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으로 봤다] 초겨울로 물든 '천년고찰 신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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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으로 봤다] 초겨울로 물든 '천년고찰 신륵사'
  • 김광섭 기자  kks@joongang.tv
  • 승인 2023.11.13 2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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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변 위치, 보기 드문 사찰 '경관 수려'
여주팔경의 첫 번째 '신륵모종'의 무대
천년고찰 신륵사의 일주문이다. 일주문(一柱門)은 사찰에 들어서는 산문 가운데 첫 번째 문을 뜻한다. 일주문엔 '봉미산신륵사'라고 새겨져 있다. 이 글자는 아마 신륵사가 여주 봉미산자락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새겨놓은 것 같다. (사진=김광섭 기자)
천년고찰 신륵사의 일주문이다. 일주문(一柱門)은 사찰에 들어서는 산문 가운데 첫 번째 문을 뜻한다. 일주문엔 '봉미산신륵사'라고 새겨져 있다. 이 글자는 아마 신륵사가 여주 봉미산자락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새겨놓은 것 같다. (사진=김광섭 기자)
신륵사 일주문 양쪽 기둥에 새겨진 글.
신륵사 일주문 양쪽 기둥에 새겨진 글.

| 중앙신문=김광섭 기자 | 13일 오후 초겨울 빛으로 물들고 있는 천년고찰 신륵사를 찾았다.

천년고찰 신륵사가 전하는 신륵사의 역사에 따르면 신륵사는 신라 진평왕 때 원효대사가 창건한 것으로 되어 있다. 어느 날 원효대사의 꿈에 흰 옷을 입은 노인이 나타나 지금의 절터에 있던 연못을 가리키며 신성한 가람이 설 곳이라고 일러준 후 사라지니, 그 말에 따라 연못을 메워 절을 지으려 하였으나 뜻대로 잘되지 않았다.

이에 원효대사가 7일 동안 기도를 올리고 정성을 들이니 9마리의 용이 그 연못에서 나와 하늘로 승천한 후에야 그곳에 절을 지을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이곳에 절을 짓기가 어려웠던 사실을 전하는 전설일 뿐 정확한 문헌사료가 없어 창건의 유래를 확실히 알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또한 절 이름에 관한 유래로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하나는 고려 우왕 때 여주에서 신륵사에 이르는 마() ()이라는 바위 부근에서 용() ()가 나타나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자 나옹선사가 신기한 굴레를 가지고 그 말을 다스렸다는 설화에서 유래했다는 설이다. 또 하나는 고려 고종 때 건너편 마을에 용마가 나타나 걷잡을 수 없이 사나우므로 이를 사람들이 붙잡을 수 없었는데, 이때 인당대사가 나서서 고삐를 잡으니 말이 순해졌으므로 신력으로 제압하였다 하여 신력의 신()과 제압의 뜻인 륵()을 합쳐 신륵사(신륵사)라고 하였다는 것이다.

예로부터 농경사회에서 용은 물의 변화신으로 여겨져 왔다. 이처럼 용과 관련된 설화는 신륵사가 강가에 있음으로 해서 생겨난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홍수와 범람이 잦은 남한강의 자연환경과 지역적 단점을 극복하기 위하여 옛 선인들이 이 절을 세우고 강을 돌본 것에서 이러한 설화가 생긴 것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며 그 속에서 한국의 자생풍수에 따른 비보 적인 의미 역시 부여되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조선 초기 학승인 신미의 제자였던 김수온은 "여주는 국토의 상류에 위치하여 산이 맑고 물이 아름다워 낙토라 불리었는데 신륵사가 이 형승의 복판에 있다"라고 칭송하였다.

이렇듯 풍광이 뛰어난 곳에 위치한 신륵사는 남한강 상류인 여강의 물이 감싸 안은 나지막한 봉미산 남쪽 기슭에 자리 잡은 고찰이다.

일반적으로 많은 사찰들이 깊숙한 산속에 자리 잡고 있는 것에 비해 신륵사는 푸른 물줄기와 드넓은 모래벌판, 그리고 넓은 들판을 바라보고 있는 곳에 위치하고 있다.

고려 때에는 신륵사 내 동대위에 신륵사는 푸른 물줄기와 드넓은 모래벌판, 그리고 넓은 들판을 바라보고 있는 곳에 위치하고 있다.

고려 때에는 신륵사 내 동대 위에 서 있는 전탑 때문에 벽 절이라 부르기도 하였다. 신륵사는 창건 이래로 보제존자 나옹 화상과 같은 고승대덕이 지냈던 곳이며 더불어 그 경관이 뛰어난 사찰로 이름이 높다.

조선후기 문인 김병익은 신륵사중수기(1874)에서 신륵사의 명성을 다음과 같이 서술하였다.

[절은 세우고 폐하는 것이 세상의 가르침이 될 수 없거니와 유학자로서도 이를 위하여 노력할 일은 아니지만, 절은 폐하지 못하는 이유는 그 고적이 명승지로 이름 높은 곳이기 때문이다. 신륵사라는 절은 고려시대의 나옹이 머물러 있었으며 항상 아름다운 경치는 물론이고 또한 높은 탑과 오래된 비가 늘어진 것이 예스러워 목은을 비롯한 여러 문인들이 시로써 그 아름다움을 칭송하였다. 여주는 산수가 청수하고 그윽하며 또한 평원하고 조망이 좋으며, 이와 더불어 신륵사는 높고 서늘한 것이 겸하여 있으니 그 경치가 절승 한 지경과 같다. 오직 이 두 가지 이유로 온 나라에서 일컬어 온지가 이미 천년이나 되었으니 비록 내가 절을 세우지 못할망정 폐할 수 있겠는가.]

이와 같이 신륵사와 여주의 뛰어난 경관이 전국에 알려진 지 천년이나 되었다는 기록으로 보아 여주와 신륵사의 아름다움은 한 시대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여주의 아름다운 경치 여덟 가지를 들어 여주팔경으로 일컬으며, 그 첫 번째가 바로 신륵사에서 울리는 저녁 종소리인 것(신륵모종)을 보면 여주에서도 신륵사는 수승한 경관과 오랜 역사로 인하여 여주 사람들이 귀하게 여겨온 곳임을 알 수 있다.

신륵사 템플스테이장.
화려했을 오리 모양의 꽃장식, 지금은 많이 시들어 있다.
기념사진을 찍을 수 있게 만들어 놓은 꽃장식.
신륵사 불이문.
보제루 정자.
보제루 정자에서 바라본 남한강 전경.
구룡루 전경.
600년 된 은행나무.
600년 된 은행나무에 기도하는 사람들.
600년 된 신륵사 은행나무에 다가운 햇살이 비추고 있다.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28호인 신륵사 극락보전.
600년 된 신륵사 향나무.
보물 제480호인 신륵사 조사당.
보물 제229호인 보제존자석종비.
보물 제231호인 신륵사 보제존자석종 앞 석등(앞)과 보제존자석종(뒤)
신륵사 원구형석조승탑.
신륵사 팔각원당형 석조승탑.
삼성당.
다층전탑과 참나무.
보물 제226호인 신륵사 다층전탑.
신륵사 대장각기비.
강월헌과 삼층석탑.
경기도문화재자료 제133호인 삼층석탑.
남한강을 바라보고 있는 삼층석탑.
삼층석탑.
신륵사 600년 된 은행나무에 만들어진 관세음보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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