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의 음료, 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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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의 음료, 술
  • 유지순  webmaster@joongang.tv
  • 승인 2020.06.29 1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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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지순 (수필가, 칼럼위원)
유지순 (수필가, 칼럼위원)

| 중앙신문=유지순 | 세계에서 우리나라처럼 술 취한 사람에 대해 관대한 나라는 없는 것 같다. 술이 취해서 아무리 잘못했어도 너그럽게 이해해 주고, 큰 죄를 지어도 술에 취해 한 짓이라면 가볍게 보아준다. 술 먹고 저지른 일에 대해 가혹하게 취급을 하면 술 먹는 사람들이 정신을 차리지 않을까.

술은 인간의 생활과 뗄 수 없는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 술은 인간보다 먼저 세상에 존재했다고 한다. 인간의 역사가 100만 년은 된다니 술의 역사는 더 오랠 것이다.

술을 먹기 시작한 기원은 나라마다 다르고, 그 나라의 신화와 연결되어 있다. 술은 그만큼 역사가 길고 인간과는 밀착된 관계를 맺고 있다.

술은 지역에 따라 그 재료가 다양한데 포도와 곡물, 사탕수수와 과일 등으로 술을 빚고, 유목민처럼 말을 많이 기르는 지역에서는 말젖 술도 있다. 어느 책에서 보니 술은 그 나라 기후와 농경, 생활양식에 의해서 발달해 온 하나의 예술품이라고 했다. 그래서 세상에는 진기하고 기발한 술들이 무수히 많아 애주가들의 흥미를 끄는 술이 무궁무진하다.

술을 마시면 기분이 좋아지고, 피로가 회복되고 식욕이 왕성해지며 용기가 솟아오른다니 적당히 마시면 좋은 음식이다. 이렇게 좋은us이 있는 술이 과음하면 난장판을 만드는 것이 문제다.

예전 연평도 사건 때도 죽은 사람들 장례도 치르기 전에 방송인들이 연평도에 술을 가지고 들어가 술판을 벌여 지탄을 받는가 하면, 그 시기에 인천에서 교육기간에 종사하는 직원이 호프집에서 술을 먹고 난동을 부렸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기막힌 사건이 아닐 수 없다.

또한 동절기에 술에 취해 길에서 쓰러져 자다가 죽기도 하고, 정신을 잃어 몸에 지닌 물건을 털리기도 하는 불상사도 생긴다. 술에 취해 비틀거리다 지하철 선로에 떨어지기도 하고, 더구나 여자들이 술에 취해 해롱거리는 모습은 꼴불견이다. 입이 닳도록 경각심을 울려도 여전히 음주운전으로 사람을 치어 죽게 하고, 다치게 하여 철창신세를 지는 것을 보면 안타깝다.

시골에서 농사를 짓고 있으니 농사에 관한 교육을 받는 일이 많다. 교육프로그램 중 오후의 교육은 아예 계획을 세울 수가 없을 지경이다. 오전 교육 받고 점심 먹고 나면 으레 점심시간에 먹은 술 때문에 얼굴이 벌게져 비틀거리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농사 일 하면서 힘이 들어 새참 때나 점심에 술을 먹고 기운을 내서 일을 하던 습관이 된 것은 알지만, 때와 장소를 구별 할 줄 알아야 한다. 여러 사람이 모여 강의를 하거나 토론을 하는 자리에서까지 술을 먹고 비틀거리는 것은 보기 좋은 모습이 아니다.

관광을 하러 가면서도 가는 목적과는 아무 상관이 없이 차만 타면 술판부터 벌이고 버스 안에서도 노래하고 춤추느라 흐느적거리는 사람들을 보면 별로 좋아 보이지가 않는다. 술로 인해 일어나는 갖가지 행태는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예전 세계 자연유산으로 지정된 제주도 구경을 하려고 유람선을 탔는데 외국인들도 여러 명 타고 있었다. 우리나라를 찾는 손님이 불편하지 않도록 배려해 주는 것이 예의일 텐데 나이 지긋한 남녀들이 술에 취해 배 안을 왔다 갔다 하면서 떠드는 것이 보기에 민망했다.

다른 나라에서는 대낮에 술에 취해 비틀거리며 돌아다니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 인도네시아에서 만 3년간 살면서 술 때문에 곤욕을 치른 적이 없었고, 미국에서 1년여 지냈지만 낮에 술 취한 사람을 보지 못했다. 인도네시아는 이슬람 국가라 종교적으로 술을 금하고 있으니 그런 사람을 보지 못했다 해도, 미국에서는 술에 취해 건들거리면 인간 취급을 받지 못해 사회생활을 하기가 힘들다고 한다.

술은 적당히 마시면 파라다이스를 경험할 수 있지만 지나치게 마시면 지옥을 헤맬 수도 있는 마법을 부리는 음료다. 연말이 가까워 오는데 제발 술을 마시더라도 본인도 즐겁고 옆에서 보는 사람도 함께 즐거움을 느낄 정도로 즐기는 차원에서 술판을 벌이기를 바란다. 이참에 우리나라도 멋진 술판문화를 만들어 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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