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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상국  webmaster@joongang.tv
  • 승인 2019.11.21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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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국 (수필가, 칼럼위원)

| 중앙신문=이상국 |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는 중인데 대문 밖에서 이웃 여인이 찾는다. 큰 일이 벌어졌다. 저 여인이 여기까지 들어오면 낭패다. 화장실 문을 활짝 열어놓고 있는데. 문짝이 멀어 쉽게 닫을 수조차 없다. 여인은 엊그제도 문밖에서 찾다가 대답이 없자 과감히 문을 열고 거실까지 들어왔는데 안 들어온다는 보장도 없다. 안방 문도 화장실 문도 모두 열어 놓았으니 거실까지 들어오는 날이면? 무인지경이다. 이걸 어쩌지.

진땀을 흘리면서 견뎌내고 있을 수밖에시간이 지나자 문밖이 조용해졌다. 아마도 찾는 일을 포기한 모양이다. 다행이다.

요즘 생긴 습관은 화장실 문을 열어놓고 볼일을 보는 것이다. 생각하면 엊그제, 어제, 오늘, 세 번째다. 왜 이 모양이 되었을까. 화장실 문을 닫고 좁은 공간에 앉아 있는 게 불편했을까. 그래도 우리 집 화장실은 세탁기가 있고 샤워장이 있어 넓은 편인데.

평생 살아오면서 이건 안 된다. 저건 된다. 이건 이렇게 저건 저렇게, 안 되는 것, 되는 것, 해야 할 것, 하면 안 되는 것문명화 과정에서 사람이 살아가는 동안의 규칙과 원칙을 배웠고 따라 하면서 살아왔는데 이제는 모두 귀찮아졌다는 말씀인가, 엇나가고 싶은 걸까. 아니면 옛날 어머니를 핀잔한 징벌인가.

하루는 어머니께서 화장실 문을 열어 놓은 채 볼일을 보시는 것을 보고, “이게 뭡니까. 문을 닫으셔야죠. 이 집에 아들들만 사는 게 아니에요. 며느리 손자가 있는데한참 어머니를 책했는데 아차, 내가 화장실 문을 마냥 열어놓고 있는 게 아닌가. 황급히 문을 닫은 바 있다. 어머니의 연세를 따라와 보니 내가 그 꼴이다. 이거 혹시 징벌? 아니면 유전?

아주 오래 전 일도 생각난다.

시골 동네 마지막 집. 그 집 아들 장가드는 날이라 축의금을 전하러 갔는데 너무 일러 문도 안 열고 기척도 없다. 함부로 들어갈 수도 없는 노릇이라 동네 구경 삼아 이 집 저 집 기웃거리는데, 인기척이 감도는 집을 만났다. 중년 여인이 내가 있다는 걸 눈치 채지 못하고 사립문 안마당을 이리저리 서성이고 있다. 새벽 바람 쏘이는 중이겠지. 그런데 여인이 사방을 둘러보지도 않은 채, 주저앉는다. 아침 안개 속에 하얗게 떠오르는 엉덩이와 대퇴부. 자기 집 마당 한가운데 앉아 볼일을 보는 중이다. 하루 일과의 식전 행사인가. 하루 24시간 은밀하게 숨겨두었던 하반신의 화려한 개방인가.

중국 여행 중에 겪은 일도 있다. 기차역 공중 화장실에서 모두들 저런 더러운 사람이 있느냐며 혀를 끌끌 찼다. 내용인즉, 중국인 남자가 변을 보는 데 화장실 문을 활짝 열어놓고 보더라는 것이다. 사람들이 그 모습을 보러 쫓아갔다. 내 생각엔 중국인 남자가 아직 서태후 시대의 문화권에서 깨어나지 못해 도회 생활 적응이 안된 탓일 거라 추측했다.

영화 원초적 본능은 살인범을 쫓는 경찰관의 추리가 주제다. 하지만 실상 격렬하고 찬란한 섹스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강력한 성욕에 따른 인간 동물의 맹렬한 성행위를 표현하고 싶었던 것이고 이걸 놓치지 않고 보아야만 직성이 풀리는 인간의 심리를 이용한 영화다.

하나 원초적 본능은 영화와 같이 성욕, 성행위에만 나타나는 게 아니다. 대자연과 소통하고 싶은 배설행위에서 반란을 일으키고, 식당 밥상 밑의 자유의지를 찾는 여성들의 뻗은 다리들이 그렇고, 중국의 전족이 풀리고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여성 운전이 허용되고 한국에선 맨발 패션이 나오기도 한다. 여름이면 아예 맨발로 도심을 활보하는 여성들이 늘어났다.

문을 여는 것에 익숙한 나에 비해 아내는 잠그는 일에 지독하다. 안방과 거실을 잠그는 것은 물론이고 대문까지 잠근다. 아내가 시집오기 전까지만 해도 시장을 가거나 마실을 가거나 문은 항상 열어 놓고 다녔다.

아내의 잠금질이 하도 심해 도둑맞을 게 뭐 있다고 이리 단속을 하느냐 핀잔을 주면 그래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도둑이 들었다 하면 그 불안한 광경을 어찌 볼 것이며 도둑 든 집이 무서워 어찌 살 것이냐는 반문이다.

창문이고 대문이고 미닫이고 부엌문, 안방, 건넌방, 윗방까지. 하다못해 목욕탕 통풍구까지 잠그고 목욕을 한다. 하기야 아내의 긴 머리는 아름답다. 짧은 머리도 아름답다. 목선이나 희다 못해 푸른색이 도는 투명한 피부와 몸매까지. 잠글 이유야 충분하다지만 관음증 환자라도 있을까 봐 쥐구멍, 눈구멍까지 찾아 막아놓을 정도다.

더운 여름날 선풍기 틀어놓고 자다 죽는 사람이 있다고 TV, 신문, 라디오에서 보고 들었는지, 죽을까 봐 그런 날만 빼고 언제나 꼭꼭 닫아 걸어 잠근다.

나는 문명에서의 탈출을 찾아 질주하고 아내는 문명의 고집으로 단속한다. 나는 열고 아내는 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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