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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8.05.09 1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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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국(수필가)

| 중앙신문=중앙신문 | 줄리안 반즈의 소설 ‘10과 1/2장으로 쓴 세계역사’에선가 중남미에서 성모마리아 상을 세웠는데 자기 나라 여자로 만들었다는 글을 읽으며 분개한 적이 있다. 우리보다 못한 나라도 자기 나라 성모 마리아를 만드는데 왜 우리에겐 ‘쪽찐 마리아’가 없는가(이 구절에서 쪽찐 마리아는 있다. 있어도 아주 오래된 마리아다. 확인해 보고 제대로 쓰라는 항의를 받았지만 아직 확인하지도 못했고 지우고 싶지도 않다).
요즘 수필집에 그림이 많아졌다. 화려하지만 그림이 글과 잘 어울리거나 받쳐주는 게 아니라 앞으로 튀어나와 주인 행세를 하는 통에 글이 훼손되는 것만 같아 아쉬울 때가 있다.
몇 년 전 수화전(隋畵展)이 있었다. 시화전(詩畵展)이 시(詩)를 전재로 한 그림인 것과 같이 수필을 전제로 한 그림이다. 시는 글자 수가 적어 그림과 어울리겠지만 수필이란 게 워낙 글자수가 많아 가능할까 했다. 언젠가 김유정 생가에서 소설을 어떻게 시화전과 같은 효과를 낼 수 있을까 했는데 커다랗게 펼쳐진 책 모형 페이지 위에 중심 글을 써 넣어 전시한 걸 보고 탄복했고, 수화전도 성공했다.
문인들이 봄, 가을이면 시화전을 여는데 그 때마다 유독 시화(詩畵)를 곱지 않은 눈으로 보는 시인이 있다. 시 자체가 그림인데, 왜 쓸데없이 군더더기를 붙이냐는 말씀이다. 설상가상, 그림에 그림 덧붙이는 꼴이요, 시인이 자신 없어 화가에게 자기 그림에 가필해달라는 꼴 아니냐는 말씀이다. 맞는 말이다.
‘성상제작(聖像制作) 금지’라는 게 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형상을 만들지도 그리지도 말라 하신 말씀이다. 기독교, 이슬람교, 유대교 공통일 것이다. 꽤 오랫동안 잘 지켜지다가 이교도 개종 과정에서 흔들려, 지키는 종파와 지키지 않는 종파로 갈린 모양이다.
나의 모교는 미션계통 중·고등학교로 성상제작 금지를 철저히 지킬 뿐 아니라 확대 해석해 초대 설립자의 흉상 하나 세우지 못해, 돌아가신 교장 선생님의 흔적을 찾고 싶어도, 어린 후배들에게 교장선생님의 모습을 보여 주고 싶어도, 이 한 말씀 때문에 꼼짝달싹 못해 아쉬워하며 신발 끌고 돌아오곤 한다.
20여 년 전 초등학교 교통안전 웅변대회가 있어 원고를 써준 적이 있다. 한 장의 사진 ― 육교 아래 젊은 여인이 쌩쌩 달리는 위험천만의 도로를 아들의 손잡고 횡단하고, 육교 위에선 하얀 붕대를 친친 감은 환자가 목발을 짚고 계단을 올라가고 있었다 ―을 보고 아주 쉽게 써진 글이다. 원고를 읽은 선생이 사진을 가져오란다. 그런데 그 선생이 사진을 보고 원고를 읽던 감동이 살아나지를 않을 거다. 원고 속 교통사고로 두 다리 잃은 아들이 “어머니 육교를 두고 육교 아래를 달리는 법을 왜 가르치셨습니까”라는 절규가 사진 속에서 들리지 않는 것 같다. 선생은 사진을 포기했고, 원고는 웅변대회에서 입상했다.
작년인가 올 봄인가. 바디칸 궁전에 ‘쪽진 마리아’동상이 한국대사관 앞에 세워졌다는 기사가 났다. 반가웠다. 그러나 한국인 화가의 것이 아닌 바디칸 측에서 만들어 선사한 것이라 자존심은 아직도 남근처럼 꼿꼿해지긴 틀렸다. 그러나 그것도 공연한 짓이지 싶다.
문제는 형상을 만들거나 그림을 그리는 순간, 수천수만의 군상들의 생각 속에 꿈틀거리던 각양각색의 형상들 ― 선망, 은총, 아름다움, 경이로움, 정의… 수많은 이미지들이 화가 한 사람, 한 개의 이미지로 고착돼버리는 것이다. 왜 나의 예수 그리스도가 생전 보지도 듣지도 못한 꼭 이스라엘 서양 사람이어야만 하는가.
한 교회가 있다. 교회에서 하나님께 기도하는 100명의 신도가 있다. 예수님의 형상은 이미 성화(聖畵)로 고착되었으니 한 분이지만 하나님의 형상은 교회 안팎으로 기도하는 신도 100명의 생각 속에 100분의 하나님이 편재(遍在: 유비궈터스)하시다. 얼마나 의미심장한가.
성경에 하나님은 당신의 형상으로 아담을 만들었다는데 미물들에게 성경이 있고 교회가 있다고 가정하면 지렁이 신(神)은 지렁이이고, 소나 말의 신(神)은 소나말일 거라는 생각은 꼭 니체(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가 아니라도 연상이 가능하다.
내 모교의 처사는 얼마나 아름다운가. ‘그립고 아쉬움에 발길 돌리는 졸업생들의 신발 끄는 소리’ 들리나.
들리는가. 시화(詩畵) 그리는 화가의 목소리 “시(詩)로 그린 그림이 더 좋건만, 그림 그려 넣으라니 쯧쯧.”
그림에 글씨 쓰기를 거부하는 화가가 있었다. 그림에 시 나부랭이 적어 호연지기입네 하는 어쭙잖은 선비를 비웃는 ‘취화선(영화)’의 장승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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