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가 패기를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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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가 패기를 기다리며
  • 김영택  webmaster@joongang.tv
  • 승인 2019.12.24 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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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택 (칼럼위원)
김영택 (칼럼위원)

| 중앙신문=김영택 | 신병으로 인해 교직을 휴직한 친목회 L회원과 무료함을 달래고자 설봉산에 올랐다 하산하니 점심때가 되었다 한 끼의 점심을 무엇으로 해결할까 망설이던 중 등정을 같이한 회원이 보리밥을 권해 그가 알고 있는 미란다호텔 인근의 보리밥 집으로 향했다.

식당에 도착해 안으로 들어서니 내부 분위기 환경은 식당보다는 전통 찻집으로 더 어울릴 성싶었다. 손님 사이를 헤집고 들어가서 자리를 잡고 보리밥 2인분을 시키고 앉아있자니 잠시 후 맛깔나고 정갈스럽게 차린 밥상이 나왔다.

등산을 한터라 한참 시장끼를 느끼던 참에 풍성한 밥상을 대하니 입안에는 연실 침이 돌고 고인 침을 목구멍으로 삼키기에 바빴다. 큰 그릇에 갖은 나물과 보리밥을 넣고 고추장을 섞어 썩썩 벼 대니 그 맛이란 전주비빔밥이 부럽지 않을 정도로 밥의 색깔이 곱고 꿀맛 같다.

보리밥을 먹게 되자 언뜻 생각나는 것이 성장기 속에 어렵게 살았던 가난한 생활로 되돌아 가는 것 같았고 타임 캡슐 속에 정지되어 있는 것 같은 공상에 빠져들었다. 쌀이 귀했던 시절이라 불평도 못하고 매일 보리밥을 먹어야 하니 누군들 보리밥 좋아할 리 없었지만 밥상머리에 놓인 시커먼 보리밥은 쳐다보기도 싫었고 제일 싫어하는 음식 중 첫 번째 음식이었다.

그러던 것이 나이가 들고 건강에 관심을 갖게 되다 보니 싫어하던 음식들이 이제는 웰빙 건강식품이 되어 없어서 못 먹을 정도가 됐고 보약처럼 선호하는 얍삽한 생활에 빠져들었다. 나이 지긋한 사람들의 살아온 삶을 뒤돌아보면 고생으로 얼룩진 흔적을 유산처럼 간직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제일 참기 어려웠던 것은 배고픔이었다 가난에 찌들었던 관계로 주식은 항상 보리밥과 감자였고 이로 인해 사람들의 건강상태는 영양실조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한때는 극심한 가난으로 인해 꽁보리밥도 제대로 못 먹었던 사람들도 많았지만 당시 가난을 대표하는 것이 보리밥이었고 집집마다 잘살고 못 사는 것을 쌀밥과 보리밥 먹는 것으로 비교가 됐다.

학교생활도 영향이 있었다 점심시간이 되면 쌀밥을 싸온 학생들은 우쭐했고 보리밥을 싸온 학생들은 도시락을 내보이기가 창피해서 주저주저했고 풀이 죽은 상태가 되었다 배고팠던 어린 시절의 소원은 북한 주민들의 바람처럼 오로지 쌀밥을 실컷 먹는 것이 소원이었다.

정부가 추진한 녹색혁명 추진을 통해 부족했던 쌀이 남아돌자 식단에 변화가 생겼고 대신 쌀 소비량은 푹 줄어들었다 더구나 맛없고 먹기 싫은 보리쌀은 식단에서 계속 밀려났고 외면당했다. 자연적으로 보리쌀 수요가 줄어들었고 보리 파종면적이 전국적으로 감소되더니 중부 지방에서는 보리를 심었던 밭들이 대체작물로 심어져 보리를 밭에서 직접 본다는 것이 무척 어려워졌다.

보리는 그동안 호남지방에서 이모작으로 심어져 보리쌀 수요에 큰 어려움이 없었으나 그나마도 수매 가격이 낮고 타산이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해마다 보리 파종면적이 줄어만 간다고 하니 안타까운 노릇이 되었다 보리밭은 농촌의 삶과 애환이 고스란히 간직된 장소이기도 했다. 늦가을에 파종하여 초여름에 수확하는 보리는 풍성한 수확을 거둬 드리는 벼의 수확과는 대조적으로 생산량이 한정되어 수확의 기쁨을 느끼지 못한다. 더구나 수확 시 따가운 보리 껍질이 몸에 들어가 일꾼들이 보리타작하기를 꺼렸고 길금이나 누룩이 필요해 자투리땅에 보리를 조금 심은 사람들은 도릿 개질로 타작하는 원시적인 방법을 사용하여야 하기 때문에 뒤처리가 여간 힘든 것이 아니었다.

남도 지방이 아니면 싑게 찾아 보기가 힘든 보리밭을 추운 겨울에 어쩌다 보게 되면 끈질긴 생명력을 갖은 인동초 같아서 더욱 신비스럽게 느껴진다 만난 지 오래된 시골친구 집을 찾아가던 중에 산을 개간해서 일군듯한 작은 밭에서 파란 청보리가 자라나고 있었다.

잊혔던 보리를 보자 반가움에 차에서 내려 보리밭으로 다가갔다 하늘을 향해 종종 늘어선 파란 보리들은 조직적으로 훈련된 군대처럼 질서 정연하고 당당하게 보였으며 거칠 것이 없어 보였다 보리는 늦가을에 심어진다 파종 시는 고랑을 넓게 파고 둑을 만들어서 물 빠짐이 잘되어 얼어 죽지 않도록 농부들은 신경을 쓴다.

또 보리가 겨울을 나고 해빙이 되는 이른 봄에는 웃자라지 않도록 꼭꼭 밟아 주어야 한다 그러다 보니 보리밭은 농촌학생들의 발길이 절실히 필요한 봉사활동 장소였다.

6,25 전쟁이 끝나고 혼란과 무질서가 판을쳐 정국이 안정을 찾지 못하던 시절 이상하게도 이 땅에는 문둥병 환자가 많았다 병명이 난 센 병이라고 불리어지던 그들은 소록도로 수용되지 못하고 방랑자처럼 떠돌이 생활을 하고 구걸 생활을 했다. 문전 걸식을 하는 문둥이들의 처참한 모습이 괴물처럼 보여서 무섭고 두려운 나머지 대문을 걸어 잠그고 생활했던 웃지 못할 일도 있었다.

또 괴상한 소문이 부풀려져 행동의 제한을 받았다 문둥이들이 보리밭 속에 숨어있다가 지나가는 어린아이들을 죽여 간을 빼먹는다는 얼토당투한 헛소문이 뜬구름처럼 나돌아 학교가 파하면 혼자 귀가하지 못하고 떼를 지어 몰려다녔고 보리밭 근처에는 얼씬도 못했다. 보리 가패여 타작 시기에 이르면 아이들은 보리짚을 이용해 보리피리를 만들었고 여치집도 만들어서 시원한 여치 울음소리를 집안에서 들으며 무더운 여름 더위를 달랬다.

보리짚은 여름밤 쑥 불처럼 모기를 쫓는 향불이 되기도 했고 옥수수와 감자를 구워 먹는 불판이 되기도 했다 시대가 한참 변하다 보니 보리와 관련된 빛바랜 추억들이 까마득하게 잊히고 눈물 나던 옛일의 화젯꺼리로 돌려진다.

문둥이 시인으로 잘 알려진 한하운 시인의 시 보리피리를 어쩌다 읽게 되면 보릿고개로 힘들었던 지난 세월의 고생을 떠올리게 하고 그리운 추억으로 여운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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