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맞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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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맞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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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8.05.15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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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년섭(수필가, 칼럼위원)

| 중앙신문=중앙신문 | 작년에 우리 집 바깥 마당가 틈바귀를 뚫고 열댓 포기 민들레가 일렬종대로 고생스럽게 자라고 있었는데 올 새봄이 되자 끈질기게 새싹을 틔우며 나의 눈길을 끈다.

옆집에 이사 온지 얼마 안 된 김 형이 이 민들레를 칼로 싹둑 베어가 버렸다. 내 아내가 무척 아끼며 씨를 받아 민들레를 퍼뜨리겠다고 정성을 들였는데, 언제부터인가 민들레 약효가 좋다고 매스컴에 오르내린 후 아무나 보이는 대로 캐가서 민들레 씨를 말려 버렸고 그 여파로 우리 집 봄의 전령사 민들레는 목숨을 잃은 것.

겨우내 얼어붙어있던 낙엽, 나뭇가지, 지푸라기 같은 쓰레기를 모아 태우고 대문간에 쌓였던 먼지를 쓸어내는 걸로 우리 집 봄맞이는 시작된다. 겨울바람에 이리 몰리고 저리 흩어졌던 잡동사니들을 태울 때 연기 냄새가 구수하고 타는 소리도 정겹다. 하늘거리며 퍼지는 연기는 그림만큼이나 예쁘다.

봄맞이 준비는 또 있다.

어머니가 쓰시던 물건이며 헌 옷가지들을 치워야 개운하다. 비닐봉투에 헌옷을 몇 자루 담아 고물상에 가져가니 80kg이나 되는데 값을 2만 몇 천원을 쳐 준다. 처음으로 고물을 돈 받고 팔아 본 아내는 웬 횡재냐는 듯 즐거워한다. 처음 살 때는 대접을 받던 옷가지들이 철 지나고 유행이 지났다고 버림을 받는다. 사람들의 마음은 이렇게 얄팍하다.

척박한 울타리 밑에서 웅크리고 봄을 기다리던 산수유가 꽃을 틔울 준비를 하지만 먼 곳에서 게으름을 부리며 머뭇거리는 봄은 본 척도 안한다.

유난히 혹독하였던 추위는 아직도 스산하고 차가운 봄바람은 옷깃을 스며 들어온다. 두꺼운 겨울옷이 아직도 무겁지 않은데, 바람막이가 된 양지쪽에 여린 봄나물이 고개를 내민다. 부지런한 아낙네들, 도회지에서 몰려 온 부인네들은 벌써 봄나물을 싹쓸이 해버렸다.

봄은 아직 멀었지만 과수를 전지하는 일손이며 농토를 둘러보는 농부의 마음에는 벌써 봄이 오는 소리가 들리는지 무척 바쁘게 움직인다.

이맘때쯤이면 연례행사처럼 봄비가 내린다. 소리 없이 살며시 내리기 때문에 고인 빗물이 추녀를 타고 떨어지는 소리로 알아차린다. 봄비도 만물의 소생을 알리는 봄의 전령이다.

올 봄 우리내외는 또 봄맞이를 한다.

밭둑에 심은 소나무, 대추나무, 자두나무의 가지를 쳐 주는데 얼어 죽은 감나무가 눈에 띄어 감나무, 매실나무를 새로 사다 심는 옆에서, 요즘 세상 화두는 ‘창조’이니 창조적 봄맞이를 하라며 아내가 한마디 한다. 창조적 봄맞이를 어떻게 하는 건지 연구를 하여 쉽고 알차게 해야 할까 보다.

꽃도 나무도 들도 산도 기지개를 켜며 봄맞이 준비를 끝내면 사람들은 바빠진다. 나와 내 아내도 그렇게 남들을 좇아 일거리를 찾아 나서야 한다.

몇 개 되지도 않는 란이며 화초가 화분에 담겨 더위를 피하고 장마 비를 견디며 지붕 밑에서 봄여름 가을을 보내던 걸 겨울에 마루로 옮겨 앉혔었다. 꽃에 관한 지식도 없고 게을러서 여태껏 자주 죽이다가 작심을 하고 겨울 관리를 했던 것이다.

마루에 벽돌을 놓고 널빤지를 가로 질러 받침대를 만들어 그 위에 화분을 놓으니 질서정연하여 보기에 좋고 물주기도 편해서 아이디어를 낸 게 대견하여 자화자찬을 일삼다가 아내에게 핀잔을 들었지만 그래도 기분이 좋다.

주인 잘못 만나 귀한 생명을 마치고 버림받았던 화분을 치우고 마루구석에서 한 겨울을 지낸 화분을 정리하여 실내외 분위기를 바꾸어 본다.

화분을 보내주셨던 수필교실 K, L, K선생님과 분당교실 회장님들 얼굴도 매일 보는듯하여 좋고, 윤기 있게 잘 자라는 난초들은 내 생명과도 같아 소중하다.

10여개 란 화분 사이에 처음 보는 화초가 한 그루 있다. 아내가 어데서 얻어 왔는데 손가락만한 것이 한 겨울에도 잘 자라 한자가 넘게 컸고, 이파리도 탐스러운 게 어른 손바닥 만 하다. 겉은 초록색에 흰 점이 무질서하게 박혀 그런대로 예쁘고 뒤쪽은 붉은 색을 띄는데, 분홍색 연약한 꽃을 피워 여러 날 보여주니 시집 간 딸을 보는 것 같이 아련하다. 이름도 모르는 이 화초는 난초에 비해 잎이 화려하고 겨울에도 꿋꿋하여 먼저 눈길이 가곤 한다.

꽃집에 들려 이름을 알아보려 했지만 몇 번 허탕을 친 끝에 이 화초가 ‘베고니아’라는 걸 알게 되었다. 이름이 조금 어렵지만 잘 기르고 사랑하겠다고 다짐을 했다.

겨우내 잠자코 있다가 봄이 오는 걸 어떻게 알았는지 활짝 어깨를 펴는 수련도 대견스럽고, 대자연에 순응하며 대화와 타협으로 일생을 살아가는 생물들을 보면, 오묘한 자연의 진리를 박대하고 적대시하고 경계하는 우리들은 아직 멀었구나 하는 부끄러움이 앞선다.

조상 산소도 둘러보고 텃밭에 거름도 내고 어지간히 봄 맞을 준비는 끝냈는데, 정작 크고 작은 걱정거리로 가위 눌린 내 가슴속의 봄은 아직 멀었으니 춘래 불사춘은 나를 두고 한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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