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있는 삶과 孝(김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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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있는 삶과 孝(김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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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7.12.07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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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수(더불어 민주당 정책위원회 부의장)

| 중앙신문=중앙신문 | 1927년 6월 독일 뭰헨 인류학박물관에서 상영된 후 1930년 까지 독일 전역에 센세이션을 일으킨 다큐 영화 한 편이 있었다. 이 영화는 독일 성베네딕트회 소속 신부 노베르트 베버 총아빠스가 1925년 5월부터 10월까지 약 5개월 동안 한국 각 지역을 탐방하며 촬영한 동영상으로 만든 <고요한 아침의 나라에서>라는 다큐였다. 베버 총아빠스 신부는 이 다큐에서 한국 문화의 아름다움과 우수성을 폭넓게 소개하며 특히 세계 어느 문화민족들보다 아름다운 한국 문화의 백미는 ‘효도’라고 소개한다. 한국인들이 태어나면서부터 가족을 통해 배우는 조상과 어른에 대한 감사와 존경의 태도, 그리고 그것이 삶의 일부가 되어있는 것을 보고 베버는 깊은 감동을 받았고 세계 문화민족들이 꼭 본받아야 할 미덕이라고 했다.

어찌 보면 우리는 늘 숨 쉬는 공기를 큰 존재감 없이 느끼듯 가장 보편적이지만 특별한 ‘효’ 문화를 크게 주목하지 못하고 생경하여 특별한 것에서만 자꾸 우리 문화의 우수함과 아름다움을 찾으려 한다. 대부분 ‘효’의 경우 그 본질적 의미나 사회적 가치를 배제하고 과거 권위주의 시절에 왜곡되고 강요된 충효의 효만 생각하여 현 시대와 맞지 않는 구시대의 유산으로만 치부하는 경향이 짙다. 그러나 조금만 깊게 생각해 보면 현재 우리가 맞닥뜨린 예의, 정직, 책임, 존중, 배려, 소통, 협동, 공동체, 생명존중, 평화 등의 가치가 부재하거나 희박해서 야기된 개인 및 사회 제 문제들이 ‘효’의 가치를 올바로 인식하지 못함에서 비롯되었음을 느낄 수 있다.

전통적으로 효는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를 기반으로 형성된 도덕 원리이며 자식이 부모를 정성껏 잘 섬기는 도리로서 그 근간을 삼는다. 그러나 자식의 일방적인 섬김만을 강조하는 것은 아니며 부모가 자식을 낳아 정성스럽게 양육함을 전제한다. 이러한 효의 도덕 원리는 유교가 들어와서 형성된 것은 아니며 그 이전부터 하늘을 숭배하고 조상을 섬기며 공동체의 가치를 숭상하던 우리 고유의 사상에 불교와 유교가 들어와 좀 더 조밀하게 형태와 체계가 잡힌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겐 수천 년 동안 아름답게 우리 삶의 근간으로 뿌리내린 효의 유전자가 내재되어 면면히 흐르고 있다. 다만 70년대 이후 급격한 산업화와 이로 인한 배금주의의 팽배가 우리의 의식 속에 효의 가치를 소홀히 하게 하여 약해졌을 뿐이다. 지금부터라도 효의 가치가 회복될 수 있도록 동기를 부여하고 그것이 시대적 변화에 맞게 우리 삶 속에서 더 튼실하게 뿌리내릴 수 있도록 북돋우면 된다.

이러한 시점에서 이번 문재인 정부가 강조하며 제시한 ‘저녁 있는 삶’은 매우 환영할만한 일이다. 저녁 있는 삶의 핵심은 가족이며 효의 기본은 가족 관계로부터 비롯되기 때문이다. 부모와 자식의 신뢰를 기반으로 형성된 가족 관계의 공고함은 가족애뿐만 아니라 공동체 의식에도 매우 중요하게 작용하며 나아가 사회 전반에 소통과 협동, 배려 등 여러 가지 건강하고 아름다운 가치가 정립될 수 있도록 한다. 이러한 가치가 바르고 공고하게 섰을 때 현재 우리가 심각하게 우려하는 사회 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큰 힘을 얻게 된다. 그러므로 효의 가치를 재인식하게 하는 방법은 도덕이나 윤리를 내세우는 것보다는 가족관계의 회복을 통해 자연스럽게 그 중요성을 느끼게 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부모의 역할이 매우 중요한데, 이는 부모의 가치관과 양육 방법의 영향을 받으며 자식의 가치관이 정립되기 때문이다. 부모가 자신의 부모 봉양을 소홀히 한다거나 가족 관계의 중요성을 가볍게 여겨 가정을 화목하게 가꾸지 못한다거나 부모이기 때문에 자식의 인격을 무시해도 된다고 생각해 폭력적이거나 부모의 의도대로 따라오라고 지나친 강요를 한다거나 하면 자식은 부모를 마음의 안식처로 생각하지 못한다. 부모는 다 자식을 위한 것이라 합리화하지만 자식도 생각이 있으므로 부모의 의도대로 따라오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부모는 자식은 무조건 부모에게 순종해야한다는 생각을 버리고 자식들에게 올바른 것을 보여주려 노력해야 하며 인격적으로 대하며 서로 마음을 교류하여 자식 스스로가 부모를 존경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저녁 있는 삶의 모습은 가족끼리의 소통이다. 낮에는 열심히 일하고 저녁시간만큼은 가족과 많은 대화를 하며 단란한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그 대화를 통해 서로가 이해할 수 있는 힘을 키우며 공경과 배려와 사랑이 충만한 가족 관계를 공고히 다지는 것이다. 이러한 가족의 모습이 회복되어야만 효의 본질이 재인식되고 효의 실천적 덕목들이 회복되어 우리 사회가 더욱 건강해져서 심각한 사회의 제 문제들이 해결될 수 있다. 오늘부터라도 저녁시간만큼은 가족과 보내야한다는 결심을 하자. 그것이 결국 나를 위한 것이고 크게는 우리 사회의 건강함을 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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