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이 준 신비한 물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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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이 준 신비한 물질
  • 유지순  webmaster@joongang.tv
  • 승인 2019.12.10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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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지순(수필가·칼럼위원)
유지순(수필가·칼럼위원)

| 중앙신문=유지순 | 기온이 영하로 뚝 떨어졌다. 프로폴리스를 뜯는 작업을 하기 위해 신문지를 현관 앞에 넓게 깔아 놓고, 다시 깨끗한 종이로 신문 위를 덮은 뒤 작업할 준비를 한다.

프로폴리스는 벌이 일을 하는 동안은 채취할 수가 없고, 밀랍이 섞여 있어 기온이 영상으로 올라가면 끈적거려 만지기가 어렵다. 영하로 내려가야만 딱딱하게 굳어져 떼어내기가 좋다. 영하 속에서 하는 일이라 꾀를 부리다가 벼르고 별러서 날을 잡았다.

벌통이 있는 양봉장 옆에서 작업을 하면 힘이 덜 들겠지만, 밖에서 일하다 추우면 바로 집안으로 들어와 훈훈한 난로에 몸을 녹일 수 있어 현관 앞에 자리를 잡았다. 프로폴리스는 어디든지 묻으면 지워지지가 않아서 집 안에서는 작업을 할 수가 없다.

작은 벌통에 수만 마리의 벌이 살고 있으면서 32도에서 35도의 온도와 습도를 유지하고 있어 늘 병의 위협에 노출되어있다. 벌들은 여러 가지 병에서 종족을 지키기 위해서 프로폴리스를 참나무나 소나무, 옻나무, 버드나무 같은 다양한 나무에서 가져다가 벌통 전체에 발라 놓고, 밖에서 들어오는 병균을 막아 통 안에 있는 벌을 보호한다. 나무가 스스로 몸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 내는 프로폴리스를 벌이 채취해 오는 것이다.

봄이면 벌통 뚜껑 밑쪽에 프로폴리스 채취 전용망을 달아 놓지만, 나무로 된 벌통 벽에도 온통 붙여 놓는다. 벌이 드나드는 입구에도 발라서 균의 침입을 차단한다. 작업을 하려면 망도 떼어서 가져와야 되고, 프로폴리스가 많이 붙어 있는 통에 들어 있는 벌은 월동용 벌통으로 옮긴 뒤 현관 앞으로 옮겨와야 하기 때문에 힘도 든다.

프로폴리스는 수천 년 전부터 내려오는 부작용이 없고, 내성이 생기지 않는 천연 항생제이며 방부제라고 한다. 프로폴리스를 연구하는 전문가들은 이것이 마치 만병통치의 위력을 가진 것처럼 얘기 한다. 우리도 벌을 기르기 시작하고부터 프로폴리스를 채취하여 가족들이 잘 쓰고 있다.

감기가 시작되려고 하거나 목이 아프던지 입이 헐었을 때, 치통이 있을 때 이것을 애용한다, 아무 염증에나 발라도 잘 낫는다. 프로폴리스를 바르면 놀랄 정도로 순식간에 통증이 가라앉고 효과가 있어 신비의 묘약이라고 할 만큼 우리 집의 애용 복용약이다. 약을 싫어하는 아이들도 금방 효과가 나서 그런지 순순히 잘 먹는다.

망에 붙어 있는 프로폴리스는 딱딱하게 굳은 것을 비벼서 털면 되지만, 나무통에 붙어 있는 것을 칼로 긁어 내야한다. 망에 붙이기 위해 밀랍을 많이 섞는 것 같고, 나무에는 잘 붙는 탓인지 밀랍이 별로 섞여 있지 않아 망에 있는 것보다는 순수하다. 이렇게 채취한 것은 아주 소량이어서 더 귀하게 여기게 된다.

프로폴리스는 알콜에 녹여서 그 성분을 추출해야만 사용할 수 있다. 고체로 된 것을 알콜 90프로인 식용 주정 1리터에 담는다. 이렇게 해서 3년 정도 보관해 두면, 봉독을 비롯한 여러 독성이 알콜의 휘발성과 함께 날아가 섭취할 수 있는 프로폴리스가 된다.

우리 아이들은 역겨운 맛 때문에 알콜에 녹인 프로폴리스는 먹으려 하지 않는다. 그래서 고체상태 그대로인 프로폴리스가 딱딱하게 굳어 있을 때 믹서에 곱게 갈아서 병에 넣어 냉장고에 두고 필요할 때 한 티스푼씩 먹인다.

프로폴리스는 자연에서 가져오는 것이므로 그 속에 마른 풀잎이나 나무껍질, 벌 날개와 다리 등 여러 가지 이물질이 들어 있다. 정제되지 않은 프로폴리스에 들어있는 이런 잡물질도 자연에서 온 것이라 감수하면서 먹는다.

벌의 산물로는 꿀이 으뜸이다. 꿀 외에도 로열젤리와 프로폴리스, 화분, 밀랍 등 여러 가지가 있지만 우리 집에서는 소규모의 양봉이라 꿀과 프로폴리스 외에는 거두어들이지 않는다.

벌로 인해 이런 좋은 것들을 얻을 수 있어 삶의 질이 조금은 나아진다는 생각에 사철 벌키우기에 정성을 다하고 있다. 이 작은 미물도 이렇게 좋은 선물을 주는데 나는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왔는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 것인지 잠깐 생각에 잠기게 한다.

아무리 날이 추워도 벌이 주는 귀한 물질이기에 조금이라도 흩어지지 않게 정성을 다하여 프로폴리스를 뜯어내는 작업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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