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우지변(畜牛之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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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우지변(畜牛之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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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8.05.10 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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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국(수필가. 칼럼위원)

수필을 쓰지만 동명이인(同名異人)이 있어 시인(詩人)으로 오해받는다.
나이마저 같아 인연이 깊다. 동려 직원이 읽다, 묻는다.
“이거 과장님 시(詩)지요.”
“아니, 다른 사람이야.”
믿지 않는다. 가끔 내 글도 신문이나 책에 나니, 곧이듣질 않는다.
시인(詩人) ― 내겐 꿈같은 일이다. 퇴근해 그의 시를 다시 읽는다. 힘이 든다/ 소를 몰고 밭을 갈기란/ 비탈 밭 중간대목쯤 이르러/ 다리를 벌리고 오줌을 솰솰 싸면서/ 소는 이렇게 말했다/ 세상이 바뀌면 내가 몰고 너희가 끌리라/ 그런 날 밤/ 콩 섞인 여물을 주고 곤히 자는 밖에서/ 아무개야 아무개야 불러 나가보니/ 그가 날개를 달고 훨훨 날아가고 있었다. 꿈속에서 나는 소가 되어 밭을 갈고, 소는 내가되어 나를 부리고 있었다. 밭을 가는데 자갈이 채여 아프다. 죄만큼 자갈도 많구나. 죄 같지도 않은 죄가. 최가 되어 발톱에 부딪혀 아프다. 미물(微物)이라 업신여긴 죄 ― 미꾸라지 산채로 믹서기에 갈아 추어탕 끓여 먹은 죄. 꿈틀거리는 뱀을 잡아 생사탕으로 달여 마신 죄. 무심코 2층에서 버린 담배꽁초가 목련 잎에 얹혀 꼬약꼬약 타건만 못 본 체 돌아선 죄…. 뿐만 아니다. 죄인 줄 알면서도 남들이 다 하니 그냥 따라한 죄, 챙기지도 못하는 주제에 당당하게 뿌리치치 못한 죄. 바위가 되어 길을 막는다. 길을 내자니 바위를 깨야지. 정으로 깨다 드릴로 깨니, 나였던 소는 다시 소가 되어 남의 곡식 뜯어먹으며 허옇게 웃고 있다. 배상은 사람인 내가 현찰로 내든가, 소가 되어 흠씬 두들겨 맞아야 한다. 사람이었을 때 ‘소로 갈 것이 아니라, 트랙터로 갈 것을.’ 그러나 소가 되면 까맣게 잊어버린 채, 땀 뻘뻘 흘리며 밭을 간다. 내가 된 소는 자꾸 웃는다. 그러나 한시도 쉬게 할 줄 모르니 나는 모질구나.
“세상이 바뀌면 내가 몰고 네가 끌리라.” 그렇게 외치건만, 목소리는 나와주지도 않는다. 고단한 저녁 굶고 잠드는데, 아무개야 아무개야 하는 소리 있어 나가보니 시인은 소를 몰고 천국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100년 후 초등학교 교과서에 ‘축우지변’이 실렸는데, 시인 이상국이 천국에서 소를 부려 갈건만, 수필가 이상국은 아직도 소가 되어 이승에서 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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