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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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상국  webmaster@joongang.tv
  • 승인 2020.01.02 1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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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국 수필가·칼럼위원
이상국 수필가·칼럼위원

로사리오의 사슬로 유명한 일본의 핵물리학자며 작가인 나가시 다카이의 편지에 이런 글이 있다.

가난한 살림은 제가 좋아서 하는 것이지 결코 마지못해 하는 것은 아닙니다. 부지런한 자를 능가할 가난은 없다는 속담이 있습니다만 게으름뱅이인 저는 가난에 쫓기지 않으면 일하지 않기 때문에 언제나 가난하게 살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인간은 큰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있고 작은 일밖에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내가 신문에 글을 내고 큰돈을 벌고 이웃 할머니는 나물이나 팔아 작은 돈을 번다고 해서 나는 내 돈으로 내 맘대로 잘 살고 할머니는 작은 돈으로 가난하게 산다는 것은 잘못입니다. 나도 할머니와 똑같은 수준으로 살고 나머지 돈은 복지활동을 하는 곳에 쓰이도록 해야 합니다.

그 말에 생각한다.

자발적 공산주의와 해탈?’

나가시 다카이는 자본론을 읽었을까. 아닌 것 같다.

읽었다면 이처럼 소박한 경제를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자기 하나의 희생으로 주위 모든 사람이 잘 먹고 잘 살 수 있을 거란 생각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또한 다른 사람의 경제활동을 살펴 다 같이 동질의 삶을 누리기 위하여 노력하도록 잘 사는 사람들을 설득하거나 강제할 사람도 아니다.

나머지 하나는 해탈이다. 읽자마자 양심을 찌르기 시작한다. 나도 그와 비슷한 교육을 받고 책을 읽고 다방면에 추구한 일들이 많건만 나는 왜 그런 생각을 하지못했을까. 나에게 지적 양심이 있기나 한 걸까.

부자가 가난한 이웃을 돕는다는 것은 선의의 발로에 의한 선행에 불과한 것이라고만 생각해 왔다. 내가 벌어 들이는 돈에 상관없이 주위 사람들과 똑같은 수준에서 생활하여야 한다는 발상은 내게 없었다. ! 있긴 있었다. 어려서 친구들이 못 먹고 헐벗었을 때 한 놈이 과자, 사탕 몇 개 가져와 하나씩 하나씩 까먹는 꼴이 보기 싫어 잘 먹든 못 먹든 모두 똑같이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한 적은 있다.

살면서 그 생각을 잊었다. 나 먹고 사는 데만 전념했다. 내가 받는 보수는 나의 일상에 필요불가결한 돈. 따라서 나보다 못사는 사람을 생각할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열심히 벌어 돈이 쌓이기를 기대했다. 그러나 많은 돈을 만질 기회는 없었다. 따라서 남에게 기부한다거나 복지재단에 돈을 기탁한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그런데 다카이는 나보다 더 가난해도 그런 생각을 했다니. 내가 한참 모자라는 소인배다.

연말이면 누군가 알 수 없는 천사가 많은 돈을 은밀히 남기고 간다는 말이 있었고 지난 연말에도 어김없이 다녀갔다고 한다. 이웃동네에 쌀 한 가마니씩 가난한 이웃에게 남몰래 돌리고 시치미 떼는 훌륭한 분이 있다. 그런데 어떻게 새어나가 면장의 귀에 들어갔고 이웃돕기 일원이 되어 거기 기탁할 것을 종용해 그렇게 했다. 면장의 권고에 의해 원시선행을 버린 그는 숨은 선행이 주는 짜릿한 기쁨을 한꺼번에 잃어버리고 말았다. 면장은 그의 쾌감 하나 앗아가 버린 악행을 저지르고 말았다.

태국에서 NGO단체의 일원으로 온 프랑스 젊은 부부를 만난 적이 있다. 남루한 옷차림의 그들은 언제나 가난했다. 그들은 NGO활동을 원활히 하기 위하여 태국말을 열심히 배우고 있었다. 프랑스에 부모가 있고 자녀들이 있다고 했다. 무엇이 그들의 생을 이끌었을까. 그 당시 그 이유를 알고 싶지도 않았고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몰상식한 에고이스트이었다.

인간이 태어나 장구한 시간과 공력을 들여 배우고 학습한다는 것은 인간과 짐승, 자연, 그리고 신에 의하여 어떻게 작용하며 봉사하는 것이 올바른 길인가를 아는 일 일 것이다. 나처럼 독선적이고 이기주의에 휩싸인 인간을 만든다면 교육은 영원히 실패한 것이다. 선의의 경쟁, 남을 위한 배려, 가난에 동참하는 인고의 노력이 세계를 이끌어온 동력이다. 간디의 비폭력운동, 링컨의 흑인 해방운동, 마르크스 레닌의 실패한 공산주의, 신의

국가를 실험했던 중세,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시민 불복종 운동.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를 오래전에 읽었다.

책 전편에 걸쳐 관주도형 문화예술 행사나 관주도형 예술작품을 지독하게 싫어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도대체 왜 그럴까? 그토록 관주도형을 싫어하는 이유가 뭘까? 오래도록 의문으로 남아있었다.

엊그제 공예박물관행사에서 그 의문이 풀렸다. 공예박물관을 주관하는 이성현 회장이 행사를 준비하면서 주변 상인들의 불만을 들었는데 이야기인즉슨 관주도형 행사들은 언제나 똑같은 장소, 똑같은 주제, 똑같은 소재, 똑같은 기간, 똑같은 내용으로 행사를 하니 뭐 색다른 게 있어야 재미가 있고 관객의 관심을 끌어 발전할 것이 아니냐는 것이었다.

따라서 관급행사는 속성상 지시와 복종으로 치러지는 것이라 예술문화의 생명인 창의성은 사라졌으며 반복과 답습이 점철된 행사라 스스로 소멸하게 되고 만다. 반면 민간 주도형 행사는 샘솟는 창의성과 풍부한 다양성, 변화의 생명력으로 발전하고 확장하기 마련이다. 문제는 풀렸고 숙제는 해결되었다. 30여 년 만의 일이다.

교육의 궁극적 목적. 인간의 학습기간이 요원했던 이유도, 유홍준의 관주도형 문화 거부 이유를 늦게 안 것처럼 나가시 다카이의 편지로 해석되었다. 이 편지로 겨우 내가 살아가는 이유, 나를 교육시킨 학교, 나를 가르친 선생님, 학습의 오랜 기간들이 왜 필요했으며 그 궁극의 목적이 무엇인지 발견했으니 이제야 해탈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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