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박하게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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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박하게 살기
  • 중앙신문
  • 승인 2020.04.16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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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국 (수필가, 칼럼위원)
이상국 (수필가, 칼럼위원)

근검 절약이 몸에 배어 살았다.

나는 우리 집의 장자. 절대 재산을 축내지 말아야 하며 동생들에게 모범을 보여야 한다. 낭비를 줄이고 근검절약하며 살아야 했다. 사치는 금물. 최소한의 돈, 최소한의 물자, 최소한의 식량으로 살아야 했다. 낭비는 내 인생의 적.

고등학교 때, 대입 준비로 서울 종로 2가에 있는 EMI 학원에 다녔다. 동대문에서 종로 2가 화신백화점까지 걸어 다녔다. 교통비를 절약하기 위하여. 더우나 추우나바람이 부나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매일 걸어 다녔다. 장발이 되도록 머리를 못 깎았다. 안 깎았다. 남들 두 번 깎을 때 한 번 깎기.

공군에 입대해 세탁소에 맡겨 놓은 바지를 도둑맞았다. 이틀 후 교육을 받으러 대전 훈련소에 집결해야만 하는데 바지가 없어졌다. 여우같은 세탁소 주인. 나의 새 바지 잃어버리고 낡아 금방 찢어질 것만 같은 바지를 내주어 얻어 입고 나온 적도 있었다. 그렇게 나는 재수가 없었다. 그 바지 대신 다른 바지로 바꾸어 입었는지, 아니면 내 돈으로 사 입었는지 알 수 없다. 워낙 경황이없는 시절이었다.

졸병도 아니고 공군 중사로 떵떵거리던 나의 몰골을 하나하나 따져보자. 공군이 희귀하고 복장 또한 보기드문 파랑색이라 군복치곤 꽤 아름다웠다. 그래서 여자들의 선망의 대상이 되기도 했고 멋쟁이 군인이란 말을 들었다.

그런데 내 꼴, 이거 진짜 공군 중사 맞는지. 공군 정모는 너무 커서 머리 위에서 빙글빙글 제멋대로 돌아다녀, 같이 근무하던 문관이 이 중사는 병정놀이 하는 것 같아. 모자가 그게 뭐야하고 놀렸다.

워커는 발보다 훨씬 컸고 거기다 왼발 오른발이 짝짝 이었다. 그 워커가 지금도 눈에 선하다. 아까워 어떻게 버렸는지. 제대하고 예비군 훈련 받고 마루 밑에서 굴러 다녔는데. 여북하면 육군 하사로 제대한 친구가 얼마나 똑똑했으면 신발 하나 제대로 얻어 신지도 못한 놈이라고 핀잔을 주었을까. 파일럿 점퍼가 나왔는데 그것도 컸다. 줄일 수도 없는 것이라 그냥 입었다. 누가 봐도덜 떨어진 놈으로 보였을 것이다. 거기다 한겨울 뜨거운 난로에 스쳐 등에 손가락만 한 구멍이 났다. 그 구멍에 다른 천을 대고 본드로 붙였는데 확연히 색이 달랐다.

그걸 입고 다녔다. 제대하고도 입고 다녔으니 4년은 족히 입었을까. 멋쟁이 공군아저씨 맞아?

그래도 가끔 문인협회에 나가면 우리 집 옆, 여자고등학교 선생님으로 퇴직한 여류 시인이 우리 집 근황을 물었다.

삼십 년 전에 그 집에 공군 한 사람 있었는데 그 사람 어디 있지요? 참 멋있었는데.”

그거 나예요.”

아니, 언제 이렇게 변했지요? 그 멋진 사람이 이 선생님이라니.”

참으로 희한한 일이다. 그 꺼벙하고 한심한 내가 멋있었다니.

나는 나를 귀하게 여기지 않는다. 못한다. 별것도 아닌 작자들이 한껏 자기 치켜세우는 꼴을 보면 눈꼴이 시린 나다. 헌혈조차 신체발부수지부모운운하며 기피하는 꼴이 가관이고 족보 들이밀며 양반 운운하는 꼴도 아니꼬워 못 보는 나다. 그 반발 심리가 작용해 나스스로 나를 시정잡배로 하염없이 깎아 내린다. 누군가 밥 한 끼 먹는 것도 어디 진지를 드셔 볼까하면 어디 밥 한 끼 처먹어 볼까일부러 어깃장을 놓는다. 돈이 없으면 나 주머니가 텅텅 비었어또는 돈이 하나도 없네하면 아내가 질색을 한다.

없어도 없다는 말 좀 하지 말아요. 없다 없다 하면 진짜 없는 사람이 되고 만대요.”

처먹다니요. 당신이 당신을 비하하면 누가 당신을 우러러보겠어요. 더욱 같잖게 볼 거 아니에요.”

그래서 그런가. 돈은 언제나 없었고 내 인생 활짝 갠날이 언제였는지 생각조차 안 난다.

생각한다. 나는 왜 천박하게 살아왔는가. 우리 집은 언제나 부유했다. 남보다 풍요로웠고 배고픈 날이 없었다. 공군 바지, 공군 모자, 파일럿 점퍼, 워커 한 켤레. 그런 거 몇 푼 된다고 발발 떨었는지. 이것이 초등학교때부터 주욱 배우고 배워서 익힌 미덕의 결과인가? 아니면 조상 대대로 물려 내려온 유전인자의 지시 명령에 따른 이행 결과인가?

만약 나의 아들, 나의 며느리, 나의 손자가 그렇게 산다면 참을 수 없는 일이다.

지난여름 막내 며느리가 그 더위에도 집에 있는 에어컨을 한 번도 켜지 않았노라는 말을 듣고 은근히 울화가 끓어 , 그런 궁상떨지 말고 살아라명령을 내렸다.

내가 그렇게 살았고 그렇게 사는 게 인생의 가치라고 긍지처럼 생각해 왔는데 천만에 아니올시다이다. 그렇게 살면서 모은 돈이 큰돈 되지도 못했고 가계에 크나큰 보탬이 되지도 못했다. 그렇게 아껴봤자 빠져나갈 돈은 빠져나간다는 것을 안 것은 한참 뒤의 일이다.

언제가 가난이란 명목으로 지원을 받으며 사는 친구의 집을 찾은 적이 있었다. 그의 집엔 내가 보지도 듣지도 못한 생필품들이 구석구석 채워져 있었고, 한 번 먹어 보지도 못한 열대 과일이 쌓여 있었으며 최신형 운동화가 삐까뻔쩍 광을 내고 있었다. 생각해 보면 가난으로 생계비 지원을 받고 사는 집이 더 잘 먹고 잘 입고 더 신나게 사는 모양이다.

뭔가 잘못된 것 아니야? 하루 벌어 하루 사는 그 집은 언제나 당당했고 남 부러워하지 않으며 살았다.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공중에 나는 새들을 보라. 새들은 씨를 뿌리거나 거두어들이거나 양식을 곳간에 모아들이지 않으나 먹을 것을 걱정하지 않는다.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기르시기 때문이다. 그런데 너희는 새들보다 훨씬 더 귀하지 않느냐.

성경 말씀이다.

그 가난한 자가 예수님의 말씀을 잘 따르는 사람이며 진정 자연인이 아닌가.

그렇게 살까.

축적이란 과정을 통해 돈 번 부자가 있다. 가끔 내외가 파리, 로마, 런던, 페테스부르그, 암스테르담여행하고 돌아와 안개 낀 강가를 거니는 엘레강스한 가정이다.

그렇게 살까.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기. 허리띠 졸라매고 축적하기. 어느 쪽을 택해야 옳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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