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촌의 세상 돋보기]아들만 둔 쓸쓸한 엄마들, 애틋함 받는 친정 엄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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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촌의 세상 돋보기]아들만 둔 쓸쓸한 엄마들, 애틋함 받는 친정 엄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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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7.08.30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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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촌(수필가, 칼럼위원)

| 중앙신문=중앙신문 | 마을 회관 경로당에 어른들이, 아니 노인들이 모였다. 아파트 입주한 지 일 년이 지났건만 경로당이 문을 열지 못했다. 산책길에 비어 있는 40여 평의 깨끗한 공간을 기웃거리기만 하고 있었는데, 드디어 아파트 소장의 공고문이 몇 번이나 나붙고 나서야 겨우 필요한 숫자의 어른들이 참석하였다.

사실 적당한 크기의 중형 아파트 단지인지라, 언 듯 보아서는 경로당 회원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많아 보이는데 막상 모임에는 동참하지 않는 것 같았다. 아직은 경로당에서 소일하기에 한가한 노인들이 아니거나, 자기를 경로당에나 드나드는 노인네? 로 여겨지기가 싫었던 모양이기도 하다. 나도 사실은 거기서 소일한다는 기대 보다가는 아파트에 경로당은 존재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협조차 참석한 것이었으니까.

필요한 숫자만큼 어른들이 모이고 임원이 선출되고 모임이 결성되었다. 그리고 회의 차 첫 번째 모임이 있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그날 참석한 육칠십 대의 여인들 중 대부분의 공통점이 아들만 둔 할머니들이었다. 아들 하나, 둘, 혹은 셋을 둔 여인들, 자기소개를 하다가 우리는 그만 크게 웃고 말았다. 그 웃음 속엔 당당함 보다가는 씁쓸한 속내가 살짝 내비쳤다.

결국 아들만 둔 엄마들은 쓸쓸했던 것이다. 그래서 무시로 드나들어도 눈치 보지 않고 더러 속내도 털어놓을 수 있는 공간이 필요했을지도 모른다. 딸네 집엔 수시로 드나들거나 불쑥 방문해도 실례이거나 폐 끼치는 일이 아니라고 생각되지만 아들네는 조심스럽다. 미리 예고하고서 방문하는 것이 며늘아가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하며 바쁜 젊은이들에게 전화도 특별한 일을 제외하고는 문안 전화를 받는 것이 편안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야만 시대에 뒤떨어지지 않는 시어머니, 아들을 곤란하지 않게 만드는 엄마인지도 모른다.

아들네 아파트 이름과 동 호수를 적어 들고 김치 싸들고 농산물 이고 지고 아들네 집 허겁 자겁 찾아가는 일들은 이제 차츰 구식이 되고 있다. 그 정겹고 아름다운 봉사와 희생적인 사랑을 시대는 ‘구식’ 혹은 ‘귀찮은 일’ 로 여겨지기 시작하면서 시어머니들도 눈치를 차릴 줄 알게 되었다.

아들만 둔 엄마들, 그들이 푸른 시절엔 아들만 쑥쑥 낳았다고 가족 간에나 이웃들에게 사랑받고 부러움도 받았을 것이다. 튼튼하고 듬직하게 커 가는 아들들을 바라보면서 세상의 그 무엇도 부러울 것 없었던 푸른 시절, 눈에 보이지 않게 속내로는 목에 힘 좀 주면서 살았던 꽃다운 그녀들이 아니던가. 그로부터 삼사십 년이 지난 오늘날, 할머니가 되고 보니 오란데도 별로 없고 만만하게 넋두리 풀어놓을 공간도 상대도 귀하게 되었다. 더구나 아파트에는 현관문 닫아 버리면 몇 년을 이웃하고 살아도 옆집이 낯설고 그들이 젊은이들일 때는 조심스럽기까지 하다.

지혜로운 며늘아가들이 딸 없는 시어머니를 배려해서 딸 노릇 한다고 하지만 애틋함이 배어 있기 어려운 사이인 것은 자명하다. 요즘 세상에 최소한의 예의와 도리만 챙겨도 ‘며느리 잘 본 시어머니’라는 소리 듣는다.

 

이웃 친구가 노상 딸네 집에 드나드는 것을 부러워하다가도 나도 푸른 시절엔 아들만 둔 엄마라고 부러움 받던 지난날을 떠올리며 오늘의 자신을 자위한다. 요즘 시어머니들은 하루가 다르게 변해 가는 세상에서 아들들에게 존경받는 어머니로 기억되고 며느리들에겐 편안한 시어머니로 남기 위해 어떻게 처신해야 한다는 것도 잘 안다. 그러나 어른 노릇, 품위 있는 어른되기가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 고독했을 것이다. 때로는 마음을 풀어헤쳐 놓을 고명 딸 하나 그리울 때도 있었을 것이다.

가정의 평화를 위하여 쓸쓸한 가슴을 쓸어내릴 줄도 아는 아들만 둔 현대의 시엄마들, 그들에겐 어쩌면 마을회관이야말로 편안하고 부담 없는 곳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당신이야말로 결코 헛되이 살지 않았음을~, 애틋함 받는 친정엄마는 되지 못했지만 그것은 당신의 잘못이 아님을 털어놓아도 될 것이다.

당신의 지난날이 있기에 사회는 오늘도 정상적으로 믿음직스럽게 굴러가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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