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수처 ‘위상 회복’은 ‘의혹 해소’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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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수처 ‘위상 회복’은 ‘의혹 해소’ 뿐
  • 박남주 기자  oco22@hanmail.net
  • 승인 2021.12.12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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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남주 국장
박남주 국장

| 중앙신문=박남주 기자 | 요즘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의 돌아가는 행태를 보면 아주 오래전 검찰에 출입하던 동료 기자들의 얘기가 떠오르곤 한다.

당시 특수부 검사로 명성(名聲)이 자자해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모 검사장이 기자들에게 ‘세상에서 가장 나쁜 검사가 누구일 것 같냐?’고 물은 내용이다.

그는 "자신의 출세를 위해 정치권에 기웃거리는 등 인사 때마다 학연과 지연, 혈연을 내세우는 검사도 나쁜 놈이고, 유흥 접대를 좋아하는 부패한 검사도 나쁜 놈이지만 진짜 나쁜 놈은 따로 있다"고 말했다.

그가 말한 ‘나쁜 놈’은 자신에게 맡겨진 일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는 ‘무능한 검사’란 것이다.

공수처는 지난 1월 고위 공직자들의 부패를 엄정하게 수사하고, 기소권을 독점해온 검찰을 효과적으로 견제할 것이란 국민들의 큰 기대를 안고 출범했었다.

이후 1년이 다 돼가는 공수처의 성적표는 수사기관이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형편없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의 특혜 채용 의혹을 1호로 시작해 지금까지 모두 11건을 수사했으나, 이렇다할 성과는 물론 구속자와 기소자가 단 1명도 없는 초라한 성적이 전부다.

최근엔 이른바 ‘고발 사주’ 의혹 사건의 핵심 인물인 손준성 검사(대구고검 인권보호관)에 대한 구속영장을 두 차례나 청구했으나, 모두 기각돼 참패(慘敗)하고 말았다.

1차 청구 때 고발장 작성과 전달 주체를 특정치 못해 기각당했었는데, 두 번째 영장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이런 와중(渦中)에 엎친데 덮친 격으로 국민의힘 김웅 의원실을 압수수색했다가 법원으로부터 ‘압수수색 효력 취소’ 결정까지 받는 수모(受侮)를 겪기도 했다.

이와 관련, 여운국 차장검사(공수처)는 "저나 공수처장은 수사 경력이 없어, 이런 면에서 아마추어"라고 실토(實吐)했다.

수사기관은 공소제기 전 피의자를 상대로 수사 능력을 테스트하거나, 연습하는 곳이 아닌, 수사 능력을 입증하는 곳이다.

이 사건 제보자인 조성은 씨가 "수사에 자신이 없으면 중단하는 게 낫다"고 말할 정도면, 공수처는 이미 수사기관으로서의 신뢰를 잃은 것이라 해도 과언(過言)은 아니다.

공수처 간부가 스스로 '아마추어'란 말을 거론한 것에 동정해줄 국민은 단 한 명도 없다. 그리고 더 큰 문제는 스스로 아마추어를 자처하면서, 대적할 상대를 프로들만 고르는데 심각성이 있다.

이 사건 실체(實體)를 보면 11건 모두가 대체로 정치권과 연계된 사건들이며, 특히 야권 유력 대선 후보에게 집중돼 있다.

수사 역량이 따라주지 않은데, 프로선수들인 정치인 수사에 무리수를 두다 보니 '권력의 하청 수사기관'이란 꼬리표가 붙고 말았다.

이런 이유로 항간에선 ‘과거 정치검찰과 무엇이 다른지 알 수 없다’는 볼멘 소리가 터져나온다.

상황이 이럼에도 공수처는 지난 6일 판사사찰 의혹 수사를 목적으로 손준성 검사에게 또 한차례 소환장을 보냈다.

공수처는 이같은 고발 사주 사건에 잇따른 영장 기각으로 입은 내상을 판사사찰 수사로 돌파구를 찾아 보겠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판사사찰 의혹은 이미 지난 2월 서울고검이 무혐의 처분을 내린 사건이어서 어떤 방향의 수사가 이뤄질지에 대해선 파악이 어렵다.

다만, 공수처가 이 사건을 수사해 괄목할 만한 성과를 내지 못하면 '무능 공수처'란 딱지가 붙어도 달리 해명할 방법이 없다는 점이다.

이처럼 미래가 암울(暗鬱)한 공수처의 앞길은 두 가지 정도로 요약해 볼 필요가 있다.

우선, 공수처의 수사 역량이 계속 실망스럽다면 차기 정권에서 존폐(存廢)를 논의해야 한다.

그리고 또 하나는 스스로 수사 역량을 키울 때까지 수사를 최대한 자제커나, (수사) 대상을 재조정하는 것이다.

군사훈련을 제대로 받지 않은 소년병에게 탱크와 미사일 등 거대한 무기를 더 이상 맡길 수 없기 때문이다. 정치검사와 부패검사보다 더 나쁜 검사가 바로 ‘무능한 검사’다.

수사 능력도 없고, 수사에 정당성도 없으며 인권 친화적이지도 않고 정치적 공방의 소재만 제공하는 공수처야말로 '가장 나쁜 검사'다.

하지만 공수처엔 유능한 수사진이 포진돼 있다. 다시한번 철저하게 재무장해 세상, 특히 정치권의 모든 의혹을 명명백백(明明白白)하게 밝혀 위상을 되찾고, 국민들의 궁금증을 해소해 주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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