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겨운 재래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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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겨운 재래시장
  • 유지순
  • 승인 2020.06.23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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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지순 (수필가, 칼럼위원)
유지순 (수필가, 칼럼위원)

재래시장하면 먼저 떠오르는 것이 장사하는 분들의 따뜻한 마음과 훈훈한 인정이다. 물건을 고르고 흥정하고, 조금이라도 물건 값 깎는 재미와 더 얹어 주는 덤이 흐뭇한 것은 누구나 경험하는 일이다.

일상이 약간은 기운 빠지고 재미가 없어지려고 할 때 삶의 생동감과 활기가 넘치는 재래시장을 찾으면 다시 힘을 얻는다.

노점에서 허리가 구부러지고 까맣게 탄 얼굴과 손에 온통 주름이 잡힌 연세 많으신 노인들이 농사를 지었다고, 산에서 뜯었다고 조금씩 팔고 있는 채소와 나물들이 발을 붙들고 놓아주지 안 g는 재미도 아주 쏠쏠하다.

외국에 여행을 가서도 재래시장 구경은 빼놓을 수 없는 흥밋거리다. 그 나라의 인상이 가장 깊게 남는 것이 재래시장에서 겪는 일들이다.

마트나 슈퍼의 정찰제와 잘 다듬어 포장해 놓은 물건들이 사기는 편하긴 하지만 차갑도록 정확한 것에 거부감이 느껴질 때도 있다. 이 근래에는 재래시장 찾는 것이 뜸해졌지만 그래도 아직 장날 시장에 가서 이것저것 구경하면서 사는 재미는 좋다.

슈퍼나 마트가 생기기 전에는 각 가정의 주부들은 저녁때가 되면 장바구니를 들고 너도 나도 식재료를 사려고 시장을 찾았다. 저녁 찬과 다음 날 아침, 점심, 아이들 도시락 반찬까지 한 보따리 사들고 와서 다듬고 씻고, 삶고 지지고 볶고 끓이면서 음식을 만들었다.

시장에 자주 가니 끼니때마다 새로운 음식을 해 놓을 수 있어 식탁이 풍성해서 식구들을 잘 먹였다. 끼니때가 되면 장바구니를 들고 오늘은 어떤 새로운 반찬거리가 나왔는지, 무엇을 살 것인지 고민하던 일이 이제는 그리운 추억으로 남아있다.

요즘은 냉장고에서 반찬거리를 찾아 요리를 만드니 다양한 음식이 나오기가 어렵다. 시장에 갈 때마다 한 아름씩 사다가 냉장고에 넣어두는 식재료들로 여러 날 해 먹으니 같은 음식이 자주 상에 오를 수밖에 없어 어떤 때는 식구들 보기에 민망할 때도 있다.

5일장이 돌아오면 장에 가보고 싶은 생각에 열일 제쳐 놓고 장으로 향한다. 요즘은 각 지자체에서 정책적으로 재래시장 살리기에 큰 관심을 기울여 시장마다 많은 변화가 일었고, 예전보다 훨씬 정리가 되었다.

TV에서 가끔 재래시장을 소개하는 것을 보면 온갖 물건이 풍성하고 활기찬 상인들의 모습도 보기 좋다. 재래시장의 점포는 가게마다 주인이 따로 있어 모두 사장님이다. 사장이 직접 운영하는 가게이니 손님에 대한 서비스나 물건의 질이 좋아질 수밖에 없다. 각자 사장으로서의 신용을 지켜야 하니 소비자가 신뢰하고 찾을 수 있는 장점도 갖추고 있다.

이렇게 정성을 쏟고 있는 재래시장에 미꾸라지 한 마리가 온 웅덩이의 물을 흐려 놓듯 가끔 손님에게 속임수를 쓰거나 불쾌한 감정을 느끼게 하는 일이 있다. 즐겁게 재래시장을 찾았다가 찜찜한 일이 겪어서 기분이 좋지 않은 일이 생길 때도 있지만 곧 잊어버리고 재래시장 다니는 재미를 다시 즐긴다.

며칠 전 장구경도 할 겸 한 바퀴 돌다가 마늘 반접을 샀다. 그 장사꾼이 내 눈앞에서 마늘을 세었는데 집에 와서 세어보니 마흔다섯 개 밖에 안 되어 속았다는 생각에 기분이 많이 상했다. 다시 한 번 재래시장에 대한 불신을 가슴에 심어주었다.

처음에 그 남편이 마늘을 세었는데 부인이 다시 세어 주었다. 마늘이 남편이 세어놓은 다발에서 다섯 개가 남은 것을 보고 덤으로 주려고 한 것을 부인이 빼놓았나 보다 생각했는데 오십 개에서 다섯 개를 제쳐 놓은 것이다.

돈으로 치면 몇 품 되지 않는 액수라도 속은 것에 대해 기분이 상한 것이다. 이런 일이 나한테만 있었다면 괜찮지만 소비자들이 속는 일이 자꾸 생긴다면 재래시장의 발전은 요원할 것이다.

농약을 많이 준 채소는 아닌지, 국산인지 수입인지 자꾸 머리를 갸우뚱하게 하는 것도 재래시장의 단점이다. 모든 소비자들이 안심하고 믿고 찾아갈 수 있어야 재래시장의 발전이 있을 것이다.

생산자와 중간상인들, 소비자가 서로 신뢰하면서 정직하고 성실하게 거래를 한다면 주부들의 발길은 저절로 재래시장으로 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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