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물머리] ‘아버지의 격랑 속 시간’ 그리고 6.25 전쟁
상태바
[두물머리] ‘아버지의 격랑 속 시간’ 그리고 6.25 전쟁
  • 오기춘 기자  okcdaum@hanmail.net
  • 승인 2023.06.01 15:24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오기춘 기자
오기춘 부국장

| 중앙신문=오기춘 기자 | 6.25가 있는 6월의 첫날에 아버지가 떠오른다. 아버님은 1927년생이시다. 일제 강점기 시대 18세이던 때에는 일제 징용으로 함경도 어느 탄광으로 끌려가셨다. 밥을 하루 한 끼 주먹밥만 줘서 배가 너무 고파 탈출하셨다고 말씀하셨고,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 채 3개월 동안을 산속 동굴에서 1945년 광복 때까지 숨어 살았던 10대 시절을 보냈다. 20대에는 6.25라는 격랑의 세월을 만난 그는 대한민국 격랑 속 고난을 이겨낸 그 시대의 아름다운 청년이었다.

아버지는 6.25 참전 용사다. 6.25 당시 전쟁터에서 전투를 하셨다는 얘기를 초등학생이던 나이에 들었을 때 마음에 와닿지도 않았다. 몸에는 포탄 파편이 여기저기 상처가 있으셨으며, 우물가에서 등목을 해 드릴 때는 넓게 데인 자욱처럼 흉터가 여기저기 있으셨다. 비가 오면 쑤신다고 하시며, 만병통치약처럼 안티푸라민 연고만 바르곤 하셨다. 안티푸라민을 바르시다가 손이 안 닿는 곳을 어린 내게 발라 달라했을 때 나는 안티푸라민 냄새는 싫어요라고 말했던 그런 내가 이제는 부끄럽기만 하다. 지금 그때를 생각하면 눈물이 맺힌다.

6.25 당시 아버지는 UN군 미 3사단 카투사로 철원 낙타고지에 배치되어 전투를 했고, 멀리는 백마고지가 눈앞에 보였다며, 낮과 밤이 수시로 국기가 바뀌어 휘날렸다고 말씀하셨으니, 백마고지 전투가 얼마나 격렬했는지 알 듯하다.

백마고지 전투에 참전했던 아버지의 친한 후배가 자신은 무공 훈장을 받았으니 형님도 한번 보훈처에 문의해 보시라고 해서 문의한 바 참전용사 기록이 있다며, 2007년 노무현 대통령 때 늦게나마 참전용사 표창장을 전달받았다. 훈장은 아니었다.

아버님 말씀을 들었을 때 훈장을 받아도 모자랄 텐데 하는 생각에 아버지 모르게 육본에 전화로 문의를 해본 적이 있는데, 훈장 대상은 아니라 했다. 그냥 참전 용사 일뿐이라는 말만 돌아왔다. 아직까지도 의문이며 아이러니다. 미군 측이나 UN에 확인해봐야 하는 복잡한 절차가 있어 확인이 어렵다 했다.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훈장 팔이가 되는 것만 같아 싫었던 게다.

휴전이 되어갈 무렵 아버지는 미 3사단 UN군으로 강원도 오성산 전투에 재 배치되셨다. 오성산 전투는 UN군과 중공군의 가장 치열한 전투로 기록되는 전투 중 하나다. 전투에서 기관총을 쏘며 옆에 전우가 죽는 것도 모르고 총질을 했다고 했으니, 얼마나 격렬한 전투였는지 보지 않아도 알듯하다. 또한 그 전투에서 미군 상관이 당신에 대해 훈장 상신을 올리겠다고 말해 그런 줄 알고 있었다고 했는데, 반복되는 전투로 상관이 전사했을지도 모른다.

그 후 중공군과의 치열한 전투와 대치가 반복되는 가운데 휴전 방송이 나오자. 100m 전방에는 중공군이 구름 떼처럼 소리를 질렀고, 이쪽에서도 만세를 외쳤다 한다. 영화 고지전처럼 격전지 전투에서 휴전의 기쁨을 맞이한 사람들은 알 수가 있을 것이다. 그들이 맞이하는 평화. 살았다는 안도. 아버지가 그랬을 것이다. 적군들과 서로 잘 가시오인사하는 소리가 내게도 들리는 듯하다.

아버지는 일제강정기와 6.25 두 시대의 국가에 충실하셨던 것이다. 그러면서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장돌뱅이 삶을 짊어지고 사셨으니 기구하고 힘든 삶이셨다. 현충일 날이 오면 아버지는 항상 숙연하셨던 기억이 내겐 남아 있다. 사이렌 소리가 끝나고 나면, 말없이 먼 하늘만 쳐다보시고는 눈가에 눈물이 맺히셨던 모습이 생생하다. 전쟁터의 삶과 죽음. 총과 포탄의 살인 무기들의 끔찍한 살생. 머릿속에는 트라우마가 되어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아버지는 함께 TV를 보다가 전쟁영화가 나올 경우 채널을 돌리시곤 하셨다. 휴전 후 70년 세월이 지났고, 70번째의 6월이 왔다. 일제 36년 강점기나 6.25처럼 악몽 같은 시간들은 사라졌지만 아버지의 격랑 속 시간은 역사 속에 남아 있다. 20212년 전 돌아가셨을 당시 나이 94세로 1세기를 살으셨다. 지금은 생의 저편 영면 속에서, 아버지 시대의 영웅들과 함께 호국원에 모여 세계 평화를 기원하고 계실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
  • [단독] 3년차 의정부시청 여성 공무원 숨진 채 발견
  • 박정 후보 유세장에 배우 유동근氏 지원...‘몰빵’으로 꼭 3선에 당선시켜 달라 ‘간청’
  • 감사원 감사 유보, 3년 만에 김포한강시네폴리스 산단 공급
  • [오늘 날씨] 경기·인천(20일, 토)...낮부터 밤 사이 ‘비’
  • 1호선 의왕~당정역 선로에 80대 남성 무단진입…숨져
  • [오늘의 날씨] 경기·인천(25일, 월)...흐리다가 오후부터 '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