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촌의 세상 돋보기]월남쌈을 만들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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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촌의 세상 돋보기]월남쌈을 만들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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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8.05.22 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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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촌(수필가, 칼럼위원)

롯데 마트 식품관 중앙에 아보카도가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 시골 마트에서는 보기 드문 모습이다.

수입 과일 중에서도 비싸고 귀하게 여겨지는 아보카도, 적당하게 익은 것만 고르면 구수할 아보카드를 보자 월남쌈 생각이 났다. 지난 번 가족 모임에서 월남쌈을 준비하는데 메인재료인 아보카도가 빠졌던 것을 생각하니 당장 월남쌈을 만들고 싶어졌다.

월남쌈은 다양한 재료를 준비해야 하기 때문에 한두 사람을 위하여 만들기는 곤란하다. 먹는 방식은 다르지만 우리들 한식처럼 빙 둘러 앉아 두런두런 얘기도 주고받으면서 정다운 자리를 만드는 데는 월남쌈만 한 것도 없다. 후딱 먹고 배 두드리면서 일어나는 음식이 아니기에 가족 모임이나 친구들 모임을 생각하다가 우선 사람 모이기가 용이한 경로당 생각이 났다. 또 누구나 좋아 할 재료들이 들어가니 마을 어르신들도 좋아할 것이라 생각되었다.

메모지를 들고 구루마를 밀고 다니면서 시장보기를 했다. 불고기꺼리로 소고기를 넉넉하게 사고 양송이버섯, 토마토, 파인애플 통조림, 어린새싹, 양상추, 파프리카 빨강노랑, 숙주, 칠리소스 등등을 카트에 실었다. 준비하다가보니 열대여섯 가지가 넘었고 알록달록한 시장바구니를 들여다보노라니 어느새 피곤은 사라지고 행복해졌다. 잔손 부리기에 습관이 되어 있지 않고 주방 일에 두려움이 있는 나는 사실 은근히 걱정이 되기도 했는데 어르신들이 반겨 하실 것을 생각하면서 용기를 냈다. 그래 노동이 즐거운 일이 되는 경우도 있는 것이다. 누군가를 즐겁게 해 줄 수 있는 일, 그래서 ‘봉사’(자신의 이해를 돌보지 않고 몸과 마음을 다하여 일함) 라는 단어는 누구에게나 아름답게 다가오는 것이다.

월남쌈을 대접하기 위해 경로당 어르신들을 초대 해 놓은 날, 모처럼 봉사를 하게 되었으니 아름다운 날을 만들고 싶었다. 색다른 음식을 먹게 되었다고 반겨하는 어르신들의 얼굴을 떠올리며 새벽부터 일을 시작했다. 파프리카를 자르고 눈부시게 하얀 양송이를 손질하고 불고기를 양념하고 새싹을 다듬고~ 그러다가보니 어르신들이 오셔서 각기 다른 재료들의 길이를 맞춰가면서 채썰기를 도와주시고 계란 지단을 노랗고 하얗게 부쳐 곱게 채를 썰어 주기도 하면서 도움을 주었다.

그렇게 어르신들의 솜씨가 보태어져 월남쌈 쟁반이 만들어졌다. 크고 둥근 쟁반에다가 원을 그리면서 정갈하게 담아 놓은 월남쌈 재료들은 총 천연색으로 어우러져 고운 요리쟁반이 되었다. 처음 드신다는 분들이 계셔서 드시는 방법을 설명해 드렸다. 라이스페이퍼를 뜨거운 물에 살짝 담궈 누긋하게 만들어 앞접시에 펴 놓고 내가 좋아하는 재료들을 쌓아 월남 소스를 끼얹어 간을 맞추고 돌돌말아 싸서 드시면 된다고~. ?

월남쌈은 본래는 베트남 음식이지만 재료가 신선하고 또 종류를 식성에 맞게 선택할 수 있어서인가 서양사람들도 좋아하고 더구나 우리나라 사람들은 대부분 좋아하는 음식이다. 자기가 좋아하는 재료를 선택해서 먹을 수 있다는 장점도 있지만 여러 가지 재료가 모아지고 거기에 소스가 곁들여지면 여러가지 맛들이 어우러져 한마디로 말 할 수 없는 신선하고 맛깔스러운 쌈이 된다.

경로당 어르신들은 처음 먹어본다면서 반가워 하셨는데 어떤 분들은 페이퍼에 재료들을 하나하나 쌓아가는 과정이 답답하다면서 그냥 접시에 재료들을 담아 소스를 끼얹어 드시는 분들도 계셨다. 그렇다. 경로당에는 보통 칠팔순을 넘은 어르신들이 대부분이다. 우리는 보통 예순을 넘으면 섭리에 이순 한다고 말들 한다.

월남쌈 싸는 모습들을 보면서 긴 인생 살아오신 그분들의 인생과 삶을 들여다본다. 살아 온 삶이 다르고 지역이 다르며 얼굴 모습이 다르고 인생관이 다르다. 각자의 앞접시에 놓여지는 재료들을 눈여겨보면서 그분들의 식성과 성품과 삶을 짚어 본다. 더구나 우리 마을은 신축 아파트인지라 전국에서 모여든 분들이다.

월남쌈의 알록달록한 재료들, 새콤달콤한 재료들을 모아 쌈을 싸면 각자의 독특한 맛은 사라지고 서로 어우러져 산뜻한 맛을 내며 더구나 메인재료인 아보카도는 깊은 맛이 나도록 어우러지는 역할을 한다.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쌈을 싸는 모습들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한다. 경노당의 어르신들이 쌓아 온 경력과 각자 다른 인생관과 철학들이 월남쌈처럼 서로 잘 어우러져 서로에게 위로가 되고 즐거운 노년의 날들을 만들어 갈 수 있었으면 하는 소망을 담아본다. 어르신들, 도와주시느라 수고하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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