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이야기]이밥이 열리는 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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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이야기]이밥이 열리는 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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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8.05.10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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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종태(숲 해설가)

| 중앙신문=중앙신문 | 요즘은 나무에서 돈도 열리고 밥도 열리고 건강도 열리는 시대가되었다고 호들갑이다.
눈부신 생명과학 덕분에 인간이 필요로 하는 물질을 대거 식물에서 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기술이 어디까지 발전할 지는 속단하기 어렵지만 인간의 염원은 하나 둘 꿈이 아닌 현실이 되고 있다고 한다. 5월은 이밥이 열리는 나무로 알려진 이팝나무가 꽃을 피워내는 시기다.
‘이밥에 고깃국을 배불리 먹겠다.’는 꿈을 가지고 있던 시절이 불과 3~40년 전 이야기다.  남북회담 때 인민에게 이밥에 고깃국을 배부르게 먹이는 것이 인민의 꿈이라는 이야기도 회자된 적이 있는 이밥,  이밥이란 표현은 ‘이(李)씨의 밥’이란 의미가 있다. 조선 시대에는 벼슬아치가 되어야 이씨인 임금이 내리는 하얀 쌀밥을 먹을 수 있다 하여 쌀밥을 ‘이밥’이라 불렀다는 이야기다. 이팝나무라는 이름이 이밥나무에서 그 이름이 유래된 것이라는 주장이다.
그런가하면 다른 주장도 있다. 이팝나무가 꽃을 피우는 시기가 공교롭게도 여름이 시작되는 입하(立夏)무렵이다. 입하에 꽃이 피는 나무, 그래서 ‘입하나무’ ‘입하목’이 이팝나무라고 부르게 되었다는 이야기도 설득력을 가지고 있다.
홉사 쌀밥처럼 꽃피는 이팝나무에는 옛날 보래고개의 슬픈 전설이 남아있다. 곡간에는 이미 쌀이 떨어지고 들판의 보리는 아직 익지 않았다. 가혹한 춘궁기에 배 고품의 고통을 달래야했던 백성이 있었다. 보리 고개를 기억하시는 분들은 이 무렵이 얼마나 견디기 어려운 시기였는지를 잘 안다.
굶주리다 지친 어머니의 빈 젖을 빨다 숨진 아기가 하나둘이 아니었다. 이렇게 죽어간 아기를 지게에 지고 동구 밖 빈터에 묻어야만 했던 부모의 심정을 아는 젊은이가 지금시대에도 있을까? 음식쓰레기가 처치곤란인 이 시대에 상상하기도 어려운 이야기다. 가혹한 시절의 이팝나무 이야기는 지금도 구전되고 있다. 굶주림에 지쳐 세상을 떠난 아기의 무덤가에 이팝나무를 심었다는 것이다. 저세상에서나마 하얀 쌀밥을 마음 것 먹어보라는 부모의 가슴시린 사연이 있다.  이팝나무는 이 애절한 소원을 들어주려는 듯 쌀밥 같은 꽃을 피운다.
이팝나무는 물푸레나무과의 큰 키 나무로 20~30미터나 자란다. 가슴둘레가 몇 아름이나 되는 큰 나무이면서 5월이 되면 특유의 꽃을 피운다.  파란 잎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새하얀 꽃을 온 나무에 피워내는 꽃 덩어리 나무다.  꽃잎이  마치 기름기가 흐르는 밥알같이 생겼다.  꽃핀 모습을 멀리서 보면 쌀밥이 수북이 담긴 것처럼 보인다.
이 나무를 처음 본 서양인들은 쌀밥하고는 인연이 없는지라 눈이 수북이 내린 나무로 보아 ‘눈꽃나무(snow flower)’라 부른다. 생활환경에 따라 인지하는 방법이 다름을 알 수 있다.
쌀 소비량이 줄고 식생활이 달라진 지금 쌀밥의 소중함은 예전과 다르다.
현대의 젊은이들에게 꽃피운 이팝나무를 보고 자기만의 이름을 지어보라면 어떤 이름이 나올까?
우리주변의 나무이름은  짧게는 수백 년, 길게는 수천 년 전의 우리 선조들이 자연스럽게 붙인 이름이다. 이팝나무에는 벼농사의 풍흉과 관계가 있으니 이를 알아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 같다. 평야지대로 유명한 김해시 주촌면 천곡리에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이팝나무가 있다.
600여년의 세월을 살아온 이 나무는 우리나라에서 꽃이 가장 아름답기로 소문난 나무다. 긴 세월을 살아오면서 많은 사람들로부터 떡도 얻어먹고 술도 얻어먹고 고기도 얻어먹은 세월이 작지 않다. 고로 신통력도 가지고 있다. 이 나무가 꽃이 함빡 피워내 오래가면 그해는 벼농사가 풍년이 든다. 그와 달리 꽃이 드물게 피고 수세가 쇠약하면 그해는 흉년이 든다는 것이다.
이러한 예지력과 신통력 덕분에 이 나무는 국가기관으로부터 유전자 검사도 받고 영구보존하려는 식물학자의 극진한 보살핌을 받고 있다. 국가기관이 나서서 유전자를 보호해야한다는 만물의 영장은 왜 아직 없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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