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을 부르는 능력자 버드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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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을 부르는 능력자 버드나무
  • 원종태 숲 해설가  webmaster@joongang.tv
  • 승인 2023.03.09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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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종태 (숲 해설가)
원종태 (숲 해설가)

| 중앙신문=원종태 숲 해설가 | 아침저녁 내리는 무서리에 지붕이 하얗게 보여도 봄이 몰려오는 함성은 거침이 없다. 산자락 양지에는 복수초가 환한 미소를 짓는다. 산천초목의 잎들이 봉긋해지고 물가의 버드나무는 솜털 이불을 벗어낸다. 이내 노르끼리 한 모습으로 봄을 몰고 온다. 삼천리 강산에 봄소식을 알리는 선두 주자는 당연히 버드나무다. 나날이 변해가는 연둣빛 고운 색은 신선하고 푸른 희망을 준다. 약동하는 봄의 척도가 버드나무다.

한국에 자라는 버드나무 종류는 40여 종에 이른다. 물을 좋아하는 버드나무는 물가에 자리를 잡고 누가 돌보지 않아도 쑥쑥 잘도 큰다. 버드나무는 학명(Salix koreensis Andersson)으로 한국이 원산이다. 버드나무는 생명력이 막강하다. 꺾어 심어도 살고, 뉘어 심어도 살고, 심지어는 거꾸로 심어도 사는 나무로 알려졌다. 이런 강한 생명력을 지닌 버드나무는 고대부터 신성한 대접을 받았다.

버드나무가 한국의 역사에 등장한 지는 오랜 세월이 흘렀다. 고구려 주몽의 어머니 유화(柳花)부인은 물의 신 하백의 딸로 버드나무와 연결된 창조의 신과 그 뿌리를 같이한다. 만주족이나 흉노족은 물론 중국의 한나라 수나라 당나라 명과 청에 이르기까지 버드나무에 얽히고설킨 문화는 우리의 생활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 한국 최고의 역사서인 삼국사기에도 등장하지만 수많은 전설과 이야기 그림은 물론 종교 속에서도 버드나무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전장으로 떠나는 임에게 꼭 살아 돌아오기를 여망 하면서 이 나무를 꺾어주었던 서민의 눈물겨운 이야기와 국조를 출산한 유화 부인 이야기 외에도 고려 태조 왕건, 조선을 세운 이성계에게도 버드나무 신화는 길게 이어져 온다. 버드나무 잎을 물그릇에 띄워 천천히 물을 마시게 한 여인네는 장군의 아내가 되고 마침내 왕비에 오른다는 고전적인 이야기다.

경북 청송에는 버드나무 아래서 결혼을 약속하고 대리 종군에 나선 젊은 남녀의 애틋한 사랑 이야기가 전하여오고, 천안 삼거리 능수버들 역시 이별과 해후를 드라마틱 하게 전달하고 있다. 이야기의 현장에는 지금도 버드나무가 역사를 지키고 있다. 하늘하늘 바람에 휘날리는 버드나무는 여인네에 비유된 상징으로도 전해진다. 아름다운 머릿결을 유발(柳髮)이라 부르고 잘록한 허리를 유요(柳腰)라 한다. 아름다운 눈썹을 유미(柳眉)라 부르기도 했다. 약한 듯 가련한듯하나 어머니처럼 강한 나무 그 나무가 버드나무다.

그뿐이랴 버드나무의 약성은 우리의 일상생활과 아주 가까이 있었다. 조상님들은 버드나무 가지를 꺾어 이를 닦았다. 우리가 양치질이라는 양치의 용어가 이 버드나무에서 시작된다. 양치(養齒)질은 원래 버드나무 가지라는 뜻의 양지(楊枝)에서 시작한다. 가지의 지(枝)에 이빨을 뜻하는 치(齒)로 바뀌어서 양지가 양치란 이름으로 변화된 것이다. 왜 많은 나무 중에 버드나무 가지를 사용했을까? 버드나무에는 뛰어난 항염, 항균 효능이 있어서 건강한 치아를 오래 간직할 수 있었다는 비밀을 조상님들은 알고 계셨다.

수천 년 동안 민간요법으로만 알려져 오던 버드나무의 신비는 1899년 독일 바이엘 사의 젊은 연구원인 펠릭스 호프만이 아스피린을 처음으로 상용화한다. 바이엘사는 진통 해열제인 아스피린 하나로 100년 넘게 세계적인 제약회사로 이름을 떨치고 있다. 버드나무는 연약해 보이지만 인류 건강을 지켜온 나무이자 추운 겨울을 이겨내고 온 누리에 희망을 알리는 봄의 여신이다.

원종태 숲 해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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