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자의 소혜(笑慧)칼럼]헬(hell)과 캠핑(camp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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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자의 소혜(笑慧)칼럼]헬(hell)과 캠핑(camp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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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7.10.10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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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자(수필가, 칼럼위원)

| 중앙신문=중앙신문 | 자원입대를 한 손자가 5주간의 군사훈련을 마치고 수료식을 하는 날이다.

미국에서 대학을 다니며 영주권도 받았지만 군에 갈 나이가 되자 따뜻한 봄날에 훈련을 받는 게 좋겠다며 서둘러 귀국하였다.

22세 한창 젊음을 만끽하며 꿈을 키울 시기에 조국에서 국방의 의무를 다 하겠다고 한국에 온 게 기특했다. 입대 날을 기다리는 동안 손자는 아버지가 일하는 병원에서 알바를 하며 돈을 벌었다. 같이 일하는 여직원 중 누구는 열심히 일하는데 제일 예쁜 누나는 설렁설렁 시간을 때우고 거울만 자주 본다고 일러 주는 말을 들으니 주인의식이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훈련소에 가기 전날 머리를 깎았다. 잘 깍은 밤톨처럼 두상도 예쁘고 하얀 피부에 헌칠하게 키도 크고 늠름해 보여 어느 배우보다 잘 생긴 손자의 모습이 자랑스러웠다.

육군훈련소에 입소하던 날, 손자와 포옹을 하며 “지권아! 할머니는 널 사랑 한다 기도할게” 돌아서서 오는데 왜 자꾸 눈물이 나는지 알 수가 없다. 손자가 큰 소리로 “할머니!” 하고 불렀다. “전쟁 안 나게 기도해 주세요.” 그렇지, 아직도 우리는 분단국가에 살고 있지. 지금은 휴전중일 뿐이야. 태평성대가 아니라 북의 도발이 잊을만하며 터지지 않는가.

손자를 훈련소에 두고 논산시 연무읍 득안대로를 달려서 서울로 오던 날, 날씨는 잔뜩 찌푸리더니 울음을 터뜨렸다. 운전하는 아들은 연신 와이퍼로 흐린 창을 닦으며 만감이 교차하는 듯 말이 없다. 자식의 앞날도 환하게 닦아주고 싶은 게 부모의 마음이리라.

손자가 훈련을 받는 동안 편지를 두 번 보냈다. 오랫동안 E-mail만을 이용해 편지를 해 온 터라 우표 값이 300원으로 오른 걸 처음 알았다.

4월초에 입대한 육군훈련소에서 수료식을 한다는 초대장이 왔다. 5주간의 훈련을 마치고 제각각 다른 부대로 배치를 받기 전 학부모를 초대하고 수료식을 거행하는 것이다. 아들과 나는 새벽부터 서둘러 논산으로 향했다. 차 유리창 앞에 초대장을 붙이고 훈련소 정문을 통과할 때 거수경례를 하는 군인의 모습이 씩씩해 보였다. 11시30분부터 수료식이 시작되는데 1시간 전에 들어갔으나 계단은 이미 다 차 있어 그늘진 나무 밑에다 가지고 간 비닐방석 두 개를 깔고 앉았다.

하나! 둘! 하나! 둘! 하며 보무도 당당하게 연병장을 걸어 들어오는 훈련병들을 보자 모두들 일어나 손뼉을 치며 환호했다. 이윽고 손자가 속해있는 9중대의 깃발이 보였다. 고개를 빼고 뒤꿈치를 맘껏 올려 손자를 찾았으나 그놈이 그놈 같아 찾을 수가 없다. 제일 잘 생긴 놈이 내 손자인데 도무지 보이지가 않는다. 이런 줄 알았다면 망원경을 준비했을 텐데. 애국가를 4절까지 다 부르고 국기에 대한 충성을 맹세한 다음 군악대의 우렁찬 연주와 축포가 터지자 수료식은 끝이 났다. 보호자를 확인한 후 끊어준 외출증을 가슴에 단 손자를 앞세우고 우리는 미리 예약해 둔 펜션으로 향했다.

손자가 잘 먹는 돼지갈비 묵은지 찜과, 봄나물 무친 것을 놓고 점심을 먹었다. 손자는 계속 싱글벙글 웃으면서 할머니가 해온 음식이 제일 맛있다며 쩝쩝 잘도 먹는다. 그 동안 지냈던 얘기를 하느라 밥을 많이 먹지도 않고 수저를 놓아 아쉬웠다. 무르익는 봄날 보다 더 흥이 나 보이는 손자는 연신 훈련소 얘기를 줄줄이 늘어놓았다.

“할머니! 예전에 제가 중2때 갔던 청학동 예절캠프나 해병대 캠프에서의 체험은 헬(지옥)이었고요 이곳은 캠핑장에 온 느낌이 들었어요.”, “한 바퀴 돌고 오면 초코파이 주지요, 또 돌고 오면 아이스크림 주지요, 반찬도 집에서 먹던 것 보다 더 좋아요. 저는 배식당번을 맡아 먹고 싶은걸 맘껏 먹을 수 있었어요. 잠도 잘 잤어요. 코를 골아 걱정 했는데 양쪽에 자던 훈련병이 신체검사에 이상이 있어 둘 다 귀향을 했어요. 팔을 벌리고 편하게 잘 수 있었어요. 정말 해피하게 훈련을 잘 받았어요.”

가지고 간 참외와 체리는 그 동안 먹지 못했다며 맛있게 먹고 있는 손자의 모습에서 옛날 아들이 군의관이 되기 전 훈련을 마치고 수료식 할 때 찾아갔던 생각이 났다. 그 때 아들은 애인이 면회를 와 있다고 하여 우리 부부는 서둘러 집에 돌아와야만 했었다.

손자는 군에 와서 다. 나. 까 말투를 배웠다고 한다. 말끝에 요나 자(字)를 붙이지 않고 다. 나. 까. 로 끝나게 말해야 한다는 거다. 요즘 젊은이들은 누가 의사를 물어오면 ‘그런 거 같아요.’ ‘좋은 거 같아요.’ 하면서 자기의 의사를 확실하게 말하지 않는 잘못된 언어 습관을 가지고 있다. 자기의 주장을 내세우기를 꺼리는 우리사회의 폐쇄적 분위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듣기에 거북했던 말을 분명하게 답하는 법을 훈련소에 와서 배우다니 고마운 일이다. 다 한 것 같아요 가 아니라 다 했습니다. 준비됐나? 기분 좋습니까?

이틀 후면 배치 받는 부대로 가서 나머지 군 복무를 하게 된다고 했다.

“충성!” 하면서 거수경례를 하는 씩씩한 손자를 논산캠핑장에 두고 오는 날은 날씨도 화창해서 활짝 핀 봄날이었다.

아무리 캠핑장 같은 훈련소라 할지라도 전쟁이 터지면 일시에 지옥(hell)으로 변하는 사실이 분명한데 평화적통일은 언제 이루어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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