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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8.05.23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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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국(수필가, 칼럼위원)

| 중앙신문=중앙신문 | 월출산 정상 천황봉에서 내려다보는 야경은 은하수를 뿌려 놓은 것 같다.

칠흑 같은 밤, 월출산에 별이 뜬다. 장마철이지만 기사의 변화가 심해 언뜻언뜻 별빛을 드러낸다. 반달이 기웃거리며 지우기도 하지만, 공해 속에서 보던 별에 비할 수 는 없다. 푸르름을 머금은 청초한 별들.

요즘은 전깃불로 별을 잊은 지 오래다. 지천으로 깔린 전등으로 별은 빛을 잃었다.

영동고속도로 휴게소, 그리스 참전 기념비에 올라 하늘을 우러러보면 별들은 전깃불에 기가 질려 희미한 잔영으로 남아 있다. 제우스 신전과 헤라, 올리브 가지를 어깨에 멘 나상(裸像)의 아테네 대리석, 그리스 신전의 골진 두 개의 기둥과 잘려 나간 하나의 기둥, 741명의 그리스 젊은이들이 여기 잠들다. 나는 이곳을 지나칠 때마다 오르곤 한다. 참전 용사에 대한 고마움과 젊은 넋을 기린다기 보다, 비석에 새겨진 그림이 30여 년 전, 중 고등학교 교과서에서 보던 것과 같기 때문이다. 고대 그리스 신화와 이국의 정취, 젊은 날의 회상이 이곳에서 되살아난다. 제우스와 헤라의 성좌(星座)를 따라 하늘을 올려다보면 대낮 같은 휴게소 전깃불로 별은 찾아 볼 수 없다.

알퐁스 도오테의 ‘별’은 아름다운 소설이다. 젊은 날의 뜨거운 열정을 불러일으키던 이 글에 막내아들이 심취해 있다. 30년이 넘도록 내 기억 속에 생생한 ‘별’을 아들도 기억할 것이다. 현대인의 별은 기억 속에서만, 또는 오대산 관측소에서만 있을지 모른다.

모처럼 월출산에 올라 쏟아질 것 같은 여름밤의 별을 보았으면 하지만 달빛으로 1등성 별 몇 개에 만족할 수밖에 없다.

인간은 지상에 별을 꽂았다. 벤자민 프랭클린이 연(鳶)을 날려 번개를 잡았고, 볼타는 건전지를 만들었으며, 에디슨은 탄산 필라멘트 전구를 만들었다. 전등은 낮과 밤의 차이를 해소하고 계절의 변화를 감추었다.

우리는 손전등을 들고 선조들이 꿈도 못 꿀 야간 산행을 한다. 손전등의 강렬한 빛. 이 정도의 빛이 자연적인 에너지라면, 인간 하나쯤이야 숯검댕이로 태워 버리기에 족하지만, 일상의 흔하디흔한 도구로 사용된다. 후레쉬의 장대 빛이 밤을 휘젓는다. 이 빛으로 지붕 밑의 참새를 잡았다. 겨울밤이면 가난한 초가집 추녀 끝에 둥지를 틀어 단잠을 자던 참새의 놀란 눈빛과 파닥이던 작은 영혼…. 우리는 문명과 손잡는 순간, 중요하고 신비로운 세계를 잃고 산다.

잠자리에서 깨면 굵은 불빛이 창밖에 어른거린다. 밤새워 회전하는 탐조등은 국가의 생존이고, 감지할 수 없는 권위다. 보안등이 많게는 십여 개, 적게는 서너 개씩 부락마다 세워져 밤잠을 설치고, 가을이면 농작물이 밀대처럼 키만 크고 열매를 맺지 못해 울상이 되기도 한다.

IMF가 시작되던 때, 어느 인사는 정부 종합청사의 밤새워 켜놓은 불빛을 개탄하기도 했다. 저 찬란한 불을 몽땅 꺼버린다면 그 돈이 얼마나 될까. 불빛은 부(富)의 상징이기도 하다.

현대인은 전기 없는 세상을 생각할 수도 없다. 발전은 화석 연료를 태워 매연을 만들고 대기를 오염시킨다. 지구는 망가지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과거로 돌아갈 수 없다. 누가 편리하고 화려하며 안락한 이 세상을 포기하려 할 것인가. 인간은 신의 도시로 금기하던 우주에서 달과 화성과 금성, 목성과 천제를 발견하고, 눈부신 과학 문명을 이루어 내지 않았는가. 환경보호운동은 공해를 최소화 시키고, 새로운 과학이 대안을 제시할 것이다.

옅은 구름이 시야를 가리니 전기 불은 명멸하던 찬란함을 잃었다. 그러나 별빛을 빼어 닮았다. 구름―미세한 물방울에 투영된 빛이 이렇게 곱다니. 어둠과 구름아래 보이는 산 밑의 세계는 인간 세계가 아니다. 어디가 하늘이고 땅인지 분간할 수가 없다.

7월의 무더위 속에 차디찬 바람이 모질게 부는데, 하늘의 별과 지상의 별을 구분할 수 없는 혼돈된 시각의 환희에 젖는다. 직립의 바위들이 나타나며 암벽과 구름과 바람이 만들어내는 풍광, 귀기마저 느끼게 하는 월출산은 해발 809m지만 지표면에서 불끈 솟아 오른 뼈다귀 바위 같은 골산(骨山)이다. 하늘에 빨간 밑줄이 나타난다. 붉은 줄은 나타났다 사라지고, 사라졌다 나타난다. 구름의 조화―대자연의 파노라마. 안개가 시야를 가리나 싶으면, 손오공이나 탈법한 근두운이 발치께 머문다.

붉은 직선이 꼼지락거리다가 손바닥 크기가 될까. 붉은 달덩이 같은 아침 해가 떠오른다. 주황색의 해는 귀여운 아기의 얼굴 같다.

해는 살아 있다. 쉴 새 없이 꿈틀거린다. 쉴 새 없이 셔터를 눌러댄다.

모두들 내 얼굴, 내 얼굴이 해의 배경이고 싶어서 해를 찍는다.

또 하나의 별이 지상의 별과 하늘의 별빛을 지우며 떠오르고 있다.

태양은 지구와 또 다른 몇 개의 별들과 함께 시속 87만Km의 속도로 맹렬히 우주 공간을 달리고 있다. 중력과 인력, 거리와 회전주기, 관성과 자기장 등 인간이 배워야 할 팽팽한 규칙과 질서를 이끌고 찬란하게 솟아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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