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의 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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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의 반성
  • 김영택  webmaster@joongang.tv
  • 승인 2019.12.11 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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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택 칼럼위원
김영택 칼럼위원

| 중앙신문=김영택 | 크리스마스가 가까워지니까 성당과 교회마다 아름답게 장식한 크리스마스트리 불빛이 휘황찬란하여 연말 분위기가 물씬 풍겨온다.

때를 놓칠세라 백화점과 상가들도 요란스럽게 크리스마스트리를 만들어놓고 캐럴을 울리며 오가는 사람들의 구매심리를 자극한다 크리스마스 때가 되면 많은 사람들이 모이고 오가는 광장에는 대형 트리가 설치되어 세밑 한파에 꽁꽁 얼어붙은 강추위를 녹여주고 올 한 해 힘들었던 사람들의 마음을 훈훈하게 보듬어준다.

만인을 위한 영원한 평화와 안식처를 마련해 주시고자 하늘의 계시에 의해 베들레헴의 한 마구간에서 성모 마리아의 몸을 통해 태어나신 예수 그리스도의 탄신 크리스마스날은 온 세상에 무한사랑과 축복을 나누어주는 세계적인 명절로 빛나고 있다. 명절이라면 설날과 추석만을 머릿속에 메모리 되어왔던 우리들의 생활에서 그 언제부터인지 분명치 않지만 크리스마스가 고유명절처럼 자리 잡고 연말 분위기를 사뭇 들뜨게 한다. 크리스마스가 가까워오면 백화점과 상가는 선물을 사려고 몰려드는 손님들로 온종일 북적거리고 밀려든 차량들로 교통체증의 진통까지 겪는다.

그렇게 소란스럽고 짜증 나는 일이 발생해도 사람들의 표정에서는 화를 내 거나 얼굴을 붉히지 않고 오늘만은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자 하는 넉넉한 표정이 넘쳐난다.

비록 짧은 시간이지만 한해의 삭막했던 분위기가 크리스마스로 인해 평온을 되찾은 것 같아 좋고 사람 사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아진다 크리스마스가 일주일 정도 남은 날이었다. 송년모임으로 밤을 지새우고 시간에 쫓겨 국지도를 따라 안성길 방면으로 주행을 하던 중이었다. 차 안의 시계는 새벽 6시를 가리키며 아침이 된 것을 알렸지만 긴긴 겨울밤은 그래도 물러설 기색 없이 어둑 껌껌한 장애물로 나타나 달리는 차의 속도를 서행으로 제한했다. 야간 운전에 신경이 쓰여 안전운전에만 몰두하여 길을 가던 도중 안성시 일죽면에 이르러 마을을 관통하는 진입로 주변의 한 주택가 입구에 아담하게 세워져 있는 크리스마스트리 하나를 발견했다.

크리스마스트리는 대부분 성당과 교회에 세워져있어 보는 데는 익숙했으나 가정에 설치한 트리는 집안에 가려져서 좀처럼 보기가 어려웠는데 예상 밖의 장소에서 크리스마스트리를 보게 되자 밤하늘을 밝혀주는 둥근달을 보는 것 같은 기쁨에 눈이 크게 떠졌다. 호기심에 잠시 정차하여 크리스마스트리를 만들어놓은 주택의 구조를 살펴보니 고래 등 같은 한옥집도 아니고 그럿타고 유럽풍의 멋을 내는 전원주택도 아니었다 집을 지은 지가 몇십 년은 된듯했고 슬레이트 지붕이 여기저기 벗겨져 허연 대머리가 드러난 낡은 집이었다.

크리스마스트리를 보고 있자니 머릿속에는 공연한 상상력이 순간적으로 스쳐간다 집주인이 착실한 기독교인이겠지 하는 생각도 들고 온 가족이 모여 앉아서 정성껏 만든 트리로도 보였다 그러나 그런 생각은 집주인을 만나 보지 않은 상태에서 억측에 불과할 뿐이었고 단정을 짓는 것이 무리인 것 같았다.

한동안 트리에 대한 궁금증에 골몰하자 뭉클 가슴속에 와 닿는 것이 있었다 연말 이웃 돕기 같은 물질적 도움은 아니었지만 보는 것 하나만이라도 감동의 에너지가 되어 기쁨과 즐거움을 선사하고 배려할 줄 아는 집주인의 따뜻한 마음씨였다.

인구증가로 인해 사람이 많다 보니 정의사회가 구현되지 못하고 불의가 오히려 큰소리치는 생활에 오염되어 그러러니 하며 피동적으로 생활하는 사람들이 놀라울 정도로 많아졌다 상상도 못할 끔찍한 사건과 말세에나 있을법한 일들이 자주 발생해 깜짝깜짝 놀라게 되고 치를 떠는 일이 한두 번이 아니다 사나운 태풍이 불면 비바람을 못 이겨 논바닥에 쓰러진 벼는 다시 일어나지 못해 농부들이 일일이 세워줘야 한다.

그와 마찬가지로 절망에 빠져 든 사람이 잃어버린 본질을 찾기 위해서는 종교의 힘과 외부의 도움 없이 스스로를 회복하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요즈음 사회적 추세가 대형화를 추구하여 작게 만든 것이 미흡하게 보일지 몰라도 길가에 세어진 저 작은 크리스마스트리가 수많은 사람들의 가슴속에 사랑으로 각인되어 불면증에 시달려온 인간의 삶을 올바른 곳으로 인도해줄 것으로 생각하니 한량없이 기쁘기만 했다.

성탄절이 있는 연말로 들어서면 거리의 인파와 교회의 종소리로 인해 왠지 마음이 복잡해지고 심란해진다 사는데만 바빠서 올 한 해도 제대로 살았는지 때늦은 회한과 후회가 가슴속을 휘젓는다. 단지 삶을 핑계로 주변 사람 대하기를 어렵게만 대하고 자린고비 와도 같이 처신해온 것은 아니었는지 그리고 다정했던 친구들에게 까지도 철면피로 알려져 따돌림을 받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하기 조차도 부끄럽다.

도대체 삶이 뭐길래 온갖 궁색을 떨며 아등바등거리며 살아야 할까? 길가에 세워져 어두운 세상을 등불처럼 밝혀주는 저 작은 크리스마스트리의 불빛 속에 잠시 동안이나마 뉘우침을 가져보지만 내일이면 잊히고 공염불로 끝날것 같은 생각에 세상 사는 게 점점 두려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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