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으로 듣는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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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으로 듣는 소리
  • 김영택  webmaster@joongang.tv
  • 승인 2020.02.26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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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택 칼럼위원
김영택(칼럼위원)

| 중앙신문=김영택 | 집안에 홀로 있게 되면 밖에서 들려오는 발자국 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지표를 울리는 발자국 소리는 일순간 뇌신경을 자극하고 촉각을 곤두세우게 하지만 얼굴을 맞대고 생활하는 가족들의 발소리로 판단되면 종전까지 품었던 경계심이 사라지고 반가움에 몸을 일으켜 세우게 된다.

철학자들이 말하기를 세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 눈으로 보는 것보다는 가슴으로 느끼라고 했고 귀를 기울여 세상을 보라고 조언했다. 요즘 유명 상품을 감쪽같이 모방하고 유전자를 조작하는 짝퉁 시대라 하지만 사람만은 모조품을 만들 수가 없다. 더구나 인간은 얼굴도 다르고 목소리도 다르고 행동도 다르니 로봇 같은 인조인간이 정교하게 만들어진들 영혼을 가진 인간과는 비교할 수가 없다.

무한 경쟁시대에 돌입하여 사는 것 자체가 눈코 뜰세 없는 경쟁 속에 살다 보니 언제부터 인지 몰라도 사람들의 생활이 자유롭지 못한 생활에 얽매여져 틀에 박힌 것처럼 고정적인 생활이 되어버렸다. 인간의 삶이라는 것이 오직 이기주의의 생활 속에만 빠져들어 스트레스가 날로 누적되다 보니 가정에서나 직장에서나 웃는 날이 적고 온 가족이 모두 모인 화목한 날이 드물어진다. 그러다 보니 가족 간의 화목과 사랑이 무뎌져서 얼음장처럼 차가워지는 것 같고 신경질적인 날선 대립으로 각을 세우는 것 같아 삶에 대한 회의와 더불어 맹목적인 삶이 불안불안 해진다.

집집마다 공통된 일이지만 가족이 출타를 하게 되면 귀가할 때까지 기다리게 되고 일정한 시간이 흘러가면 올 사람의 동정에 신경이 쓰인다. 나 홀로 집안에 혼자 있게 되면 불안에 떨기도 하고 외로움을 동반한 그리움이 파도처럼 밀려 오기도 한다. 보고 싶다는 표현은 실상같이 있을 때는 쉽게 표현할 줄 모르지만 오랫동안 떨어져 있거나 혼자 있게 되면 보고 싶고 그리워지는 감정은 사람들만이 갖고 있는 독특한 현상인가 보다.

나이 들어 집안에 있는 날이 많다 보니 과거와는 달리 먼저 집에서 가족을 맞는 시간이 많아진다. 아들이 출근하는 것을 지켜보게 되고 아내가 외출하는 것을 배웅하게 되는 주부 같은 삶을 살게 되니 어쩌다 이런 신세가 되었는지 세월이 원망스럽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그동안 애써온 아내의 내조에 늦게나마 보상이라도 해야겠다. 싶어 잘못된 생각을 고쳐먹자 내심 못마땅했던 불만이 눈 녹듯 사라져버린다.

집안에 혼자 남게 되면 왠지 모를 공허함과 허전함 속에 빠져든다. 그 허전함은 어릴 적 성장기부터 시작해서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삶을 사진첩을 보듯이 뒤돌아 보게 하고 행복했던 순간을 그리워하는 나만의 공간 속에 머물게 한다.

미로의 꿈길에서 오랫동안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장시간을 방황하다 보면 때마다 정신을 번쩍 차리게 해주는 것은 고맙게도 24시간 집을 지켜주는 진돗개 소리에 말초신경을 곤두세우게 된다. 개 짖는 소리에 깜짝 놀라 문밖의 동정을 귀를 기울여 살피게 되고 신체적 종합기능을 이용해 자동분석에 들어가게 된다. 도둑질하듯 발소리를 죽여가며 집 가로 살그머니 접근한 사람은 생활고로 인해 인력시장에서 노예처럼 고용되어 스티커나 전단지를 마구 배포하여 쓰레기를 발생시키는 사람들의 발소리가 분명했고 뚜뻑뚜뻑 발소리를 내며 짧은 시간 동안 머무른 사람들은 우편물을 배달하는 집배원과 주택가에 설치된 계량기를 점검하는 검침원들의 발자국 소리로 구분되었다.

그리고 이와는 달리 두세 명인 듯이 불규칙한 발자국 소리와 함께 조심스레 출입문을 두드리는 사람들은 선교 활동을 나선 종교인들의 발자국 소리로 여겨졌다.

사람과 달리 개들은 후각과 청각이 예민해 멀리 떨어진 곳에서도 집주인의 발자국 소리를 알아듣고 자동차 소리도 구분한다고 한다. 또 매일같이 주인을 봐도 괴성을 지르고 몸을 흔들어대며 반가움을 표시한다 웃음에 인색하고 무덤덤한 사람들의 표정과는 아주 대조적이다.

무단 침입자가 되어 잠시 동안 귀를 자극했던 낯선 사람들의 발자국 소리는 일정한 시간이 흐르면 사라지고 벽 시계의 오랜 기다림 끝에 귀에 익은 발자국 소리가 들려오면 감 가슴속의 심장박동은 이내 안정감을 되찾고 컴퓨터처럼 머리에 저장된 가족들의 발자국 소리를 확인하고자 출입문을 향해 내달리게 된다. 살다 보니 생전 안 하던 짓을 한다 하여 이게 웬일인가 싶어 오래 살고 볼일이야 하는 아내의 너스레를 면전에서 받으면서 억지웃음을 보이게 되니 행복이란 삶은 오늘도 나를 꼼짝 못 하게 결박시켜서 집안의 포로로 감금 시켜 놓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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