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은경의 사람과 음악] 걸작을 만든 작곡가 이야기 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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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은경의 사람과 음악] 걸작을 만든 작곡가 이야기 ②
  • 권은경 삼육대 교수  piamokek@gmail.com
  • 승인 2022.10.13 2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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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은경 교수.
권은경 삼육대 교수

| 중앙신문=권은경 삼육대 교수 | TV 채널을 돌려보다가 우연히 예전 유명 가수였던 이모 가수가 나와서 자신의 옛 앨범 중 가장 아쉬움을 남긴 앨범에 관하여 이야기하였다. “돌아보면 그 당시 가장 음악에 가장 집중한 시절이었던 것 같아요.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그 시절로 돌아가서 다시 한번 나에게 집중하고 싶어요

누구나 돌아보면 자신의 인생에서 자기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일에 대해 집중하고, 미쳐본 적이 있지 않았을까? 필자도 그런 적이 있었다. 아마도 대학 졸업 연주와 박사 논문심사를 앞두고 인생에서 그만큼 열심히 해본 적이 없었던 것 같아서, 다시 돌아보면 피아노 건반과 소리를 들으면 멀미가 날 정도로 힘들었고, 그리고 박사 논문 관련 종이만 보아도 이제 글자가 읽히지 않을 정도로 눈이 어지러웠던 기억이 가득한데, 돌아보면 그 시절이 그립다. 그만큼 그 일을 열심히 사랑했었기 때문이리라.

누구나 다 기억하는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도 그랬다. 비록 35세의 나이를 살았지만 살아생전 600곡이 넘는 곡을 작곡한 그는 얼마나 음악에 심취해 살아간 걸까? 모차르트는 어린 시절 신동이라는 타이틀 때문에 5살 때부터 연주 여행을 다녔었다. 많은 음악학자의 연구에 따르면 모차르트가 일찍 생을 마감한 것도 어쩌면 어린 시절부터 잦은 여행을 하느라 몸이 병약해졌기 때문이리라 짐작하는 사람들도 많다. 계속 이동하며 타지에서 보낸 시절들이 전혀 편하지 않았으리라. 그런데도, 모차르트의 아버지는 어린 모차르트에게 엄한 분이셨다. 오로지 음악만을 위해 더 인정받고 더 유명한 연주자가 되기 위해 모차르트는 어머니와 단둘이 파리로 갔다. 그러나 파리에서의 삶은 안정되지 못했고, 결국 병으로 어머니가 돌아가셨지만, 모차르트는 자신의 능력만을 강조하는 아버지에게 어머니가 돌아가셨고 자신의 처지가 굉장히 힘들다는 사실을 말하지 못했다. 오로지 자신의 음악적 능력은 가족의 생계를 꾸려가는 데 사용했어야만 했으니까. 나는 모차르트의 순수한 음악에 관한 열정이 오로지 가족의 생계와 수단으로만 사용되기 위해 작곡과 음악 활동을 열심히 해야만 했던 모차르트의 처지를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미어진다.

모차르트의 음악은 여러 면에서 획기적인 업적을 남겨두었다. 그의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 ‘코 지판 투데와 같은 음악은 정말 하늘이 주신 영감이라는 게 이런 거구나라는 것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이렇게 하게 된 것도 그가 바로 궁중에 속한 음악가도 아니고 바로 자유롭게 활동하는 프리랜서 음악가였으므로 가능했다. 대부분 음악가는 귀족에게 종속되어 귀족의 파티를 위해 음악을 만들고 연주 활동을 하였는데, 이 당시 모차르트는 자신의 곡에 대해 미리 신청자를 받고 예약을 하는 연주회를 진행하였다.

그런데 점점 모차르트의 연주회는 무산되고, 그의 음악의 인기가 사라졌다. 이러한 날들은 모차르트에게 너무나도 큰 아픔을 주었다. 결국 모차르트는 말년에 자기 이름을 내세우지 못하고 곡을 팔정도로 귀족사회로부터 인정을 받지 못하였다. 정말이지 모차르트의 말년은 그 어떤 음악가보다 너무나도 초라했다. 자신이 사랑하는 음악이 인정을 받지 못한 채, 이름도 숨기고 곡을 써야만 하는 처지가 되었을 정도로, 그는 그의 유작 레퀴엠을 작곡할 때쯤, 친구에게 편지를 썼다. “이 곡은 아마도 내 장례식에서 연주될 것이다. 나를 위한 진혼곡이 될 것 같다,” , 결국 모차르트는 자신의 레퀴엠을 다 쓰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다.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 누군가에게 인정을 받고, 자신이 사랑하는 일이 생계 수단과 관계되지 않는 자신의 행복과 만족만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현실은 늘 그와 반대이다. 내가 사랑하는 일을 유지하기 위해, 힘듦을 참고 견디며, 그로 인해 인생의 깊이가 달라지고, 사람을 더 이해하게 되는 것 같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이 더 사랑하고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대하여 더 애착하므로 깊이가 생긴다. 만약 모차르트가 그저 귀족들에게 인정받는 부유한 음악가였다면, 그러한 작품이 나올 수 있었을까? 더 가난하고, 더 낮은 마음으로 음악 속 깊이를 더하기 위해 그는 그렇게 슬프고 짧은 인생을 남겼나 보다.

어쩌면 필자인 나에게도 돌아가고 싶은 그 순간은 나에게 집중할 수 있어서 좋았던 것이 아니라 졸업이라는 큰 고비를 넘기기 위해 발버둥을 쳤기 때문이 아닐까? 돌아보면 그 시간이 그 일이 정말 좋아서가 아닌, 집중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훨씬 더 가치가 있었으리라. 그런데 인생에서 그런 시간은 두 번 다시 오지 않기 때문에, 돌아보면 아름다웠노라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도종환 시인의 흔들리는 꽃의 시 구절처럼 젖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빛나는 꽃들도 다 젖으며 피었나니..’라는 구절처럼 모차르트의 음악의 꽃은 그의 젖은 인생의 조각들로 그렇게 아름답게 꽃피워졌으리라 다시 한번 새겨본다.

권은경 삼육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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