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화분은 왜 꽃을 피우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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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화분은 왜 꽃을 피우지 않을까?
  • 원종태  webmaster@joongang.tv
  • 승인 2020.04.23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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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종태  숲 해설가
원종태 숲 해설가

| 중앙신문=원종태 | 코로나로 세상이 들끓어도 봄이 오는 속도에는 변화가 없다. 오히려 봄의 걸음은 한 발짝 더 빠른 것 같다. 꽃이 지천으로 피어나고 그윽한 향기는 산천을 뒤덮는다. 한껏 꽃구경에, 화창한 날씨에, 집 밖으로 나서고 싶은 생각은 굴뚝 같다. 그러던 차에 사회적 거리 두기에 충실한 친구로부터 전화가 왔다. 집 안에 머무는 시간이 오래되어 보통 답답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나마 집주변에 피어나는 꽃을 보며 답답함을 달래고 있는데 도대체 이해가 안 되는 일이 있다는 것이다. 친구는 전화로 하소연을 쏟아낸다.

원 박사 하나 좀 물어볼 게 있어?”

난 박사가 아닌데 잘못 물어보는 거 아냐? 무슨 일인지 진짜 박사에게 도움을 받아야지?”

아 무슨 소리, 친구야말로 나무 박사잖아!”

뭔데 그렇게 어렵게 말을 해, 일단 들어는 볼 게 말해봐

아니 온 산천에 꽃이 만발하는데 우리 집 철쭉은 꽃 필 생각을 안 하네, 뭐가 잘못됐는지 알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꽃이 피는 거야?”

그 철쭉이 어디에 심겨 있는데?”

아 그거, 작년 집들이 선물로 받은 건데 마음에 쏙 들어, 안방 창가에 잘 모셔두고 있지! 물관리도 잘하고 겨울에 얼어 죽을까 봐 보온도 신경 쓰고 애지중지했는데 말이야.”

아 그랬구나! 잎은 잘 나왔어?”

아주 싱싱하지 그런데 꽃을 안 피우는 철쭉이 무슨 소용이야 내다 버리자니 아깝고

친구 속상하겠네

아주 완벽히 잘생긴 나무인데 너무 아깝고 마음이 아프네!”

화분 하나 가지고 뭘 그리 신경을 쓰나 내년에 꽃을 보면 어떨까?”

올해, 안 핀 꽃이 내년에 필 수 있을까?”

그야 하기 나름이지, 내가 한번 집에 들를 게, 가서 상태를 보고 이야기를 나누자고

며칠 후 친구와 만나, 문제의 꽃을 피우지 않는 철쭉을 살펴보았다. 정말 잘 기른 나무였다. 버리기엔 너무도 아까운 나무, 꽃을 피워주지 않으니 얼마나 속이 상했을까 친구의 표정이 대단히 섭섭해 보인다. 나무의 마음이 변했나? 아니면 철쭉이 해거리하면서 꽃을 피우나, 그저 아쉽기만 하다면서 묘책이 있는지 재촉이 심했다.

사실 이 같은 경우는 과보호가 문제다. 식물은 저마다의 특성이 있다. 한마디로 살아가는 방법이 다르다. 봄에 지천으로 피어나는 꽃 중에도 잎을 피우기 전에 꽃을 피우는 나무도 있고 잎을 피우고 천천히 꽃을 피우는 나무도 있다. 아예 봄에 꽃을 피우지 않고 뜨거운 여름이나 가을이 되어 다른 나무가 열매를 떨굴 때쯤 꽃을 피우는 등 다양한 종류가 있다.

그러나 인위적으로 식물의 생육 환경이 바뀌면 이 생체시계는 혼란을 일으킨다. 철쭉은 추운 겨울을 견뎌내고야 새봄에 꽃을 피운다. 식물학자들이 말하는 춘화처리(vernalization 春花處理)가 있다. 일정 기간 저온 속에서 시간을 보내야 꽃을 피우는 식물에, 특정의 목적을 가지고 인위적으로 저온 상태를 만들어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다. 이 철쭉은 겨우내 따뜻한 방에서 편안하게 지낸 것이 문제다. 꽃 피우기에, 충분한 저온 기간을 보내지 않았으니 꽃을 피울 리가 없다.

불시일번한철골(不是一番寒徹骨) 한번 뼛속에 사무치는 추위를 겪지 않고서야, 쟁득매화박비향(爭得梅花撲鼻香 ) 어찌 매화 향기가 코끝 찌름을 얻을 수가 있겠는가?”황벽 선사가 남긴 말씀이라고도 하고 선인들이 후학에 전하는 교훈이기도 하다. 인간이나 식물이나 별반 다르지 않다. 금수저를 부러워할 일이 아니다. 모진 어려움을 극복하고 일어서야만 아름다운 꽃이 피어나고 진한 향기를 발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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