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연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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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8.05.13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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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국(수필가, 칼럼위원)

| 중앙신문=중앙신문 | 꽃 자랑하는 사람을 보면 “잡아먹을 개나 기르지” 하고 돌아서던 나다.
퉁명스러워 남들이 근접조차하지 않으며 감수성이 메말라 울안엔 꽃 한 송이 키우지 않는 난데, 어쩌다 수필한편에 반해, 사무실에 들어온 꽃 장사에게 히아신스 구근 3개를 사와 물 컵에 담가 아랫목에 정성스럽게 모셔 놓았다. 그러나 2주가 지나도록 싹을 틔우지 않는다. 겨우 파란 송곳처럼 솟아오르는 것은 1개뿐. 궁금해 화원에 물으니 얼었을 것이라며 자기 것을 길러 보라고 3개를 나누어 준다. 싹이 보이지 않는 구근을 면도날로 잘라내니  지독한 냄새를 풍기면서 시커멓게 썩는 중이다. 인간이라니. 돈 벌자고 차에 싣고 다니다 얼리고, 버리기 아까워 썩어가는 구근을 헐값인 양 생색을 냈구나.
새 구근과 헌 구근 중 싹을 내미는 1개를 남기고 나머지는 버린다. 화원에서 가져온 구근들은 식욕이 왕성해 하루만 지나도 물이 부쩍부쩍 줄어들건만, 헌 구근은 항상 남아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왕성한 놈들은 수십 개의 하얀 뿌린가 물 컵을 반 이상 차지해 자아올리건만, 이놈은 한 개뿐이다. 수 십 개의 뿌리를 캐는 도중에 잘린 모양이다.
한 개의 뿌리로 치열하게 생의 전쟁을 치르는 중이다. 새 구근들은 하루가 다르게 솟아올라 꽃대를 피워 올리고 줄기는 꽃 덩이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 금방 부러질 것 같아 아내가 받침목을 해주었다.  방에 들어서면 히아신스 향내가 진동한다. 이제야 수필가의 뜻을 알겠다. 그리고 그 글이 나를 움직여 히아신스를 찾게 했고, 아내는 남편 덕에 꽃을 본다고 했구나. 새 구근들은 꽃이 지고 구근마저 쭈글쭈글해 잎사귀마저 후줄근해졌건만, 헌 구근은 아직도 골난 놈  모양 엄지 손가락만한 순을 빼어 물고 꿈쩍도 않는다. “버릴까.” 아내에게 물으니. “아직 두고 봐요.” 생명이 아깝고, 꽃이 진 뒤라, 이것에 기대라도 걸고 싶은 눈치다.
기다리다 못해 줄기를 벌려보니 꽃대가 까맣게 죽었다. 죽은 아기를 안고 우는 어미가 이럴까. 한 달이 지났지만 아내와 나는 서로 눈치만 보며, 마지막 히아신스를 버리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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