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벌의 겨울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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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벌의 겨울나기
  • 유지순  webmaster@joongang.tv
  • 승인 2019.12.03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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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지순(수필가·칼럼위원)
유지순(수필가·칼럼위원)

| 중앙신문=유지순 | 비닐하우스를 덮은 검은 부직포 지붕 위에 눈이 하얗게 쌓였다. 창문 밖으로 보이는 비닐하우스를 내다보는 재미로 추운 겨울을 지루한 줄 모르고 지내고 있다. 비닐지붕 아래 유리판 위에 놓여 있는 벌통에서 벌들이 편안히 겨울을 나고 있다.

남편과 둘이서 가을의 양광 속에서 겨울을 탈없이 나게 하려고 손을 본 비닐하우스가 당당하게 서 있어 우리를 흐뭇하게 한다. 겨울 추위에 더 따뜻하게 지내도록 하려고 여름을 난 나무벌통에서 겨울벌통인 스티로폼벌통으로 옮겨 놓아 눈과 어울려 하얀 벌통이 정감이 간다.

가을에 물어온 야생 꿀을 채밀하지 않고 두었다가 겨울을 지낼 동안 먹을 수 있게 했다. 정성을 다 해서 돌보아 준 덕인지 별 탈 없이 벌들이 잘 지내고 있는 것 같긴 하지만 침묵하고 있는 벌통 안이 궁금하다. 따뜻한 햇빛이 비추니 몇 마리의 벌이 바깥 사정을 살피려고 나왔는지 들락날락한다.

몇 해 전 벌을 기르기 시작할 때보다 많이 늘어나 지금은 오십여 통이 흐뭇하게 자리 잡고 있다. 그만큼 벌을 늘리기까지의 과정은 세월도 오래 걸렸지만 심혈을 기울인 작업이었다. 벌을 키우는 일은 중노동인데도 늘 벌과 함께 살다시피 하면서 지낸 날이 얼마인가. 벌에 쏘여 고생을 하면서도 틈만 나면 벌에 붙어서 애정과 정성으로 돌보았다.

더위와 추위에 잘 견디도록 장치를 해 주고, 배고프지 않게 먹이를 조절해 주고, 비가 오면 습기가 차지 않도록 비를 가려주고, 눈이 오면 비닐하우스에 쌓인 눈도 쓸어 주면서 사철 붙어서 정을 주고 키운다.

겨울에는 벌들이 둥글게 뭉쳐서 그 원안의 온도를 36도 정도로 유지하면서 계속하여 바깥쪽에 있는 벌과 안쪽에 있는 벌이 교대를 하면서 추위를 이겨내고 있다. 겨울을 잘 나야 초봄에 새끼를 많이 나서 벌이 왕성하게 번성을 하고, 꿀 수확을 많이 거둘 수 있다.

관리를 잘못해서 얼어 죽는 일이 벌어지면 다음 해 봄 꿀뜨기는 포기를 해야 하기 때문에 겨울나기는 양봉농가로서는 가장 중요한 일이다. 어느 해는 관리를 잘못해서 벌이 많이 얼어 죽어 빈 벌통이 늘어가는 것을 보면서 애를 태운 적도 있었다.

한창 재미 붙여 키우던 벌이 죽어 가는 것을 속수무책으로 보면서 애를 태우기도 한다. 그것을 원상태로 회복시킬 때까지의 시간과 노력은 처음 시작할 때보다 더 힘든 일이다. 해마다 기후 변화에 따라 꿀이 풍성하게 나오는 해도 있고, 아까시꿀만 조금 수확하고, 밤꿀과 가을 야생화꿀은 채밀을 못하는 때도 있다.

만병통치약처럼 온 가족이 애용하는 꿀이니 아무리 힘들어도 벌을 키우는 것을 그만 둔다는 생각은 그동안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다. 벌이 번성할 때를 대비하고 분봉할 때 필요할 것 같아 여유 벌통도 20여 개나 장만하여, 추녀 밑에 탑처럼 쌓아 놓아 쳐다보기만 해도 공연히 흐뭇해진다.

벌이 번성할 때를 대비하고 분봉할 때 필요할 것 같아 여유 벌통도 20여 개나 장만하여, 추녀 밑에 탑처럼 쌓아 놓아 쳐다보기만 해도 공연히 흐뭇해진다.

밤과 낮의 일교차가 심하기 때문에 낮에는 열어 주고 밤이면 덮어 준다. 조용하던 양봉장에 다시 벌의 날갯짓소리가 들릴 날을 기다린다. 벌이 겨울을 잘 나고 꿀을 뜰 수 있는 꿈과 희망을 가질 수 있는 재미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삶의 활력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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