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봉농가의 걱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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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봉농가의 걱정
  • 유지순  webmaster@joongang.tv
  • 승인 2019.11.19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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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지순
유지순 (수필가, 칼럼위원)

| 중앙신문=유지순 | 전화하는 사람마다, 만나는 사람마다 전 세계에서 별이 사라지고 있다는데 우리 벌은 괜찮은지 걱정이 태산이다. 벌 농사 시작한 지 7~8년이 되어 이제 벌 기르는 기술이 손에 익으려하니 벌이 사라지고 있다는 뉴스에 가슴이 서늘하다.

이웃 사과 과수원에서 우리 집 벌 한 통을 가져다가 수정하는데 썼다. 참외 농사짓는 사람도 벌을 빌려 달라고 왔다. 그 직판장에 꿀벌로 수정한 참외라는 가난을 크게 붙여 놓고 구매자들을 끌어들인다. 벌이 사라진다면 우리 같이 벌을 키우는 양봉농가가 제일 먼저 타격을 입겠지만 더 큰 일은 농사를 짓는 사람들이고, 나아가 농작물을 먹고 생명을 이어가는 모든 인류가 걱정이 아닐 수 없다.

우리 양봉장에서는 5~6일에 한 번씩 벌을 점검(내검)한다. 통 안에 가득 차 있는 벌을 보면 마음이 뿌듯했는데 차츰 숫자가 주는 것을 보면 가슴이 철렁한다. 우리 벌도 사라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다.

어떤 생명이든 함께하면 정이 들게 마련이다. 한 통에 2만 마리 정도의 벌이 살고 있지만 어쩌다 한 마리라도 다치거나 죽으면 가슴이 아프다. 벌을 만질 때는 아기 다루듯 살살하고, 벌 집 옆을 지날 때는 놀라지 않도록 조용조용 다닌다. 집에서 기르는 개와 고양이, 소와 마찬가지로 벌도 정이 들어 바라볼 때마다 움직임 하나하나가 귀중하다.

벌은 우리에게 꿀과 로열젤리, 프로폴리스 등을 제공해 주어 소중하게 다루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 행여 병이 날까, 물이나 먹이가 모자라지 않을까, 덥거나 추워 고생은 하지 않을까, 늘 신경을 쓰게 되는 것은 꿀을 많이 얻고 싶은 욕심도 있지만 벌과 정이 들었기 때문이다.

처음 세 통으로 시작한 벌이 7년 여 동안 수십여 통으로 늘어났다. 그만큼 벌을 늘리기까지의 과정은 세월도 오래 걸렸지만 심혈을 기울인 작업이었다. 늘 벌과 함께 살다시피 하면서 지낸 날이 얼마인가. 벌에 쏘여 고생을 하면서도 틈만 나면 벌에 붙어서 애정과 정성으로 돌보았다.

더위와 추위에 잘 견디도록 장치를 해 주고, 배고프지 않게 먹이를 조절해 주고, 비가 오면 습기가 차지 않도록 비를 가려주고, 눈이 오면 바람막이 텐트에 눈도 쓸어 주면서 사철 붙어서 정을 주고 키운 벌이다.

그동안 몇 번 벌이 전멸한 적이 있어, 빈 벌통이 침묵에 잠겨 잇는 것이 얼마나 참담한 일인지 잘 안다. 따뜻한 햇볕이 쪼이면 몇 마리씩이라도 벌이 드나들 텐데 벌통만 덩그렇게 남아 있던 그때의 일은 기억하기도 끔찍하다. 그때는 아직 벌을 다루는 것이 미숙해서 벌이 사라져도 크게 걱정을 하지 않았다.

전 세계적으로 벌이 사라지고 있다지만 폐사의 원인에 대해서는 아직 제대로 규명이 되지 않았다. 병이나 기생충이 원인일지도, 휴대전화의 전자파와 기후변화, 유전자 변형농사물의 원인일 수도 있다는 얘기도 있으니 마음만 탈 뿐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다른 동물들은 병이 들거나 죽으면 원인을 규명하기가 쉽지만 벌은 일을 하러 나가서 집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죽기 때문에 워낙 작은 곤충이라 죽은 벌을 찾아 낼 수가 없어 원인을 알 수 없다는 것이다.

벌떼 폐사 장애가 미국뿐만 아니라 브라질, 캐나다, 유럽, 이제는 아시아까지 번지고 있다고 한다. 현재 미국이나 독일에서 평균 25%의 폐사율을 보이고 일부지역에서는 80%의 폐사율을 보이는 곳도 있다고 하니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인류가 먹는 모든 식품의 3분의 1이 곤충의 수분매개 덕에 생산되는데 이중 80%를 꿀벌이 담당한다고 한다. 양봉농가가 꿀에서 얻는 이익은 벌이 세상에 주는 이익의 10%뿐이고 90%는 농작물이나 자연 속에서 자라는 식물들이 얻는다고 한다.

꿀벌이 사라지면 작물의 수확량이 줄어 인류가 살아가기 힘들 것은 물론이고, 어떤 재앙이 닥칠지 생각조차 하기 두렵다. 이 세상에서 어지간히 어려운 일은 사람의 힘으로 해결되지 않는 것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원인을 알 수 없는 자연재해는 불가항력이니 앞이 캄캄할 뿐이다.

훼손된 것이 원상태로 회복할 때까지의 걸리는 시간과 노력은 처음 시작할 때보다 더 힘든 일이다. 하루빨리 벌이 사라지는 원인을 규명해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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