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도둑과 큰 도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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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도둑과 큰 도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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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8.05.13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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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년섭(수필가, 칼럼위원)

| 중앙신문=중앙신문 | 초봄이 되면 벌써 먹을 것이 떨어져 보릿고개라는 말이 익숙하던 시절, 덜 익은 보리를 베어다 쪄서 절구에 빻아 밥을 지어 먹을 때다. 어느 집에서 도토리 가루를 잃어 버렸다고 아우성을 치고 의심 가는 집을 뒤지고 난리를 피웠는데 되찾지는 못했다. 고난의 시대를 살아 온 서민들의 애환과 맛 물려 아련한 아픔으로 기억되는 생활사범. 그런 일은 얼마든지 벌어졌었다.
나는 지금까지 여러 차례 도둑을 맞고 소매치기를 당한 경험이 있다. 가난한 대학생시절 내 바지나 교과서는 몇 푼에 팔려 청계천 시장을 전전했을 것이고, 새 집으로 이사 한 후 책장을 사라고 동생이 쥐어 준 귀한 돈은 양복 안주머니가 면도칼로 베어진 채 소매치기 범에게 넘어가 그의 유흥비에 쓰였을 것이다.
조카딸 중학교 입학 기념으로 사준 30권짜리 대백과사전은 사기범에 의해 단행본 몇 권으로 바뀌었다. 미안해하시는 노모 위로하는 것도 마음 아팠고, 백과사전을 돈 몇 푼에 팔았을 그를 생각하는 것도 기분 잡치는 일이었다.
몇 년 전, 우리 내외가 외출에서 돌아와 보니 작은 며느리가 시집 올 때 예단으로 선물한 서류가방이 찢어지고 돼지저금통이 없어지고, 문갑에 넣어 둔 새로 산 디카가 어느 좀도둑 손에 넘어 갔다. 탁상용으로 미화2불짜리를 넣은 플라스틱 액자는그 놈들이 돈을 꺼내기 위해 산산 조각을 냈다.
우리 마을에 나라에서 큰돈을 들여 개울에 제방을 쌓고 다리를 놓은 뒤 동판으로 공사개요를 만들어 붙였는데, 반년도 안 되어 다 떼어가 버렸다. 훔쳐가는 좀도둑도 나쁘지만 장물을 사들여 폭리를 바라는 그 사람은 더 나쁘다.
야구경기 할 때 수비선수들을 속이고 한 루를 더 가는 공격방법, 영자로는 steal이라고 하는 도둑질, 도루이다. 이런 것 빼고 도둑질은 모두 나쁜 짓이 아닐까.
조선시대, 부당하게 재산을 모은 탐관오리나 부자, 귀족의 재산을 빼앗아 가난한 이에게 나누어 주었던 도적, 임꺽정, 홍길동, 장길산은 의적으로 불리고 지금까지도 그들을 욕하거나 손가락질을 하지 않으니 이 역시 좋은 도둑질인가.
시골을 다니다 보면 곳곳에 CCTV가 설치된 걸 볼 수 있다. 좀도둑을 막기 위한 예방방법이다. 우리 마을에도 몇 달 전 그물을 쳤다. 마을로 들어오는 어귀와 동네 갈림길 마다 CCTV를 20여대  설치했는데 밤낮 눈을 크게 뜨고 위에서 내려다보고 있으니 낯선 사람들은 주눅이 들어 함부로 출입도 못할 형편이다. 복면을 하고 자동차 번호판을 가리면 잡히지 않겠지만 가난한 시골마을, 그 정도로 위험을 무릅쓰고 행동에 옮길 만큼 가져 갈 물건이 있는 건 아니다.
좀도둑을 여러 번 당한 나는 세월이 지나면서 그들에 대한 노여움도 풀어져 이제는 아무렇지도 않다. 나도 세상 살면서 좀도둑 이상의 나쁜 짓을 했을지 모를 터인데 나 혼자 화내고 떳떳한 체 하는 게 도리는 아닐 것이다. 좀도둑이야 당하는 개인의 문제이고 조심하면 줄일 수 있지만 큰 도둑이 문제이다. 한 방에 평생 먹고 살 재화를 받아먹거나 편취, 횡령하고 걸리면 권세를 앞세워 버티고, 법위에 군림하는 힘센 도적들, 그들은 나라를 파멸로 이끄는 전염병균이다. 오늘도 그들은 거드름을 피우고, 낮은 백성을 비웃으며 더러운 돈으로 자식을 먹이고, 키우고, 공부를 시켜 또 큰 도둑을 대물림으로 만들어 낸다.
힘 들여 일 할 생각은 뒷전이고 자신의 탐욕을 채워 저 혼자 잘 먹고 잘 살려는 심보, 예부터 도둑은 있었나 보다.
고조선 8조법에, 다른 사람의 물건을 훔친 자는 잡아다 노비로 삼는다는 조항이나 후한(後漢) 진식 편에 나오는 양상군자는 도둑질의 뿌리가 깊었음을 알려 준다. 함무라비 법전에 나오는 대목-어떤 지역에서 발생한 절도범을 잡지 못하면 마을에 연대책임을 물어 마을 전체에서 배상하게 하였다 한다. 로마 제국의 12표 법에 방화범, 절도범, 남의 경작지에 무단으로 침입한 사람은 사형에 처한다고 하였으나 도둑질이 없어지지 않는걸 보면 극단적인 처벌이 필요 할 것 같다.
큰 도둑들이 걸리기만 하면, 자신은 물론이고, 직계 자손만대에게 자동차 운전면허시험부터 각종 국가고시 응시자격을 박탈하고, 여권도 발급을 하지 않아 해외여행 한번 못하고 평생 버스나 타고 막노동이나 해 먹을 수밖에 없도록 법을 정한다. 국회에서 법을 만들면 제 놈들 빠져 나갈 개구멍을 만드니 국민투표로 정하고, 걸린 돈은 물론, 존비속의 재산까지 몰수하여 무일푼 거지로 만들어 버린다.
수사할 때, 재판할 때 봐 주거나 협조한 판검사, 또한 똑같이 처벌한다. 누구나 자식은 귀한 법, 저 때문에 자손이 거지가 되고 멸문지화를 당하는데 도둑질 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꿈같은 이야기- 나의 소망이 실현되어 정의로운 사회가 이룩되도록 축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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