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은 사람을 큰 그릇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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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사람을 큰 그릇으로
  • 유지순  webmaster@joongang.tv
  • 승인 2020.01.14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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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지순(수필가·칼럼위원)
유지순(수필가·칼럼위원)

| 중앙신문=유지순 | 해마다 새해를 맞으면 누구나 새로운 계획을 세운다. 금년에는 좋은 책을 많이 읽는 해로 정하면 어떨까.

임어당은 독서의 기술이라는 글에서 책을 읽지 않는 사람의 삶과 책을 읽는 사람의 삶은 비교할 수 없이 다르다. 책을 읽지 않는 사람은 시공 속에서 자신의 직접적인 삶이라는 좁은 감옥에 갇혀 사는 죄수처럼 가까운 몇몇 사람의 테두리나 자신의 일상을 벗어날 수 없다.

책을 읽는 사람은 시공을 초월해서 동서고금의 위대한 사상가들과 직접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점에서 자유로운 사람이다. 독서의 경험은 여행의 경험과 마찬가지로 다른 세계를 경험하는 심리적 효과를 준다고 했다.

며칠 전 라디오에서 충격적인 얘기를 들었다. 지하철 역 구내에는 여러 종류의 가게가 있다. 그중 하나가 책방이다. 옷이나 액세서리 같은 장사가 잘 되는 패션가게는 그대로 두고 책방은 다 없애려고 한다는 얘기다.

마음을 살찌우는 책방은 필요 없고 겉치장을 하는 옷과 액세서리가 우리 생활에 더 필요하다는 결론이다. 그 얘기를 듣고 한참이나 충격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말초신경만 자극하는 것들이 책보다 우위에 있다는 것이 답답했다. 책을 많이 읽는 국민은 강하다고 하는데.

몇 년 전, 미국에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대학 열댓 군데를 둘러보았다. 그 대학교 앞에는 새 책방, 헌 책방 할 것 없이 책방이 즐비하게 진을 치고 있었다. 우리나라 대학가는 책방은 없고 옷가게와 음식점만 있다고 한탄하는 얘기를 종종 듣는다.

한비야는 일 년에 책 100권씩 읽을 계획을 세웠다고 한다, 좋은 책을 권해줄 만한 사람을 만나면 추천을 받아 100권의 도서목록을 작성해 놓고 한 권씩 지워 가면서 책을 읽는다는 기사를 보았다. 걸어서 세계 각국의 오지도 다녔고 국제난민구호사업을 하느라 정신없이 바쁜데도 많은 책을 읽으며 자신을 키워 나가는 그녀가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90세가 된 어느 노시인이 20년 전에 일본에 갔다. 영화를 보려고 극장에 앉았는데 영화필름이 도착하려면 10분 정도 기다려야 한다는 영화관의 설명을 들었다. 주변 사람들은 아무소리도 하지 않고 모두 조용히 책을 꺼내 읽으면서 필름이 오기를 기다리는 것을 보고 그 노시인은 깊은 감동을 받았다고 한다. 이 얘기를 듣고 우리나라 사람들은 그런 상황이 닥치면 어떻게 대처했을까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살다보면 기다려야하는 시간도 있고, 계획이 어긋나서 남아도는 시간도 생긴다. 언제나 읽을 책만 가지고 있다면 조금도 시간낭비를 하지 않고 기다리느라 지루해 하지 않을 수 있다. 책은 그만큼 삶 속에서 언제 어디서나 귀중한 역할을 해 주는 마술사다.

각양각색의 직업을 가진 사람들 필히 책과 씨름하며 글을 써야하는 사람들은 물론이지만 연예인이나 방송인, 프로그램 진행자들도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은 자신감에 차 있고, 말에 조리가 있으며 탄탄한 지식을 바탕으로 존경도 받는다. 책은 그만큼 사람의 그릇을 크고 폭 넓게 만든다.

책을 읽고 생의 진로를 발견하여 반듯하게 잘 살고 있는 사람들의 얘기도 많이 듣는다. 친지 중에 열정적으로 엄청난 양의 책을 읽고 삶을 즐기면서 좋은 글을 쓰는 분이 있다. 그분을 생각할 때면 내가 더 행복해진다. 읽고 싶어도 읽을 책이 없어 안타까웠던 시절은 멀리 흘러가고, 지금은 읽고 싶을 때 읽을 수 있는 무궁무진한 책이 있어 우리 모두는 축복 받은 시대에 살고 있다.

책 속에는 재미있는 일도 심금을 울리는 일도 있으며 책을 읽으면서 기쁨과 고통을 함께 느끼기도 하고, 위험한 상황이 닥쳤을 때는 마음을 조이기도 하고, 병이 들어 죽을 고비를 넘겨야 했을 때는 함께 아파하기도 한다.

책은 현실 속에서 경험 할 수 없는 상상도 못할 세계를 체험할 수 있어 늘 가슴 벅찬 감동을 받는다. 한 권의 책을 읽고 나면, 이런 삶도 있구나 하고 내 삶과 비교하여 되돌아 볼 수도 있어 그만큼 성숙해졌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책을 많이 읽는다면 모두 삶의 그릇이 커져서 세상을 살아가는데 혜안이 생겨 지혜로운 삶을 살면서 든든한 사회의 일원으로 튼튼하게 발을 붙일 수 있을 것이다. 책이 우리에게 끼치는 영향이 이렇게 크다.

금년에는 사느라 바빠도 몇 권의 책이라도 읽을 계획을 세우면 누구나 보람 있게 보낼 수 있을 것이다. 우리도 책을 읽는 국민으로 거듭나서 세계화 바람 속에 당당히 동참할 수 있는 실력을 길러야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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