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박사의 ‘생활속 지혜’] 용서(容恕)와 화해(和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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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박사의 ‘생활속 지혜’] 용서(容恕)와 화해(和諧)
  • 문학박사 문재익(칼럼니스트)  moon-jack68@daum.net
  • 승인 2023.02.05 2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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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익 전 강남대 교수(문학박사)
문학박사 문재익(칼럼니스트)

| 중앙신문=문학박사 문재익(칼럼니스트) | [이 글은 인간이 살면서 누구나 과오나 실책(失策)(?)을 범할 수 있지만, 그것을 용서하고 화해하는 일은, 인간에게 있어 농()익은 과일 열매의 맛과도 같다. 특히 부부간 갈등의 경우는 더욱 그렇다. 그런데도 도저히 용서와 화해가 불가능하여 퇴로(退路)가 없는 경우를 조명(照明)한 것이다.]

용서와 화해의 사전적 정의는 무엇인가? 용서는 지은 죄나 잘못한 일에 대하여 더 이상 꾸짖거나 벌하지 아니하고 덜어 주다이며, 화해는 싸움하던 것을 멈추고 서로 가지고 있던 안 좋은 감정을 풀어 없앰이다. 용서와 화해는 비슷한 듯 서로 다른데, 엄밀히 용서와 화해는 대상(對象)적 행위라는 점에서 어떤 적대적 상대가 있어야 가능하다. ‘용서는 내 잘못은 전혀 없어도 상대가 내게 한 잘못을 일방적으로 용서하는 것 이라면, ‘화해는 내가 상대에게 가()한 위해(危害)를 인정하고 용서를 구하면서, 대신에 그 만큼의 상대의 잘못도 용서하여, 쌍방 과실을 인정, ‘용서를 서로 교환한다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상대가 자신의 잘못은 추호(秋毫:조금)도 인정하지 않고 일관(一貫)되게 내 잘못만을 주장 한다면 쌍방이 용서를 교환하는 화해는 불가능 한 것이다. 그러면 내 쪽에서만 상대의 잘못을 용서해야하는 일방통행 방식을 취할 수밖에 없다.

사실 용서와 화해는 과거를 잊고 덮어두는 것이 아니라, 밝은 미래를 위해 과거에 얽매이지 않아 마음을 평화롭고 정신을 건강하게 한다. 그렇지만 용서하고 잊는 것은 쉽지 않다. 더더욱 화해는 두말할 나위도 없다. 화해는 먼저 용서라는 전제조건이 따라야 한다. 상처를 준 사람으로부터 생긴 마음의 상처와 흉터를 갖고 살아가는 것은 누구나 큰 불행이다. 그러나 용서와 화해라는 것이 하고자 하는 상대의 성격과 사람 됨됨이에 따라 불가능한 경우가 있다. 특히 타인에 대한 배려심이 없고, 인간미가 없으며, 자존심과 자기주장이 강할 뿐만 아니라, 부부간에 있어서도 상대의 공()은 인정해 주지 않고 본인 공()만 한 결 같이 주장하는, 무엇보아도 고집불통이며 평소에도 억지 부리고, 우격다짐의 대왕(大王)인 성격의 소유자와의 용서와 화해는 부질없고 무의미한 일이다. 이런 사람들을 잘 지켜보아라. 대체로 인간으로서 기본 양심도 없고 천상천하 유아독존(唯我獨尊:세상에서 자기 혼자만이 잘 났다고 뽐냄)적이고 자기편향(自己偏向:자신에게만 치우침)주의 자들이다. 원래 고집불통의 성격 소유자는 자기개혁, 혁명을 해야 하는 데, 이는 거의 불가능하다. 해가 서쪽에서 뜨기를 기대하는 편이 더 낫다. 평생 그 고집 그대로 갖고 살다가 죽어야 끝이 나는 법이다. 그래서 이런 부류의 사람들은 용서와 화해를 별로 원치도 않을뿐더러 수용할 마음도 없다. 그렇다면 용서와 화해를 먼저 원하고 청하는 쪽에서 모든 잘못을 수용하고, 굽히고 들어가는 방법밖에는 없는데, 이는 너무 비참하고 가혹한 일이 아니겠는가? 설령 그렇게 해서 임시로 용서와 서로 화해가 된다 해도, 시간이 좀 지나면 두고두고 되새김질 하며 자기 합리화, 정당화, 변명 그리고 상대를 탓하며 상대의 마음을 후벼 파고 도려낼 것이다.

한마디로 용서와 화해도 의미가 있어, 해야 할 사람이 있고, 아무 의미가 없는 사람도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방법은 무엇인가? 살아생전 내내 혼자 감내(堪耐:참고 견딤)하고 삭히고 살아가는 방법 밖에는 다른 도리가 없다.’ 그저 내 운명이려니! 김수환 추기경님이 반목(反目)의 시대에 용서하고 화해하자는 말씀 내 탓이려니!’ 내가 잘 못 선택한 인연이리니! 체념하고 사는 것이 그나마 내 마음의 평안과 평강을 찾는 길이다. 사람의 태생은 불변이 아니던가? 절대 미련 두지 마라. 애석(哀惜)하게도 생각하지 마라. 빠른 포기가 가장 현명한 방법이다. 오늘날도 반상(班常)은 분명히 존재한다. 이럴 경우 대개는 부모형제들이 내 자식, 내 형제 쪽 손을 들어 주어 더욱 사태(事態)를 심각하게 만들어 버리기도 한다. 그 부모형제도 전혀 다를 바가 없다. 이 경우도 그 사람의 집안 내림으로 모두가 대동소이(大同小異:서로 비슷비슷함)한 법이다.

그렇다면 용서와 화해를 통해 우리가 지녀야할 생활의 지혜는 무엇인가? 세상에는 되는 사람이 있고 안 되는 사람이 있다. 안 되는 사람은 하나님, 부처님, 알라신이 와서 중재를 하고 마음을 돌려놓으려 해도 절대 안 되는 법이다. 그러므로 안 되는 것을 시도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결국은 내 마음만 아프고 서글프며, 시간과 정력 낭비이기 때문이다. 모든 미련과 인연의 끈을 마음속에서 모두 내려놓아라. 인생을 살아가면서 포기할 것은 빨리 포기하는 것도 중요하며, 그래야 미래 지향적인 사람일 뿐만 아니라 훗날을 기약할 수도 있다. 전후 상황 파악을 잘 하는 것도 삶의 지혜중 하나이다. 그러면 내 마음의 고요와 평온을 찾으리라. 때론 하염없이 흘러내리는 회한(悔恨)의 눈물도 그치게 되리라. ‘용서란 평온한 감정이다. 그런 감정은 자신의 상처를 덜 개인적인 것으로 받아들이며, 자신의 감정에 책임을 지고 그 사건의 피해자가 아닌 승리자가 되었을 때 생겨난다.’ ‘용서학의 세계적 권위자인 프레드 러스킨 교수의 말이다.

끝으로 정신과의사인 토마스 사스의 말을 인용한다. ‘어리석은 자()는 용서하지도 잊지도 않는다. 순진한 자는 용서하고 잊는다. 현명한 자는 용서하나 잊지는 않는다. 그러나 평온한 자는 마음에 가해자가 없어 용서할 것조차도 없다.’ 그렇다. 용서 받는 것 보다 용서할 때가 더 마음에 평온이 온다. 내가 먼저 용서하고 마음에 평온을 찾았으니 구차한 화해도 필요 없다. 맑은 공기, 깨끗한 물, 밥을 잘 먹어야 하듯, ‘마음을 잘 먹는 생활의 지혜가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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