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의 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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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의 날에
  • 중앙신문
  • 승인 2020.07.23 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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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년섭 (수필가, 칼럼위원)
송년섭 (수필가, 칼럼위원)

몇 해 전 가을, 우리 내외가 들깨를 떨고 있는데 조그만 여자아이가 오더니 작업을 돕겠다고 자청한다. 잠깐 깻단을 나르고 깨를 퍼 담으며 거들더니 이제 가야 한다면서 품삯으로 들깨를 달라고 한다. 맹랑하기도 하고 귀엽기도 하여 한 됫박쯤 퍼 주었더니 제대로 인사를 하며 갔다. 얼마 후 우리 집 바깥마당에 은행이 탐스럽게 떨어졌는데 조금 주워가도 되겠느냐며 양해를 구한다. 개울건너 K씨 댁 외손녀라고 한다. 지금은 중학교 2학년쯤 되었을 그 아이가 떠오르는 건 5월을 맞아 모든 청소년들 이 발랄하고 예의바르게 커 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인가 보다.

스승의 날이 되면 촌지가 오가고 선물이 돌려지면서 약간 말도 있었고 탈도 생겨 어느 학교는 그 날 휴업을 한다고 하였다. 원래의 취지는 그런 게 아니었는데...

1958년 충남 강경여중고 학생들이 병환중이거나 퇴직하신 선생님을 위로하다가 1963년 처음으로 은사의 날로 기념하고 1965년 겨레의 스승이신 세종대왕 탄신일을 양력으로 환산하여 515일을 스승의 날로 다시 정하고 기념하게 되었다고 한다. 모두 내가 고등학교 1 학년 때부터 대학을 졸업하던 해에 이루어진 일이니 학창시절에는 스승의 날도 모르고 지나갔고, 아이들이 학교에 다닐 때 아내가 하는 일을 곁에서 지켜 본 게 전부다. 사치스럽게 돈 봉투나 거창한 선물이 간 게 아니고 정말 고마운 마음이 전해졌는데 지금은 그 뜻이 퇴색되었다.

코흘리개 어린 시절부터 대학을 마칠 때까지 나를 가르치시고 일깨워 주셨던 수 많은 선생님들, 은혜를 갚기는커녕 한번 찾아뵙지도 못하고 세월을 보냈으니 스승의 날이 무색하다. 스승의 은혜를 되새기는 뜻으로 만든 날이 스승의 날인데 우리는 오늘의 교육을 말하며 선생은 있지만 스승이 없다고 말한다. 정신적 지주가 되어 지식과 사람의 도를 함께 가르치시던 내 학창 때의 선생님들을 떠 올리면 수긍이 된다. 세상이 바뀌고 시절이 변하여 교사에 대한 존경과 신뢰를 포기하고 자기 자식만 생각하는 젊은 학부모들의 행패가 보도될 때마다 가슴이 철렁하였다.

사람이 태어나서 5세까지 지능의 50%가 채워지고 8세까지 30%가 채워지며 그 후에 가장 중요한 20%가 채워진다고 한다. 모두 선생님의 영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늘의 나를 교육하신 분이 스승이라면 부모님과 같은 무게로 모셔야 하는데 쉬운 일은 아니다.

선생님을 언제부터 스승이라고 부르고 어원은 어떻게 되는지 잘 모르지만 율곡의 학교모범이나 성균관 학칙에 보면 지금 세대는 엄두도 못 낼 만큼 스승을 모시는 도리가 엄격하였다.

외국에도 스승의 날이 있는지 알아보니 중국(교사절 910) 태국(완와이크루 116) 미국(티처스 데이 5월 첫번째 화요일) 멕시코(515) 폴란드, 베트남에도 스승의 날은 있었으니 선생님에 대한 높은 뜻을 기리기는 동서양이 따로 없다.

어느 때는 선생님들이 조직에 얽매여 학생들을 바르지 않게 가르친다는 핀잔도 들었지만 그 조직도 점차 이성을 찾아 바른 길로 가는 것 같아 안심이 된다.

몇 사람의 잘못으로 태양에도 견줄 수 없고 우주와도 바꿀 수 없는 생명 수 백 명이 희생되어 나라 안팎이 발칵 뒤집혔다. 일부 어른들의 탐욕과 게으름, 할 일은 않은 채 발목을 잡는 지도층의 일탈로 나라발전이 지장을 받고 있으니 언제 또 참상이 일어날지 모르는 상항이다. 학생들은 희생되었는데 자신만 살아 왔으니 제자들에게 죄가 크다며 스스로 목숨을 버린 그 학교 교감선생님. 그러실 것 까지는 아니었는데... 지금도 이러한 스승이 계시다는 것으로 우리는 위안을 삼아야 하나.

모든 죽음이 슬프지만 억지로 죽은 어린 새싹들이기에, 희망도 뜻도 피워보지 못한 어린 나이이기에, 우리는 사랑하는 아이들을 먼저 보낸 부모의 심정을 읽으며 아픈 마음을 추스른다.

사고 후 전국적으로 모든 행사가 취소되었고 웃고 즐기는 일을 거두어 그 유족과 슬픔을 나누고 있다. 큰 일이 벌어지면 허겁지겁하다가 시간이 지나면 또 잊어버리는 우리네 근성, 엉뚱하게 남에게 책임을 씌우려는 작태, 모든 게 어릴 적부터 교육이 잘 안되어서인지 모르겠다.

가르치는 선생님은 사도를 지켜 제대로 가르치고, 배우는 학생과 학부모는 본분을 지키며 올바로 배워 성숙한 사람으로, 나라의 백년대계인 교육이 제자리를 찾도록 마음가짐이 절실하지 않은가.

지금도 두 눈 부릅뜨고 제자들의 앞길을 인도하시는 선생님들께 경의를 표하며 스승의 날에 생각한다. 원시보다도 못한 지금, 내가, 우리가, 우리나라가 가야 할 앞길과 해야 할 일을 가르쳐 주실 민족의 큰 스승이 나타나기를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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