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념과 사상의 피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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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념과 사상의 피해자
  • 김영택  webmaster@joongang.tv
  • 승인 2020.04.28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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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택 (칼럼위원)
김영택 (칼럼위원)

| 중앙신문=김영택 | 남파 간첩으로 '내가 반역자냐'란 내용의 저서를 출간했던 소정자 씨가 북한 공작원에 의해 무참하게 암살당해 저세상 사람이 된 것을 신문을 보고서야 뒤늦게 알았다.

고등학교 학생 시절 그녀의 반공 강연을 교내의 강당에서 들은 적이 있었다. 당시 사십 대 초반으로 보인 그녀는 치마저고리 차림의 청순한 여인으로 기억된다.

해방과 아울러 남과 북의 이념이 대립된 격동기에 살았던 그녀의 삶은 한마디로 기구한 운명이었다. 서울에서 대학을 다녔던 그녀는 공신 주의 사상에 물들어 학업보다는 혁명가의 길을 택한 관계로 삶이 평탄하지 못했다.

북한 공산주의자들을 위해 프락치 노릇을 했고 파업을 선동했으며 김일성의 지시라면 죽음도 두렵지 않고 자살폭탄이라도 실행에 옮길 꼭두각시였다. 해방 이후 사회적 혼란 시기에 공산당이 된 사람들의 유형은 마르크스 레닌의 이론에 빠져든 일부 지식인 및 대학생 계통과 학교 문턱이라고는 전혀 가보지 못하고 맹목적으로 공산주의를 신봉한 무지한 사람들로 구분되었다.

소정자 씨의 경우는 전자에 속했다 비극적인 6.25전쟁을 도발하여 남침했던 북한 공산당이 패배하여 북으로 쫓겨가자 그녀도 조국을 버리고 북으로 도주한 사람들 중에 한 사람이었다 북에 정착한 그녀는 직장 생활 도중 중앙당의 호출을 받아 간첩 교육을 받고 남파된다. 간첩이 되어 남한 땅을 다시 밟은 그녀는 북으로 간 그녀를 매일같이 기다리고 있는 노모를 보고 심경의 변화를 일으켜 전향을 결심하게 된다. 그녀가 전향을 결심하게 된 직접적인 동기는 남파되기 이전까지 북에서 보아온 공산주의의 허구성에 대한 회의와 아울러 노모에 대한 죄스러움이 그녀의 마음을 움직여 자수에 이르게 한 것이었다.

전향한 그녀는 열렬한 반공투사로 변신하여 군부대와 학교·직장 등을 순회하는 안보강사가 되었다. 그녀가 밝힌 북한의 실상은 너무나도 참혹했고 충격적이었다. 지금이야 북한 실상을 북한을 탈출한 새터민들의 증언과 위성 및 보도자료의 영상을 통해 매일매일 속속들이 파악하고 있지만 60년 때는 북한의 실상을 정보당국 외엔 알 턱이 없었다. 집안에 조상님 사진 대신 김일성 사진을 게시해 하늘처럼 떠받들고 있다는 것을 그녀에게 들었고, 전국토 요새화 전 인민 무장화 전군 간부화 전군 현대화를 내걸고 전쟁 준비에 광분한 북한의 전쟁 준비상황을 그녀를 통해 알게 되었다.

귀순한 소정자 씨는 안보강연을 통해 대한민국 국민의 반공정신을 일깨웠지만 북한의 실정을 모르는 일부에선 설마 그 정도까지 반신반의하는 무리도 없지 않았다. 수년 전 북한 고위 인사로 귀순하여 얼마 전 사망한 황장엽 씨도 남한 국민들은 북한의 전쟁 준비에 도대체 관심이 없는 것 같다고 쓴소리를 했다.

남한에서 안락했던 짧은 생활보다는 북한의 꼬임에 빠져 고단했던 생활이 더 많았던 그녀는 김일성을 배신했다는 이유로 북한 공작원에 의해 참혹하게 암살을 당했다고 한다. 그녀가 생전에 학교 강당에서 행한 안보 강연 시에 어린 중학생의 장난기로 인해 강연이 잠시 중단되고 웃음바다로 변했던 일이 생생하게 기억난다. 북한의 실상을 고발하는 안보강연이 한창이던 중 2층을 꽉 메운 중학생 속에서 종이비행기 하나가 날려졌다 종이비행기는 곡선을 그리며 활강하더니 곧바로 소정자 씨가 서있는 연단 앞에 떨어졌다.

일순간 와하는 함성과 함께 웃음이 대강당을 뒤흔들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소정자 씨가 북한에선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 벌어졌다고 놀라워하면서 종이비행기를 날린 학생에게 학생 동무 반동이야 아오지 탄광에 가서 학습 좀 받아야겠구먼그래 하고 우스갯소리를 하며 남한의 자유로움을 무척 부러워했었다. 그녀는 우상처럼 떠받들었던 북한 공산당에 의해 살해되어 한 많은 이 세상을 떠났다.

그녀의 죽음을 불러온 것은 김일성 일당과 공산주의의 만행을 만천하에 고발한 내가 반역자냐란 책의 내용물이 김일성의 심기를 건드려 살인 표적이 되었다고 한다.

애증의 세월 속에 남과 북에서 제대로 사람대접받지 못하고 살생부에 올려져 억울하게 죽어간 그녀의 영혼 앞에 한 잔의 술을 부어 절통함을 달래 보고 싶다.

그리고 그녀의 영혼이 하늘나라에서 나마 편히 쉴 수 있도록 마음속으로 빌어본다 생각해보면 그녀는 북으로부터는 저주받은 운명이었고 남에서는 남은 일생을 보장받지 못한 삶을 살다간 가련한 여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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