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사에 대한 소고(小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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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사에 대한 소고(小考)
  • 유지순
  • 승인 2020.10.19 2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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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지순 (수필가, 칼럼위원)
유지순 (수필가, 칼럼위원)

추석이 지난 지도 벌써 한 달이 돼간다. 추석, 제사 같은 가정의 행사가 돌아오면 헤어져 살던 가족이 모이고, 맛있는 음식을 장만해 함께 나눌 수 있어 즐겁다.

제사에 가치를 두는 커다란 이유는 이 세상에 나의 존재를 있게 해 주신 조상을 기리고, 가정의 뿌리에 대한 것을 알고, 적조했던 일가친척이 모여 가족의 화목을 도모하는 좋은 미풍양속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명절이면 불거지는 명절 증후군과 시댁, 남편과의 불화, 급기야는 추석을 빌미로 이혼까지 한다는 소식이 들려오니 제사나 차례가 모두에게 다 즐겁고 좋은 것은 아닌 것 같다. ‘며늘아, 나도 추석이 무섭단다’라고 한 어느 시어머니의 글이 생각난다. 제사란 여자들에게는 치러 내기 쉽지 않은 행사다.

농경사회의 집성촌에 살던 때는 제사가 돌아오면 친척들이 대개 한 동네에 살고 있어 음식장만 하는 것도 서로 품앗이로 도와주고, 모이기도 좋았으므로 옛날부터 전해 오는 제사방식을 그대로 고수할 수 있었다.

제삿날이 가까워 오면 주부는 긴장되고 걱정이 된다. 준비를 어떻게 하고, 어떻게 잘 치러내야 할지 많은 계획과 생각들이 머릿속을 꽉 채우기 때문이다. 전에는 한 달 전부터 시장에 다니면서 제사에 쓸 재료들을 한 가지씩 미리미리 장만했다.

산업사회로 진입하면서 모두 뿔뿔이 흩어져 살고, 먼 곳에서 직장을 다니는 가족도 있으며, 야간근무를 하는 사람도 있어 평일 제사에는 참여하기가 어려워졌다. 밤늦게 제사를 지내면 하룻밤은 자고 가야되니 여간 번거로운 일이 아니다.

제사가가례(家家禮)이기도 하지만 이런 연유로 차츰 제사방식도 바뀌어 가고, 정부에서도 각 가정에서 꼭 의식대로 제사를 지내지 않도록 되도록 1999년에 ‘건전가정의례준칙’을 만들어 공표했다.

자정에 지내던 제사를 밤 8시나 9시에 지내게 된 것이 제일 먼저 가져온 제사의 변화다. 주중에 든 제사를 일요일로 앞당겨 지내는 가정도 있다. 일요일에도 밤에 지내면 다음날 출근에 지장이 있고, 돌아가는 길도 막혀서 제사를 아침에 지내는 집도 생겼다.

그 후 돌아가신 날 지내던 제사를 부부끼리 합쳐서 먼저 돌아가신 분의 날짜에 함께 지내기도 한다. 부인이 먼저 돌아가신 경우는 부인의 제삿날은 간단한 음식을 장만해서 산소에 다녀오고 남편의 제삿날 두 분의 제사를 같이 지내는 집도 있다.

멀리 떨어져 살고 있어 제삿날 모이기 어려워 조부모님과 부모님의 제사를 형제들이 나누어 지내는 가정도 있다.

함께 모여 제사음식 장만하는 것보다, 끼니때마다 여러 식구가 법석대며 밥 해 먹는 것이 더 번거로워, 이제는 각자 제사음식을 몇 가지씩 맡아서 만들어 오기도 한다. 시장에 가면 제사음식과 탕국까지 파는 곳이 있으니 맞벌이 하는 주부도 마음 편히 제사를 지낼 수 있는 환경이 됐다.

전에는 떡도 집에서 만들었는데, 지금은 떡집에서 사다가 쓰는 가정이 더 많다. 전통 제사음식 대신 가족들이 잘 먹는 음식과 과일로 제상을 차리는 집도 있고, 평소에 돌아가신 분이 좋아하던 음식을 만들어 지내기도 한다. 상상할 수도 없을 만큼 다양한 방법의 제사법이 나오고 있다.

이북에서 오신 분들은 추석이나 설에 망향단에 가서 함께 제사를 모시기도 하고, 제사 음식을 장만해서 콘도에 가서 지내는 가족도 있다. 콘도 사무실에서 제상을 준비해 놓고 콘도에 묵는 가족들에게 제사를 지낼 수 있는 배려를 해 주기도 한다.

수십 명씩 모여 제사를 지내야 되는 집에서는 제사음식과 모인 사람들이 먹을 음식을 뷔페로 시키고, 뒤치다꺼리 하는 사람까지 쓰는 경우도 있으니 여자들이 많이 편해졌다. 요즘은 모든 제사를 함께 묶어 6월 6일 현충일 아침에 제사를 지내는 집이 차츰 주변에서 늘고 있다.

개신교 신자 집에서는 제삿날 모여서 기도드리고 나서 가족들이 먹을 음식만 장만하는 집도 있지만, 집에서 모여 기도만 드리고 음식점에 가서 사 먹는 가정도 있다. 외국에 나가 사는 사람들은 가족이 함께 모이는 유일한 날이 제삿날이라고 한다. 모두 바쁘게 살고 있어 제삿날이 아니면 형제들이 만나기가 힘들다니 한편으로는 좋은 풍습임에 틀림이 없다.

집집마다 냉장고와 세탁기, 김치냉장고, 냉동고까지, 거기에 청소기까지 모두 편리하게 쓸 수 있는 기구를 갖추어 놓고 살면서도, 일 많던 예전보다 더 제사 지내는 것을 힘들어 하는 것은 그만큼 현대생활이 복잡해진 이유인 것 같다.

전국 곳곳에서 아직도 십여 대씩 내려오는 종가의 종손집에서는 옛날 방식 그대로 제사 음식을 장만하고 제사문화를 고수하기도 한다. 그런 집안의 종부는 힘든 삶이지만 대대로 내려오는 전통을 지키고 있다는 자부심으로 종부의 자리를 꿋꿋이 감수하고 있다. 4, 5백년씩 내려오는 고택 종부의 봉사와 희생으로 우리나라의 제사문화가 사멸되지 않고 있는 것은 감사한 일이다.

전 세계에서 조상 기일에 제사를 지내는 나라는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중국의례에서 시작된 제도가 정작 만들어진 나라에서는 사라졌는데, 그 풍습을 들여온 우리나라는 아직도 제사를 지내고 있는 것은 어으 나라 사람보다 조상에 대한 효심이 강해서인 것 같다.

이렇게 집집마다 다양하게 변해가는 제사가 언제까지 우리문화의 한 자리를 차지할지는 미지수다. 아직 농사를 짓고 있는 시골에서는 옛날 방식대로 제사를 모시는 집이 많이 있지만, 모두 바쁜 세상을 살고 있으니 변화 되는 제사의 모습도 이해하면서, 받아들일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은 받아들이는 것이 지혜롭게 살아가는 길이다.

하지만 제사가 내포하고 있는 가치 중에서 가장 큰 조상을 섬기는 마음은 절대로 변하면 안 된다는 것을 우리 모두 마음 속 깊이 새겨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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