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앙신문=장은기 기자 | 오뚝이라는 단어의 사전적 의미는 “밑을 무겁게 해 아무렇게나 굴려도 오뚝오뚝 일어서는 어린 아이들의 장난감”이라는 풀이다. 즉 상황에 따라 흔들릴 수는 있어도 결코 쓰러지지는 않는 뜻이다.
경정에도 오뚝이처럼 근성 있는 경기력으로 꾸준한 사랑을 받는 선수가 있는데 바로 장영태(1기, A2, 46)를 꼽을 수 있다.
그는 경정이 시작된 2002년 1기로 프로선수가 됐다. 프로선수로서의 준비 기간이 그리 길지 않고 지금처럼 체계화된 교육보다는 실전에서 경기를 통해 경기력을 끌어올려야 하는 만큼 남다른 고생을 많이 한 기수로 평가받는다. 그는 첫해 14승이라는 알찬 기록으로 신인시절을 시작했다.
차분하게 분석하고 연구하는 자세로 선수 생활을 시작한 장영태의 발전된 모습은 바로 이듬해인 2003년 지금의 그랑프리 올스타 대상경주인 국민체육진흥공단 이사장배 올스타 결승전에서 볼 수 있었다. 1코스에 출전해 0.13초라는 주도적인 스타트를 발판으로 인빠지기 우승(2위 우진수 3위 권명호)을 거두며 장영태라는 이름을 경정팬들에게 알렸다.
그 여세를 몰아 매년 꾸준히 두 자리 승수를 기록하며 2003부터 2008년까지 다수의 대상경주 결승전에 진출해 우승 1회(2004 제1회 문화일보 배)와 준우승 3회(2004년 일간스포츠배 2006 그랑프리 2008년 제5회 해럴드경제배)와 3위 입상은 2회(2004 제2회 스포츠서울배 2007 제4회 문화일보배)성적으로 황금기를 맞이했다.
그 후에도 안정적인 경기력으로 2010년 국민체육진흥공단 이사장배 결승전에 또 한 번 1코스에 출전해 우승을 노렸지만 김종민(2기, A1, 44)선수와의 1주 2턴에서 아쉽게 우승 경합에 놓치며 준우승으로 만족해야 했다.
그러나 화무십일홍이라 했던가. 꾸준함의 대명사인 장영태에게도 위기가 찾아왔다.
생각보다 부진은 오래됐다. 2012년 4승 2013년 9승 2014년 9승(3년간 22승)으로 경정선수로 생활하는 중 가장 힘든 시기라고 말하며 원인은 개인적인 문제로 인해 심리적 압박이 심해 고전 했다고 한다.
거기에 2014년은 플라잉(F/사전 출발위반)으로 어려움은 배가 됐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던 중 탈출구를 찾았다. 바로 경정선수라면 누구나 꿈꾸는 쿠리하라배 결승전(10월 30일 38회 2일차 14R)이다. 플라잉 제재 이후 출전한 경주에서 차분하게 성적을 쌓아가며 선호하는 1코스에 출전해 인빠지기로 우승을 차지하며 부진 탈출에 성공했다.
그 이후로 2015년과 2016년 두 시즌 각각 25승으로 제9회 스포츠월드배 준우승 2016년 쿠리하라배에서 우승을 거두며 다시 한번 오뚝이 근성으로 자신의 자리를 찾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