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촌의 세상 돋보기]과분한 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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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촌의 세상 돋보기]과분한 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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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7.12.22 0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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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촌(수필가, 칼럼위원)

| 중앙신문=중앙신문 | 묵직한 택배가 왔다. 발신인 이름을 확인하자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멀리 떨어져 있어 출판 기념회에 참석하지 못했던 수필 동인의 동인지와 회지, 그리고 내가 궁금해 할 기사가 실린 지방신문 몇 부까지 챙기고 만년필로 눌러 쓴 편지가 들어 있었다. 

‘강촌 선생님, 약국 앞 가로수의 플라타너스가 엉성해졌습니다. 우리는 이제 막 시작한 겨울을 나무와 함께 또 버텨내야 합니다....’ 로 시작한 편지는 익숙한 글자 자체만으로도 따뜻하게 다가오고 가슴이 뭉클해 온다. 메일을 자주 주고 받고 또 카톡도 이용하고 약국이 한가해진 시간이면 전화로 수다를 떠는 사이인데 이렇게 손으로 눌러쓴 편지를 동봉한 것은 각별한 우정을 담아 보내고 싶었으리라.  

과분한 우정, 문학으로는 선배이고 원로로써 지명도가 높아 어디서나 받들림 받는 문우이다. 무거운 책 배달이야 집행부에 부탁하면 될 일을 직접 전달하고 싶었던 그 마음이야말로 과분한 우정이라는 생각을 하노라니 어느 시인의 우정에 관한 시가 떠오른다.  

‘사람이 사람을 만나 서로 좋아하면
두 사람 사이에 물길이 튼다.
한 쪽이 슬퍼지면 친구도 가슴이 메이고
기뻐서 출렁거리면 그 물살은 밝게 빛나서
친구의 웃음소리가 강물의 이 끝에서도 들린다. ~하략’

그래, 어쩌면 그 문우는 나에게 그런 벗인지도 모른다. 맑은 물길 같은 문우, 삶에서 최대의 행복이 사랑에서 비롯된다면 우정은 그 행복을 보다 빛나고 풍성하게 하는 것이리라. 인품이 맑은 강물처럼 조용하고 은근하며 또 예술과 인생을 소중히 여길 줄 아는 사람, 그는 그런 문우이기에 나는 그를 더욱 귀하게 여기는지도 모른다. 누군들 마음이 통하는 친구 몇 명 쯤 어찌 없을까만, 넘치지도 마르지도 않는 수려한 강물처럼 은은히 흐르는 우정은 흔치 않으리라.

이러한 우정이 귀하디귀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무엇보다 내가 먼저 그 사람같이 되지 못하기 때문이고 또 남과 북의 거리만큼이나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가 설령 어떤 실수나 잘못을 저질렀더라도 내가 변명하기 전에 분명 피해가지 못할 이유가 있었을 것이라고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고 믿어줄 친구이기에 더 든든하게 여겨진다. 그런 삼사십년지기 벗이 적어도 내게 몇 명은 있기에 나는 오늘도 가슴 따뜻하게 살아가고 있으며 삶마다의 고비를 잘 넘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벗의 곤경을 연민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벗의 성공을 내 일처럼 좋아하고 찬양하는 것이야말로 남다른 맑은 인품이 필요하다. 또한 벗은 또 다른 자기 자신이므로 벗을 믿지 못함은 벗에게 속아 넘어가는 것보다 더 수치스러운 일이란 말도 있다. 넘치지도 마르지도 않는 수려한 강물처럼 가만히 믿어주고 밀어주는 벗, 긴 말 전하지 않아도 미리 물살로 알아듣고 처세에 아둔한 나를 공개적으로 믿어 주고 지지해주는 친구가 내게도 있다는 것이 한해를 마무리하는 마음에 위안이 된다.

과분한 우정에 몸 둘 바 모르겠으나 그 힘으로 놓았던 맥을 다시 잇는다. 같은 것을 같이 좋아하고 같은 지향을 갖고 있기에 우정의 끈은 더욱 단단하게 묶어지는지도 모른다. 그대를 생각할 때면 언제나 유유히 흘러가는 신선한 강물이 보이고 소리 없이 떨어지며 주변을 행복하게 만들어 주고 웃음 주는 사월의 벚꽃 생각이 난다. 내게 기쁨 주고 편안함을 준 그대에게 나 또한 그런 벗으로 남고 싶다.

오늘의 내가 있기까지 믿음 주시고 힘 실어주며 격려 아끼기 않았던 선배님들 문우들 떠올리며 나는 한해 마무리로 보낼 인사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늘 그분들의 주변에서 멀어지고 싶지 않은 마르지 않을 물길을 만들고 싶어서다.

~~전략
긴 말 전하지 않아도 미리 물살로 알아듣고
몇 해쯤 만나지 못해도 밤잠이 어렵지 않은 강
아무려면 큰 강이 아무 의미도 없이 흐르고 있으랴
세상에서 사람을 만나 오래 좋아하는 것이
죽고 사는 일처럼 쉽고 가벼울 수 있으랴

큰 강의 시작과 끝은 어차피 알 수 없는 일이지만
물길을 항상 맑게 고집하는 사람과 친하고 싶다
내 혼이 잠잘 때 그대가 나를 지켜보아 주고
그대를 생각할 때면 언제나 싱싱한 강물이 보이는
시원하고 고운 사람을 친하고 싶다.

마종기 ‘우화의 강’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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