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양반문화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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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양반문화를
  • 유지순
  • 승인 2020.07.07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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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지순 (수필가, 칼럼위원)
유지순 (수필가, 칼럼위원)

흔히들 현대는 돈만 있으면 양반대접을 받는 세상이라고 얘기를 한다. 여기에는 졸부를 지칭하는 비아냥거림도 섞여 있다. 자본주의의 가치관에 따라 대두된 양반의 모습이기도 하다.

일본인 기타노 사쿠코가 쓴 아름다운 영국의 시골길을 걷다라는 책을 읽으면서 왜 영국사람들을 신사라고 하며, 그들이 콧대가 높은지 이해할 수 있었다. 정신적인 것과 물질적인 것 모두 옛것을 존중하고 아끼며 보존할 줄 알고, 그 보존된 것을 현대까지 잘 이어 오면서 그것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기 때문이다.

영국은 그 옛날에도 잘 살아 시골에도 좋은 집들을 지어서 보존할 가치가 있긴 했겠지만 우리나라 같으면 다 때려 부스고 새로 지었을 텐데 정말 아름답도록 잘 가꾸고 간수를 한 것이 많이 부러웠다. 거기에 오랫동안 이어져 온 신사도정신이 곁들여져 세계를 지배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미국의 오래된 도시인 버지니아에 딸이 1년 기한으로 가서 살고 있다. 딸이 살고 있는 옆집이 1807년에 지어진 집이라고 한다. 그동안 주인이 여러 번 바뀌었을 텐데 며칠 전 그 집을 지은 사람의 5대 후손인 손녀가 집을 둘러보러 와서 우리 딸과 함께 구경을 했다고 한다. 집은 지을 때 모양 그대로 잘 손질되어 있었고, 200년 전에 지어 놓은 얼음 창고며, 말을 매었던 기둥과 밟고 타던 돌이 현관문 앞에 아직도 놓여 있어 지금은 긴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귀중한 물건이 되었다. 냉장고와 차가 이런 것들을 대신하니 요즘은 아무 쓸모가 없는 것이지만 조상들이 쓰던 물건과 함께 그 정신도 이어받아 짧은 역사를 가진 미국이 세계 강국이 되었을 것이다.

우리나라 경북 안동과 경주의 양동마을이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재가 되었다는 기쁜 소식은 어깨를 우쭐하게 한다. 600년의 역사를 간직한 채 아직도 사람들이 살고 있는 마을을 등재한 것은 이 마을들이 처음이라니 정말 자랑스러운 일이다. 우리도 이렇게 기품 있고 양반정신이 담긴 멋진 건축물들이 많았을 텐데 그런 귀중한 것들이 조금 밖에 남지 않았음에 가슴 아플 뿐이다.

그뿐 아니라 유서 깊은 양반가에서 내려오는 집안 다스리기나 학문, 예술 문학 등 다양한 방면의 문화유산도 많고, 또한 기품이 있으면서 맛이 뛰어난 음식도 많았다. 이런 것들이 좀 더 잘 전해졌다면 품격 높은 양반사회가 형성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든다.

옛날에는 양반이 사회적으로 세습이 되어 양반층이 나라의 모든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현대로 오면서 양반의 위치가 자꾸 바뀌어 옛날의 양반과 현대의 양반은 양상이 달라졌다. 일제강점기에 강제로 양반들을 말살 시키면서 그 자리에 일본말 잘하는 사람들을 기용해서 그들이 양반행세를 했다. 해방이 되면서 흐트러진 사회질서가 수습되기도 전에 6전쟁으로 온 나라가 혼란에 빠지면서 남아 있던 양반과 상민이 뒤죽박죽으로 섞였다.

그 와중에 미군이 정치에 관여 하면서 영어 잘 하는 사람이 또 양반자리를 차지했다. 그때는 영어만 잘 하면 높은 지위에도 오를 수 있었고 영어를 잘해야 성공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지금도 영어를 못하면 국제적으로 활동하기가 어려워 온 국민이 영어에 몰두하고 있으니 그 시대는 계속 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조선조의 양반은 유교를 바탕으로 윗사람을 우선하고, 위아래를 가리며 양보하는 미덕을 지녔다고 한다. 시대에 따라 양반에 대한 의식과 위치가 다양하게 변해가기는 하지만 오늘날 양반의 정의를 내린다면 어떤 형태로 나타날까.

그렇지만 현재의 양반은 물질적인 것보다 정신적인 것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특정 위치에 있는 사람도 아니고 돈이 많아서도, 공부를 많이 해서도 아니다. 옛 우리나라 훌륭한 양반가의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정신을 본받으면서, 어렸을 때부터 좋은 가정교육을 받고 살아가는 데 필요한 모든 훌륭한 규범들이 절로 몸에 배어 나와야 한다. 겸손하면서 배려할 줄 알고 양보하며, 돈을 돈답게 쓸 줄 아는 그런 사람이 양반다운 사람이 되어 국민 전체가 품위를 지켰으면 하는 생각이다.

땅은 좁고 자연자원이 부족하다 해도 우리는 훌륭한 인적자원으로 인해 희망이 있다. 질 높은 교육을 바탕을 좀 더 격있는 국민이 되어 더할 나위 없이 멋진 현대의 양반으로 거듭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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