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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이야기]동백꽃, 그 비장한 죽음
  • 중앙신문
  • 승인 2018.05.09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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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종태(숲 해설가)

혹독한 추위를 이기고 가장 먼저 피어나는 아름다운 꽃을 아시나요? 이 지극히 주관적인 질문에 대답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추구하는 아름다움의 기준이 다르고 각자의 환경에 따라 만나는 꽃도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대개는 같은 꽃을 보고도 느낌과 표현은 서로 다른 경우가 허다하다.
그러나 꽃이 귀한 겨울에 흰 눈을 흠뻑 뒤집어쓰고 피어난 꽃을 본다면 그 아름다움은 분명 평소와는 달라진다. 일단 희귀성이 모든 평가를 잠재운다. 만인의 눈길을 받는다. 그런 꽃이 한반도의 남쪽에서 겨울에 피어나는 동백(冬柏)이다.
코끝을 자극하는 강한 향의 설중매를 높이 사는 경우도 있지만 꽃이 피는 시기로 보면 동백(冬柏)이 이르다. 봄이 도착하기도 전에 긴 겨울의 추위를 이겨내고 화사하게 피어나는 꽃의 에너지는 인간의 얼어붙은 마음을 녹인다. 희망가를 부르는 자에게는 희망의 상징이 되고 개척자의 눈에는 개척의 외로운 길을 가는 이유가 될 수도 있다.
사시사철 푸른 잎을 달고 혹한의 겨울을 이겨내는 동백은 옛 선비가 닮고자하는 모습이기도 했다. 절개와 기백의 으뜸가는 상징인 송백(松柏)보다도 동백은 한 수 우위를 점하고 있다. 조선의 선비들은 동백을 엄한지우(嚴寒之友)라 하여 치켜세우기도 하였다. 소나무와 대나무가 혹한을 이겨내고 절개를 지키는 가상함이 있지만 동백은 푸름을 지킬 뿐만 아니라 한겨울 혹한에 누구도할 수 없는 붉은 꽃을 피워낸다.
우리의 선조들을 추운 겨울을 이겨내고 꽃을 피워내는 동백에서 인고의 노력을 찬미하고 새로운 나의 시대가 오기를 고대하며 세상의 주인공이 되고자 그를 가까이 했다. 그런 모습을 본받는 사람조차도 존경스러워했던 것이다. 이러한 믿음이 아무도 흉내 낼 수 없는 기품을 사랑하고, 한 치의 흐트러짐이 없는 지조를 일생의 가치로 삼아온 것이다.
봄의 전령이 화신의 등장을 알리면, 삼천리강산에는 백화가 피어난다. 꽃들의 향연이다. 수많은 꽃들이 지천으로 피어나면 동지섣달 꽃 본 듯이 혹하는 마음은 없어도 화사함에 미소를 띤다. 어느 꽃이라 한들 꽃이 아니랴 매화도 귀한 꽃, 진달래도 귀한 꽃, 개나리도 고운 꽃, 서로 어울려 꽃 대궐을 이룬다. 그러나 꽃들의 공통점은 화려함의 뒤에는 시들음의 운명을 맞이한다는 것이다.
대개의 꽃들은 임무를 마치면 꽃잎이 하나둘 바람에 날리고 화려하던 색깔이 변하며 퇴색되어 간다. 그 기간이 긴들 열흘을 넘기는 꽃이 없다고 했다. 화무십일홍(華茂十日紅)은 괜한 이야기가 아니다.
그러나 동백꽃은 질 때의 모습이 특이하다. 아니 비장하다. 꽃잎이 한 잎 두 잎 바람에 흩날리며 떨어지는 것도 아니고 나무에 붙어 시들지도 않는다. 꽃송이가 통째로 툭 떨어진다. 아니 누가 이 꽃을 잘라 던졌단 말인가? 아니면 못된 짐승이나 해충의 소행이 아닐까? 의심도 해본다. 싱싱한 모습으로 눈길을 사로잡던 꽃, 꽃잎이 조금도 시들지 않았는데도 어느 날 아침 바람 한 점 없는데 마치 참수당한 죄인의 머리가 떨어지듯 뚝 떨어지는 것이다. 구질구질함이 없는 청춘의 전성기에 동백은 꽃을 떨군다. 고결한 선비의 넋인가? 은장도를 빼어들은 열녀의 최후인가? 동백꽃은 떨어져 하늘을 보며 아무런 말이 없다. 조선의 선비들이 이 모습을 놓칠 리 없다. 이러한 동백은 많은 시인묵객의 소재가 됐다. 그러나 김유정의 소설 ‘동백꽃’은 오늘의 동백(冬柏)과는 다른 꽃이라고 보아야 한다. 춘천에는 동백이 겨울을 날수가 없다. 춘천을 무대로 봄에 피어나는 동백은 노랗게 피는 생강나무의 또 다른 이름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불리는 이름을 향명(鄕名)이라고도 한다. 공교롭게도 동백의 열매로 동백기름을 만들지만 생강나무열매로도 기름을 만들고 용도도 비슷했다. 확실한 것은 붉은 동백은 향기가 없다. 그러나 노란 동백꽃(생강나무 꽃)은 그윽한 향기가 있다. 김유정의 작품에도 동백은 향기가 있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던가? 알고 보면 더욱 재미있는 것이 식물의 세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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