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뚜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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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뚜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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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8.05.13 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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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년섭(수필가, 칼런위원)

| 중앙신문=중앙신문 | 소에는 코뚜레가 있다.
송아지가 좀 크면 향나무를 잘라 불에 구워 구부리고 어른들 여럿이 송아지를 붙들고 코를 뚫는다. 뚫은 콧구멍에 향나무 고리를 끼우는데, 이것이 코뚜레다. 송아지 코 뚫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코를 뚫고 코뚜레를 끼우면 소는 말을 잘 듣게 돼 있다. 코뚜레를 끼우고 수레 모양의 틀에 큰 돌이나 물건을 올려놓고 짐 끄는 요령, 방향, 사람의 명령 알기를 가르치며 소 길들이는걸 보았다. 며칠 전, 잊고 있던 코뚜레와 관련한 이야기를 생각하고 피식 웃었다.
이른 아침, 아내와 나는 커피를 한잔 타서 사랑채 바깥 마루에 나와 번갈아 마시며 오순도순 얘기도 나누고 마을 경치구경을 하고 있었다. 이건 자주 있는 우리내외의 일과 중 하나이다. 이때 조그만 트럭에서 어느 분이 내려 강원도 횡성에 학생들을 위한 수련원을 차리는데 진열용 민속품을 수집하러 다닌다며 물건이 있으면 팔라고 한다. 팔 물건이 없다고 잡아떼는데, 대문간 대들보에 매단 코뚜레를 보고는 관심을 표한다.
코뚜레- 우리가 알기에 대문간에 걸어두면 집안 일이 만사형통하고 안방 문 앞에 걸어 놓으면 자손이 번성한다고 믿었다. 이건 잘못 아는 것이다.
우리 집 대문간에 걸린 코뚜레는 서울 집에 걸었던 것을 시골로 오면서 가져 온 것이다. 30여 년 전, 집을 옮긴 후 이모님들이 오셨는데 마장동 고기도매상 아는 이에게 부탁하여 어렵사리 구한 것이니 잘 걸어두고 부자 되라고 덕담을 하신 기억이 난다.
1층은 무방비로 노출이 되고, 1층 2층은 유치원이어서 학부모들이 드나드는데, 눈에 띄는데 걸었다간 미신을 믿는다고 눈총을 줄 것 같아 3층 살림집에 걸었다.
불교에서 말하는 시왕(十王)중 제5 대왕인 염라대왕이 업경대(業鏡臺-염라대왕이 중생의 죄를 비추어 보는 거울)를 보면서 죽은 사람의 상벌을 채점하는데, 업경대에는 그 사람의 일생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져서 일목요연하게 읽히기 때문에 빠져 나갈 구멍이 없단다.
사람이 죽으면 자손들은 49일 동안 매 칠 일 째 되는 날마다 재를 올리며 망자의 잘못을 대신 빌고 극락세계로 보내달라고 지성을 다한다. 염라대왕은 업경대에 비치는 업보와 자손들의 정성을 취합하여 A급은 다시 태어날 때 사람으로 태어나도록 판결하고 B급은 축생(가축)으로 태어나도록 도장을 찍어 버린다.
우리 대문에 걸린 코뚜레, 그 소는 전생에 사람이었다가 B급으로 강등되어 소로 태어나 모질게 고생하다가 죽었을 것이다. 코뚜레로 코를 막아 숨도 자연스럽게 못 쉬고, 먹이를 먹을 때도 마음대로 먹을 수 없도록 구속하고, 고삐로 묶여 자유를 빼앗겼다.
코뚜레는 소의 원수다.
코뚜레, 멍에, 고삐에 묶여 도망도 못가고 평생 중노동에 시달리며 말 한마디 못하고, 주인이 시키는 대로 하다가도 회초리 세례를 받아야 했으며, 죽은 후에는 사람들이 고기, 가죽, 뼈, 심지어 배설물까지 약탈하고 코뚜레는 귀신막이로 써 먹으니, 쌓인 스트레스며 한이 얼마인가. 그게  원혼이 되어 코뚜레에 뭉쳐 있단다. 사람이던 귀신이던 걸리기만 하면 박아버리겠다고 벼르며 소의 원혼이 대문간 위에서 째려보고 있으니 귀신이 오다가 코뚜레를  보고 겁이나 도망간다는 것. 코뚜레를 대문에 걸어두는 이유이고 기대효과다.
귀신만 쫓을게 아니라 매일 잘못을 저지르는 사람들에게 도끼눈을 하고 째려보며 겁을 주어 나쁜 사람 계도하면 좋으련만, 사람들은 코뚜레의 힘을 보지도, 느끼지도 못하니 그게 아쉽다.
내가 직접 코뚜레가 되어 서울을 휘젓고 다니며, 잘못을 저지르는 사람을 찾아내 혼을 내 주면 어떨까. 예전, 프로레슬러 김일 선수가 박치기하면, 갖은 반칙을 일 삼다가 맥없이 쓰러지며 설설 기는 걸 보고 얼마나 통쾌했던가. 법도 양심도 저버린 고약한 사람들 박살내며 야단을 치면 세상이 바르게 되지 않을까.
여의도엘 가자. 여의도 그곳에 가면 박치기를 당할 못 된 놈들이 가득 찼으니 박치기 할 일이 밀려 신나겠다. 국민들에게 폐만 끼치고 싫어하는 짓만 골라하며, 특권과 단물만 빨아먹고, 저 혼자만 잘 살려는 파렴치범들을 황소의 힘으로 된통 박아, 다시는 일어나지도 못하게 몇 백 명만 손보면 5000만 백성은 체증이 뚫릴 것 같다. 그놈들이 반면교사가 되어 며칠 만에 지상낙원이 되는 대한민국을 보고 싶다.
손가락질 받는 이 들이여, 코뚜레에 박치기 당하지 말고 올바르게 법대로 살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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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 2018-06-12 09:30:16
속이 시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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