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비록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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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비록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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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8.04.25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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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년섭(수필가)

| 중앙신문=중앙신문 | 내가 고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대학 입학시험을 위해 막바지정리를 할 때, 국사 담당인 민병하 선생님이 예상문제를 8절지 4~5매에 요약, 등사기로 인쇄하여 나누어 주셨는데 그 해 고려대 국사시험문제는 모두 이 유인물 범위 내에서 출제되어 만점을 받을 수 있었다.
‘서애 유성룡-징비록. 임진왜란’ 으로 요약된 역사만 기억해 온 나는 최근 안동 하회마을을 다녀오고 TV에서 방영되는 사극을 보고 짧은 역사지식에 몸 둘 바를 모르고 있다. 임진왜란이라는 국가존립위기에 이순신만 부각되고, 국방과 전투의 모든 요직을 도맡아 나라를 도탄에서 구한 류성룡의 업적은 까마득히 몰랐으니 고등교육을 받은 내 체면이 말이 아니다.
바다에 이순신, 육지에 류성룡, 임진왜란을 승리로 이끈 주역이지만 권율장군, 김응서장군도 잊어서는 안 된다.
방송이나 신문 논설에서 듣고 보는 그 시대상을 보며 왜 류성룡을 하늘이 우리나라를 구하기 위해 낸 재상이라고 하는지 음미하고 있다. 아울러 막연하게 선조임금님은 유약하고 무능한 군주였다는 선입견을 갖고 있던 나를 부끄러워하고 있다. 임금님의 글씨는 당대 한석봉에 필적할 만큼 명필이었고 붕당의 싸움 속에서도 인재를 잘 발탁하여 혼란스러운 정국을 이끄는데 소홀함이 없었다.
좌의정 송강 정철은 우리가 교과서에서 익히 배우고 알았던 가사문학의 대가. 문인이었던 그가 어찌 그런 술수를 부렸을까. 상대 당파 지도급인사였던 류성룡을 골탕 먹이고 그들만의 세력을 구축하려는 꾀를 부려 왕세자를 뽑자는 안을 냈다가 파직 당하는걸 보며 선조의 결단력이 대단하다는걸 알았다.
조선14대왕 선조는 중종의 서자였던 덕흥군의 셋째 아들이었으니 왕위서열은 까마득하여 왕위 계승은 꿈도 꾸지 못했을 것이다.
더구나 선조는 조선조 임금 처음으로 직계가 아닌 방계에서 즉위한 탓으로 이러한 분위기에 붕당은 나라일 대신 세력싸움이나 하고 국민은 안중에도 없는데 그나마 강직하고 사리사욕에 먼 류성룡같은 인재를 가까이 두었기에 조선의 명맥이 유지되었다면 과장일까
대사헌 윤두수는 류성룡이 이순신으로부터 뇌물을 받았다는 소문을 만들어 우의정대감의 가택을 수색하는 위험한 노름을 벌인다. 집안에 값나가는 물건은 하나도 없고 이순신 어머니로부터 온 한글편지와 옷 한 벌이 나온다.
지난번에 자기아들을 추천하여 벼슬을 높여 주었는데 은혜를 갚고자 하였으나 가난하여 드릴게 없고 아들 옷을 한 벌 짓는데 대감께도 누비옷 한 벌을 지어 올리오니 기쁘게 받아 달라는 글과 무명으로 지은 누비저고리 한 개, 상대당파이지만 청렴하고 강직한 류성룡의 인품에 감복한 윤두수는 이순신을 몇 단계 뛰어 전라좌수사에 임용하려는 류성룡의 뜻을 흔쾌히 지원한다.
징비록은 현재 30 여종이 번역, 출간되었다고 한다.
임진왜란당시 전시총사령관인 영의정 겸 도체찰사 류성룡이 전쟁 7년간 온 몸으로 겪은 후 집필한 전란의 기록물이다. 국정최고의 요직에 있으면서 전쟁의 현장에서 백척간두의 나라를 이끌었던 그 어른이, 미리 준비하여 환란을 경계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후세에 전하고자 피눈물로 쓴 전란사. 역사의 과오를 꾸짖고(懲) 미래의 위기에 대비하는(毖)지혜와 통찰을 구하고 있다.
동서붕당으로 인한 조선통신사의 내부분열, 파천을 둘러 싼 정치적 대립, 임금님의 피난에 대한 국민의 반감, 난리 통에도 당파싸움만 일삼으며 저만 살려는 지도층, 200여 년간 큰 전쟁 없이 평화롭던 조선은 가시밭길을 걷기 시작한다. 가장 큰 이유는 정치인등 지도층의 싸움질 때문일 것이다.
우리의 몸에는 반역의 피가 흐르는가. 시기와 질투, 모함, 남을 짓밟고 일어서려는 욕심의 피가 흐르고 있나보다. 나라가 백성을 걱정하고 잘 살게 힘을 다 해야 하는데, 거꾸로 백성이 지도층을 걱정하게 생겼으니 나라가 잘 굴러 갈 수가 없었다.
어느 학자는 선조 때와 해방 후 남북관계를 둘러싼 시기의 좌우익 갈등, 요즘의 좌 클릭된 상황을 나라발전의 중대한 기로이며, 반드시 극복해야할 과제라고 이야기 한다.
나라 형편이야 어찌되든 자기 당파의 이익만 생각하고 집권야욕에 목말라하는 정치인들을 보며 정신개조운동이라도 벌이고 싶다. 권력을 가진 사람들은 그 힘을 행사하여 자신의 영달을 좆기보다 진심어린 애정으로 백성을 보살펴야 하는데, 예나 지금이나 국민의 뜻과는 반대로 가고 있다.
선조, 인조 연간의 전쟁으로 약 140만 명의 인명이 희생되고 국토는 황폐화되었으며 입에 담을 수조차 없는 일이 벌어졌다. 이런 와중에도 국가의 기밀을 왜적에게 팔아넘긴 첩자가 있었으니 김순양 등 40여명을 처단하였다한다.
행주, 진주, 한산대첩의 쾌거를 기억하고 벽제관, 울산성, 사천전투의 패배를 거울삼기위해 아이들에게 징비록을 한번 읽어보기를 권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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