인간사를 들추어보자. 동물 중 가장 나약한 인간 최초의 조상이 맹수에게 돌을 던진다. 깬 돌, 깬 돌은 원숭이나 침팬지라도 던질 수 있고, 들고 때릴 수도 있어 인간을 동물과 구분할 필요를 느끼지는 못해, 이 깬 돌에 관하여 사학자들은 구석기시대라 칭한다.

맘모스, 공룡, 코끼리, 호랑이, 승냥이, 하이에나, 지나가던 들개마저 우습게 아는 동물이 인간이지만, 이 별 볼 일 없는 인간이 돌을 갈기(磨) 시작한다.

간 돌 ― 어깨와 팔, 손목의 합동행위로 파괴하는 과정에서

1. 유효한 원심력을 최대로 발휘할 수 있는 거리의 확장을 도끼 자루의 길이로,

2. 내려찍어 빼거나 들어 올릴 때, 힘의 역학은 지레의 원리로,

3. 힘의 최대 집합점이며 적과 최초로 충돌하는 표면적을 극소화하기 위하여 날(刃)을 세우니 에너지 효율이 극대화 된다. 역사학자들이 말하는 신석기시대 ― 인간 탄생의 순간이다.

간 돌은 이성이며, 슬기이다. 간 돌로 사냥하고 채취하니 동물의 대열에서 벗어나, 만물의 영장이 된다.

간 돌은 동물과 인간의 격차이며, 과학이고, 기술이다. 냉장고, TV, 컴퓨터, 비행기, 자동차, 잠수함, 스커트 또는 패트리어트 미사일, 라디움, X선, 핵무기, 원자력…. 이 모든 문명 이기물(利器物)의 조상이 간 돌이다.

간 돌로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을 알아내고, 대양을 횡단해 신대륙을 발견하며, 제국주의와 세계 대전, 이념의 푯대, 매카시즘…. 달나라, 화성, 천왕성, 목성, 해왕성, 인공위성이 지구를 휘돌아 인간 하나하나 일거수일투족 감시하기도 하는…. 이렇게 쉴새없이 달려온 간 돌의 인간은 과거로 돌아갈 수 없다. 과거는 향수일 뿐이다.

“아름다운 과거로 돌아갈까요. 전기장판이나 에어컨, TV, 라디오, 자동차, 카메라, 밥솥, 치약, 칫솔, 샴푸… 진화된 문명 ― 금도끼는 압수합니다. 참나무장작이나 청솔 가지로 군불 지피고, 인력과 축력(畜力)만으로 농사지어야 하며, 비닐이나 제초제 사용은 금(禁)합니다. 관솔불로 불 밝히며, 언 손 화롯불에 녹여가며 살 사람. 자연보호를 외치며 물질문명에 진저리치던 분 안 가시겠습니까.”

인간성 회복이 어쩌고저쩌고, 자연보호를 목 터지게 부르며 과거가 아니면 죽을 것처럼 엄살떨지만, 우리는 더 나은 간 돌의 세계, 미래로 미끄러져 들어가고 있다.

간(磨) 돌의 역사 ― 나무꾼이 산신령으로부터 금도끼를 하사받는 순간 세상은 일변한다. 비닐하우스, 멀칭(mulching), 살균, 살충제와 제초제가 촉성재배(促成栽培)와 농업의 생력화(省力化)를 가속하고, 자동화된 산업은 밤을 세워 가동해, 무진장 쌓인 산물(産物)로 세계 공황을 맞아, 죽을 고비를 당해 회의하며 자각한다.

원시인은 무엇이 다를까. 원시인에게 고성능 기계톱을 선물해 보자. 원시인이 기계톱으로 밀림을 벌채해, 돈 벌어 떵떵거리고 살 것이라 생각하면 오산이다. 원시인은 오늘 쓸 만큼만 나무를 자르고, 남는 시간은 낮잠으로 낭비할 것이다. 내일 비가 오거나, 꽁꽁 얼면 벌채를 못해 죽을지 모른다는 위기감이나 저축의 개념이 없다. 날아가는 새들이 양식이나 잠자리를 탐하거나 걱정하지 않는 것처럼.

탐욕의 인간은 생산을 중단할 수 없다. 금도끼(생산체계)를 가동하면서, 유통체계를 개량한다. 슈퍼마켓, 세븐일레븐, 이마트, 끝없이 쌓아 놓은 상품…. 선택의 기로에 선 현대인.

등 뜨시고 배부르면 해결되던 절대 빈곤의 시대가 아니다. 남이 마티즈 탈 때, BMW 타야 제 맛이 나고, 먹는 것도 맛있고 살 안 찌고 오래 사는 고품격 식품이어야 하며, 임금님이나 누리던 레저 문화를 만끽하고, 에어로빅으로 가꾼 탱탱한 몸매를 자랑해야 살맛 나는 다양한 욕망의 세상으로, 상대적 빈곤이 욕망을 들추어내고. 부채질하며 키우는 자본주의 사회이다.

자본주의 사회는 필요한 것만 사서 쓰는 촌스러운 시대가 아니다.

무조건 ‘안 쓰고, 안 먹으며 돈 벌다’간 왕따 되어 먼저 죽는 수가 있어.

“네가 내 물건 사주니, 너에게 보험 들어준다.” 얽히고 설킨 세상이다.

현대주식회사의 물건 안 사주면 연결된 중소기업이 무너지고, 그 기업에 목숨 걸린 형제가 눈에 밟히니, 안 살 도리가 없다.

기왕에 써야할 돈이라면, 기분좋게, 위신과 권위, 대접받는 느낌, 상징적 가치, 차별화, 유혹의 기호가치로 물건을 사고 소비한다. 소비의 가속화를 부추기는 카드가 등장하니, 외상 구매로 소비패턴의 주기(週期)가 한 바퀴 이상은 더 빨리 돌 것이다.

심각하기만 했던 우리들의 대화는 TV의 현란한 광고 속에 묻혀버렸다. 평생 도(道) 닦아 유명해진 분도 TV에 방영되고나니, 몇 번 TV에 나오느냐가 궁극적 인생 목표로 전락한다.

서비스에 길들여진 우리들은 사회보장제도, 연금, 수당이란 명목으로 복지 단체에 편입되어 가고 있다. 즉 우리들은 작아지던가, 사라져 가고 있다. 그 과정을 ‘비대한 국가와 가난한 개인’으로 충만한 선진국에서 읽는다.

과거 금도끼로 만든 ‘생산중심체제’에서 ‘소비중심체제’로 변해버린 이 시대는 말한다.

“적절하게 쓰십시오.”

옆에 있던 카드 회사, “건전한 소비문화를 창조하자.”

그러나 뒤집어 보면

“팡팡 써라.”

“카드 박박 긁어라”로 읽어야 한다.

우리의 논쟁은 ‘꼭 카드뿐 아니라 돈에도 문제 있으니 지갑이라도 좋다’는 의견으로 기울어질 때, 홍익회원이 판매기를 밀고 들어오다, 기차가 커브 길로 들어서자 기우뚱 하는 바람에 비틀하며, “잡수시고 싶은 것 팍팍 잡수세요. 돈 아끼려고 먹고 싶은 것 참다 병 생깁니다”하며 씽긋 웃는다. 그는 새로운 호객 행위에 익숙해지지 않았기 때문일까, 소비사회의 요술 ― 욕망의 기호학이 낯설기 때문일까.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
  • [단독] 3년차 의정부시청 여성 공무원 숨진 채 발견
  • 박정 후보 유세장에 배우 유동근氏 지원...‘몰빵’으로 꼭 3선에 당선시켜 달라 ‘간청’
  • 감사원 감사 유보, 3년 만에 김포한강시네폴리스 산단 공급
  • [오늘 날씨] 경기·인천(20일, 토)...낮부터 밤 사이 ‘비’
  • [오늘 날씨] 경기·인천(24일, 수)...돌풍·천둥·번개 동반 비, 최대 30㎜
  • 1호선 의왕~당정역 선로에 80대 남성 무단진입…숨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