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론이 본 세상] 병자호란의 뼈 아픈 교훈이 만든 '용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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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론이 본 세상] 병자호란의 뼈 아픈 교훈이 만든 '용진진'
  • 김덕현 기자  self-test@hanmail.net
  • 승인 2021.06.25 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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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진진은 인천시 강화군 선원면 지산리 연리 215외 9에 위치해 있다. 1999년 3월 29일 인천시 기념물 제42호로 지정됐다. (사진=김덕현 기자)
용진진은 인천시 강화군 선원면 지산리 연리 215외 9에 위치해 있다. 1999년 3월 29일 인천시 기념물 제42호로 지정됐다. (사진=김광섭 기자)

| 중앙신문=김덕현 기자 | 화도돈대에서 북쪽으로 해안순환도로를 따라 2.5㎞ 정도 올라가면 왼편에 보이는 누각이 용진진(龍津鎭)이다.

인천시 강화군 선원면 지산리 연리 215외 9에 위치한 용진진은 1999년 3월 29일 인천시 기념물 제42호로 지정됐다.

군사적 요새인 용진진은 숙종 42년에 처음 설치돼 3개의 돈대를 관장했으며, 진은 효종 7년인 1656년에 축조됐다.

용진진은 인천시 강화군 선원면 지산리 연리 215외 9에 위치해 있다. 1999년 3월 29일 인천시 기념물 제42호로 지정됐다. (사진=김덕현 기자)
용진진은 인천시 강화군 선원면 지산리 연리 215외 9에 위치해 있다. 1999년 3월 29일 인천시 기념물 제42호로 지정됐다.

봉림대군 시절 강화에서 직접 병자호란을 겪었던 효종은 보장처로서의 강화의 중요성을 인식해 모두 8개의 진보를 세웠다. 

용진진은 본래 병마만호(兵馬萬戶)의 관리 아래 있었고 군관 24명, 사병 59명, 진군 18명 등 모두 101명의 병력이 주둔했으며, 포를 놓는 자리인 포좌 4문과 총을 놓는 자리인 총좌 26곳의 시설물이 있었다고 한다.

세월이 흐르며 석축 대부분이 없어지고 홍예문 두 곳만 남아 있던 것을 1999년 문루와 좌강돈대를 복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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