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호의 시선(視線)] 아픈 만큼 성숙해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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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호의 시선(視線)] 아픈 만큼 성숙해질까?
  • 김연호 수원시노사민정협의회 사무국장  dusghkim@nate.com
  • 승인 2023.05.26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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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호 수원시노사민정협의회 사무국장
김연호 수원시노사민정협의회 사무국장

| 중앙신문=김연호 수원시노사민정협의회 사무국장 | 우연히 학창 시절에 들었던 구창모의 아픈 만큼 성숙해지고라는 노래를 접하고는 문뜩 개인적인 의문이 생겼다. 과연 인간은 상처나 고통을 겪은 만큼 성숙해지는가? 그 노래에서는 아픈 만큼 성숙해지는 것은 진실이니 괜히 이유 같은 것은 따지지 말고 그냥 사랑에 따른 고통을 받아들이라고 권유하고 있다.

세월호와 이태원 참사 같은 국가적 수준에서의 비극적 참사 이외에도 학교폭력, 미투, 직장 갑질 같은 사회 문제가 떠오르면서 이전에는 단순 사랑노래의 가사였던 노랫말이 별안간 낯설게 다가왔다. 우리는 아픔과 고통을 경험하면서 더 성숙해지고 지혜로워질까? 한 개인이 받은 상처나 시련을 오롯이 개인적으로 극복하고 치유해야만 할까? 그럼 국가나 사회는 아무 책임이 없는 걸까?

물론 순전히 개인적인 상처나 아픔은 개인 스스로 극복해야 하고 그 고통을 견뎌내는 과정을 통해 삶의 소중한 지혜를 깨닫고 성숙한 인간으로 성장할 수 있다. 사회학의 기능론적 관점에서 보면 고통이란 것도 개인에게 주는 역기능도 있지만 순기능도 있을 수 있다. “파테이 마토스(pathei mathos)” 그리스의 유명한 경구로 인간은 고난이나 고통을 통해 지혜로움을 얻는다라는 뜻이다. 사람을 고통의 동지들로 표현한 독일의 철학자 쇼펜하우어의 주장처럼 인간은 모두 각자의 어려움을 겪으며 나름의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며, 그 고통을 통해 세상 사는 게 나만 힘든 게 아니고 나랑 비슷한 존재가 있음을 깨달았을 때 연민과 공감을 느끼며 지혜로운 인간으로 거듭날 수도 있을 것이다. 주변에도 개인적 아픔을 극복하고 사회적으로 의미있는 활동에 적극 나서고 있는 분들도 꽤 있다. 언론을 통해서도 개인적인 상처를 예술로 승화한 분이나 뼈아픈 고통을 극복하고 이 사회를 위해 울림있는 메시지를 내고 있는 활동가들을 종종 접합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훌륭한 분들이 과연 얼마나 될까? 아마 희소성이 있어 언론의 주목을 받지 않았을까?

필자는 고통의 순기능은 충분히 인정하면서도, 개인적인 상처나 고통도 개인에게만 맡기지 말고 사회구조적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이전 칼럼에서 자살이나 학폭 같은 문제도 개인적 차원의 문제가 아닌 명확한 사회적 문제로 인식하고 그 해결 방안도 사회구조적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개인적 고통이나 아픔도 마찬가지이다. 먼저 고통에 대한 사회적 접근 방안으로는 사회적 행복 안전망구축을 제안한다. 예를 들어 실업과 취업문제로 고통을 받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그 고통 기간을 견뎌낼 수 있는 사회적 안전망을 보다 체계적으로 제공하는 것이다.

전날 회사에서 해고를 당한 한국의 노동자와 프랑스의 노동자가 다음날 아침에 느끼는 기분은 하늘의 땅의 차이만큼이나 크다는 뼈아픈 이야기가 있다. 그만큼 한국 사회가 인간의 행복을 보장할 수 있는 사회적 안전망이 부족하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제적 규모나 위상을 고려했을 때 더 이상 재원이나 예산 같은 국가 능력의 문제는 아닌 것이다. 우리 의지의 문제이고 우선순위의 문제인 것이다. 다음은 사회적 인식을 바꾸는 작업이 필요하다. 우리는 식민지 체제와 냉전 전후 분단 시대를 거쳐 살벌한 신자유주의 경제체제하에서 너무 앞만 보고 숨 가쁘게 달려왔다.

우리 모두는 경쟁자였고 승자 독식주의, 패배 혐오주의를 당연시하며 빨리빨리 운동에 방향도 잊은 채 성난 짐승처럼 달려온 것이다. 이제 그 기조에 쉼표와 브레이크가 필요하다. 우리에게는 마을에 어려운 이웃이 있거나 해결해야 할 공동의 문제가 생기면 함께 해결해온 공동체 문화라는 아름다운 전통을 갖고 있다. 그걸 복원해 내자는 거다. 우리는 경쟁자가 아니라 더불어 함께 살아갈 따듯한 이웃이라는 점을 잊지 말자.

결론적으로는 고통이라는 개인적 상처도 그 고통을 바라보는 사회적 인식의 제고와 더불어 그 치유를 위한 제도 마련이 우선시되어야 한다는 점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자 한다. 우리 대한민국 국민은 이미 사회적 연대, 노동자 연대, 시민 연대 등의 방식으로 사회문제 해결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왔다. 시대의 아픔이나 개인적 고통에 연민을 느끼는 우리 국민의 공감능력도 세계 최고 수준 아닌가? 이제 국가와 사회가 나서야 한다.

김연호 수원시노사민정협의회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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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정훈 2023-06-27 21:43:14
매를 맞지 않으면 좋지만 맞아보지 않고는 그 고통이 어느 정도인지 직접적으로 알 수가 없다.
살아가면서 한번도 매를 맞지 않을 수 있을까?
그렇지 않기 때문에 매는 먼저 맞는 것이 낫다라는 말이 있다. 먼저 아픔을 깨닫고 시행착오를 최소화 하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지혜롭고 현명한 우리 국민의 능력을 발휘 할 때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파테이 마토스)

유정석 2023-05-28 00:13:02
항상 찐입니다 짱입니다ㅎ

노정수 2023-05-27 23:30:43
개인적인 고통이 순기능으로 개인 발전에 도움이 될 수 있지만, 사회적인 고통을 국가가 방치하는 것을 가만히 두어서도 안될 것 입니다.

비오는날 2023-05-27 15:07:43
필자의 아픔은 갠적 고통일지 사회적 진통일지 ... 성찰끝 성숙이 되었으면합니다

손종만 2023-05-26 14:54:44
"그렇게 되어야 할 사회"인데 지금 우리사회 곳곳에 멍들어 있는 그리고 치유가 요원하게 느껴지는 모습들이 너무 답답합니다. 여름이 다가오는 데도 따듯한 그 무엇이 그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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