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루떡과 초코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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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루떡과 초코파이
  • 유지순  webmaster@joongang.tv
  • 승인 2020.11.03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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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지순 (수필가, 칼럼위원)
유지순 (수필가, 칼럼위원)

| 중앙신문=유지순 | 금년도 저물어가고 있다.

날씨가 추워져 얼음이 얼기 시작하니 해마다 되풀이 되는 보도블록 가는 일이 시작된다. 길이 파헤쳐 지고 있는 것을 보고 연말이 다가왔음을 실감한다.

세월의 빠름을 유수나 화살에 빗대어 표현하지만 아무리 말해도 지나치지 않을 만큼 어느새 한 해가 또 훌쩍 흘러가버렸다.

개성공단에서 일하는 근로여성들에게 간식으로 초코파이를 나누어 준다는 기사를 본적이 있다. 그런데 그녀들은 집에서 기다리고 있을 동생들에게 먹이려고 그것을 먹지 않고 집으로 가져간다고 해서 안타까웠다.

예전에는 우리나라도 할머니나 어머니들이 잔칫집 상에 나오는 떡이나 먹을 것을 싸가지고 와서 아들딸이나 손자들에게 먹였다. 6·25전쟁 후 먹고 살기 어려웠을 때 학교에서 원조 받은 분유 찐 것을 나누어 주었는데 동생 주려고 먹지 않고 집으로 가져가는 아이도 많았다.

전에는 시제를 지내면 제사가 끝난 뒤 제상에 올렸던 모든 음식을 골고루 나누어 한 몫씩 주었다. 그것을 먹지 않고 집에 가지고 갔던 추억은 누구나 있을 것이다. 북한에서는 우리가 힘들게 살던 수십 년 전에 겪었던 일을 지금 격고 있으니 이남과 이북의 생활 정도의 차이가 얼마인지 짐작하고도 남는다.

지난 시절, 집에 싸온 음식들은 주로 떡이었고, 그중에서도 시루떡을 먹었던 생각이 제일 많이 난다. 시루떡과 초코파이는 시간의 흐름과 사회의 변화로 같은 뜻을 포함하게 된 맛있는 음식이 되었다. 여러 나라에서 인기가 좋다는 초코파이를 받아든 개성공단의 근로여성들은 하루 종일 힘든 일을 했으니 그 초코파이가 얼마나 침 넘어가게 먹고 싶었을까.

굶주림 앞에 무슨 이념과 권력이 필요하며 명예가 필요할 것인가. 국민을 따뜻하게 지내게 하고, 배를 채워 주는 것이 위정자들이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큰일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나라의 정치가들은 민생은 안중에도 없이 국민을 위한 일을 할 생각은 하지 않고, 당리당략과 개인의 이익만을 위해 서로 싸우고 있다는 느낌을 갖게 한다. 그나마 국민이 걱정 없이 먹고 살고 있다는 생각으로 정치가들이 안일하게 그런 행태를 보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시루떡과 초코파이, 집에서 눈이 빠지게 기다리고 있을 아이들을 위해 시루떡을 싸 가지고 가던 시절이 먼 기억 속으로 사라져 가물가물한데, 이제는 볼 수 없는 상황이 이북에서 되풀이 되고 있으니 마치 타임머신을 뒤로 돌려놓은 것 같다.

앞으로 닥쳐올 겨울의 추위에 마음이 스산한데 먹을 것이 부족해서 초코파이를 먹지 않고 집으로 싸가지고 가는 개성공단의 아가씨들이 자꾸 마음속으로 파고든다.

하루 빨리 이북 사람들이 따뜻한 방에서 이밥과 고깃국을 배부르게 먹을 날을 기다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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