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촌의 세상 돋보기]세상과 돌아앉은 또 다른 세상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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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촌의 세상 돋보기]세상과 돌아앉은 또 다른 세상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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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7.10.25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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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촌(수필가, 칼럼위원)

| 중앙신문=중앙신문 | 잠자리가 날아와 울타리에 앉아 있다. 한 가족이 다 모였는가, 한두 마리가 아니고 길게 줄을 서서 앉아 있다. 적당한 간격을 두고 앉아 있는 그들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노라면 꼭 무슨 약속을 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한 마리가 날갯짓을 하면서 고요히 일어나면 울타리에 줄을 서서 앉아 있던 동료들은 소리 없이 따라 일어나서 마치 숲 속에 숨어있던 복병들이 함성을 지르듯이 어지럽게 돌아다니다가는 다시 돌아와 줄을 그으며 앉는다.

그들은 소리를 내지 않는다. 매미처럼 소리 높여 노래를 부르지도 않고 새들처럼 푸드득거리며 날갯짓을 하지도 않는다. 날아다니는 소리도 울타리에 앉는 소리도 눈으로 볼 수 있을 따름, 울려 퍼지는 소리가 없다.

고요하기 이를 데 없는 산골의 한낮이다. 매미가 노래를 멈추고 쉬는 시간이면 숲 속엔 소리가 없다. 이따금 바람이라도 불어오면 풀잎들끼리 몸을 부비는 소리가 들려올 뿐, 개미 기어 다니는 소리라도 들릴 듯이 고요 하디 고요한 한낮이다.

오늘도 소풍 나온 것 같은 마음으로 뜰에 놓인 평상에 나와 앉았다. 느티나무 그늘이 짙어 한낮이지만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기에, 평상에 벌렁 드러누워 나뭇가지 사이로 조각난 하늘을 올려다본다. 초가을 하늘은 또 왜 저리도 푸르고 고운가. 고운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으려니 가슴이 저려온다.

여름에 먹구름으로 덮여 천둥 번개가 세상을 뒤엎을 듯이 소리치며 심술을 부리던 하늘, 그 하늘이 오늘은 눈이 시리도록 푸르고 곱다. 저 하늘이 그때의 그 심술궂던 하늘이 맞는가 의심스러울 정도다. 본래의 하늘 빛깔은 푸른색이 아니었더냐. 어디에선가 먹구름이 흘러와 그들을 잠시 가렸을 뿐, 하늘의 푸르름은 사라진 것이 아니었다.

사람 마음도 그럴까. 태어날 때 사람들 본래의 마음은 아름답고 순수한 모습으로 지어 졌을 것이다. 그런데 욕심과 심술, 그리고 질투가 하늘의 구름처럼 본인도 모르게 덕지덕지 달라붙어 본래의 고운 모습을 덮어버린 것은 아닐까. 하늘이야 구름이 걷히면 파랗고 고운 본래의 모습으로 되돌아 갈 수 있겠지만, 사람의 마음에 드리워진 구름은 쉽게 거두어질 수 있을까. 설사 거두어졌다고 하더라도 눈으로 확인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니 사람에게서 한 번 실망하고 상처를 받으면 되돌리기가 쉽지 않다.

잠자리 한 마리가 날아와 내가 만지작거리고 있는 노트북 모서리에 앉았다. 가벼운 몸으로 소리 없이 날아와 앉더니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가끔 입을 오물거리며 입맛을 다시기도 하는데 노트북 모서리에 입맛 다실 그 무엇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바짝 마른 울타리 난간에 배 불릴 일이 있어 보이지도 않는다.

가벼운 그의 몸짓이 부럽다. 그의 몸 어느 곳 하나 무게가 실려 있을 것 같은 부분이 없다. 무엇을 먹기 위해 사는 것도 아닌 것 같고 살기 위해 먹지도 않을 것 같다. 노트북 모서리에 하염없이 앉아있는 그의 날개를 살짝 잡아본다. 욕심이 없으니 누구를 경계하지도 않는다. 우둔하게 움직이는 내 손에 날개를 쉽게 잡히는가 하면, 날개를 잡히고도 바둥거리지 않는다.

무엇을 잡은 느낌이 들지 않을 정도로 부피가 없는 잠자리의 날개, 그의 날렵한 몸짓과 그의 가벼운 무게를 닮고 싶다. 그를 닮아 가벼워 질대로 가벼워진 몸으로 그를 따라 나서보고 싶다. 그가 머무는 곳은 아마도 피안의 세계가 열려 있을 것 같다. 조용하고 평화로운 잠자리의 모습, 그 어디를 보아도 도저히 벌레를 잡아먹고 사는 곤충으로는 상상이 가지 않기 때문이다.

‘산 너머 고개 너머 먼 하늘에 행복이 있다고 사람들은 말하네

아! 나는 남 따라 찾아 갔다가 눈물만 머금고 돌아 왔네

산 너머 고개 너머 더욱 더 멀리 행복이 있다고 사람들은 말하네.’

칼붓세의 노래 따라 부르며 더욱 더 멀리 잠자리들을 따라 나서보고 싶다. 만지면 바스라질 것 같은 얇은 나래로 흐르듯이 날아가는 그들을 따라 흐르다가 보면 분명 ‘세상과 돌아앉은 또 다른 세상’이 펼쳐져 있을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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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섭 2017-10-26 16:10:48
이 글을 읽고 나니, 저기 저기 어디엔가 쯤에 또 다른 세상이 있을것만 같네요.
그 세상이 궁금해집니다.
잘 읽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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