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한 칼럼]연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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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한 칼럼]연실
  • 중앙신문
  • 승인 2018.01.11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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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한(수필가, 칼럼위원)

요즈음 겨울 날씨는 삼한사온(三寒四溫)이 없는 것 같다.

한 열흘간 매섭게 불어대던 칼바람이 오늘은 숨을 죽였다. 하긴 가로수에다 알전구를 매달지 않나. 들판을 온통 비닐로 도배하지 않나. 자연의 순리를 그르치는 인간들의 행태를 보면 날씨도 성이 날 만하리라.

모처럼 아내와 함께 강가를 거닌다. 꽁꽁 얼어붙은 얼음판 위에는 꼬맹이들의 얼음지치기가 한창이다. 강섶에는 발목이 얼어버린 갈대가 오들오들 떨고 있다.

털모자를 눌러쓴 꼬마가 할아버지와 함께 방패연을 날리고 있다. 연 얼굴에는 하회탈이 그려졌다. 얼레에 감긴 실을 풀어주자 하회탈이 실없이 웃으며 날아오른다.

유년시절 이맘때쯤이면, 아랫목 뜨신 사랑방에는 아버지가 연을 만들었다. 밀가루 풀이 끓고 있는 화로 옆에서 문종이 한가운데를 가위로 동그랗게 구멍을 낸 후 네모지게 자른다. 그 구멍을 중심으로 대나무를 다듬어 만든 머릿살, 허릿살을 붙이고 각 모서리에 목줄을 매달면 연 만들기 작업이 끝난다.

그런 날이면 점심 먹는 것도 잊고 동네 앞 언덕배기 위에서 연을 날렸다. 그때 함께 연을 날렸던 친구들은 지금 어디에서 연처럼 날고 있는지 그립다.

연은 튼실하게 만들어야 하지만 균형도 맞아야 한다. 한쪽이 길거나 짧으면 연이 하늘로 올라가지 못하고 빙글빙글 돌다가 땅으로 곤두박질치기 십상이다. 바람이라도 부는 날이면 더욱 그렇다.

연실은 질겨야 끊어지지 않는다. 목화로 만든 무명실은 곧잘 끊어진다. 나일론실이면 좋겠지만 그 옛날에는 나일론실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연싸움이라도 벌이는 날이면 연실 좋은 연이 최고다. 옷소매에는 늘 콧물 자국이 뻔질뻔질하던 뒷집 용식이도 연싸움에서는 언제나 이겼다. 나일론 공장에 다니는 그의 누나 덕분이다. 높이 솟아오르는 연을 따라 그의 어깨도 따라 올라가며 유세 떠는 모양새. 지금 생각해도 웃음이 나온다.

꼬맹이 손에 든 얼레가 뱅글뱅글 돌아가고 있다. 옆에는 할아버지가 연실을 잡고 당겼다 늦추기를 반복한다. 방패연이 바람을 타고 높이 솟아오른다. 강을 굽어보는 멀미나는 25층 아파트 꼭대기 층 창문 앞에 다다르자 오지랖 넓게도 안부까지 묻는다.

허공을 날고 있는 연을 보자, 뜬금없이 친구가 자주 하던 우스개 하나가 떠오른다.

‘ㅇㅇ학교를 나왔나? 고향이ㅇㅇ인가? 성(性)이ㅇㅇ김 씨인가?’

술이라도 얼큰한 날이면 혼자 중얼거리는 자조 섞인 말이다. 술청 맞은편에 앉아있는 내가 고개라도 끄덕일라치면 “야, 친구야, 내 말이 맞지?”라며 확인까지 한다.

하긴 술자리에서 그냥 흘려보내는 실없는 소리만은 아니다. 이순이 되기까지 에돌며 살아온 내 공직생활도 그러하긴 마찬가지였다. 학연(學緣), 혈연(血緣), 지연(地緣) 등 삼연(三緣)이 부족한 나로서는 더욱 그러했었다. 인사이동 철이면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그네들끼리 짬짜미하는 꼴을 보면 괜스레 어깨까지 축 처지는 내 몰골이 싫었던 적도 많았다.

같이 걷던 아내가 뚝, 발걸음을 멈추며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본다.

“여보, 지난밤에 기침을 하더니만 안색이 좋지 않아요?”

대답은 하지 않고 하늘만 멍하니 쳐다본다.

겨울 기(氣) 잔뜩 머금은 쪽빛하늘에는 헬리콥터가 툴툴거리며 날아간다. 하회탈 연이 높이 떠 있다. 팽팽한 연실도 곧추서 있다.

아내 얼굴을 곁눈질해본다. 아내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보고 있다.

역시 튼실한 연실은 아내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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