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자의 소혜(笑慧)칼럼]촌지(寸志)와 뇌물(賂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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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자의 소혜(笑慧)칼럼]촌지(寸志)와 뇌물(賂物)
  • 중앙신문
  • 승인 2017.08.09 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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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자(수필가, 칼럼위원)

내가 대학을 졸업하던 60년대 초반에도 요즘처럼 취직하기가 무척 힘들었다.

여러 곳에 이력서를 내 보았지만 번번이 실패하고 고향으로 내려갔다. 아르바이트로 학생들을 가르치기 시작하여 6개월간 돈을 모아 다시 서울로 올라와 초등학교 교사 채용시험을 보았다. 다행히 합격하여 교직생활을 약 5년 간 한 경험이 있다.

그때는 중학교시험이 있을 때라 학부모들의 치맛바람이 대단했고 교사들은 1학년과 6학년 담임을 서로 맡으려고 하였다. 처음 1년은 3학년을 담임했고 주로 1학년과 6학년을 맡게 되었다. 학부모들이 자유롭게 학교에 드나들며 수업도 참관하고 사친회라 하여 교사와 학부모가 모여 회의도 하고 학부모끼리도 회장을 뽑아 활동을 했다.

입학식이나 새 학년이 시작되면 학부모회장은 촌지를 모아 담임선생님에게 바치는 일이 통례가 되던 시절이다. 명단을 적어서 금액을 쓰고 합계를 내어 회장이 선생님께 봉투를 건넨다. 두툼한 촌지 봉투를 받은 선생님들은 서로 보여주며 액수에 따라 성의가 많은 반을 부러워도 했다. 나도 예외 없이 그 촌지 봉투를 받아들고는 누가 제일 많이 냈나 훑어보며 기분이 좋아 더 열심을 내어 가르쳤다. 그때는 별 양심의 가책도 없이 받았고 다른 선생님들과 견주어 보기도 했으니 얼마나 소탐대실한 행동이었던가. 세월이 지나 문득 지난날을 되돌아보는 시간만 되면 늘 그 촌지 봉투가 크게 자리하여 나를 부끄럽게 만든다. 누가 나에게 과거에 무엇을 했느냐고 물어도 교직에 있었다는 말을 치부로 여겨 대답을 피한다. 지금 생각해도 내 일생을 통하여 가장 오점을 남긴 후회스런 일이다.

촌지란 ‘마음이 담긴 작은 선물’이라고 국어사전에 적혀있는데 자모 대표가 독려해서 거둬들인 돈이니 마음에 없어도 할 수 없이 자기자식에게 더 신경을 써 달라고 억지로 성의를 표한 학부형도 많았을 것이다.

10여 년 전 손자의 담임선생님을 만나러 초등학교 3학년 교실을 찾아간 적이 있다. 나는 옛날 생각만 하고 케이크 상자 위에 촌지 봉투를 얹어 선생님 책상위에 몰래 놓고 왔다. 이튿날 손자가 봉투하나를 들고 들어오면서 “할머니! 이 편지 선생님이 할머니 갖다 드리래요” 한다. 나는 깜짝 놀랐다. 촌지봉투가 되돌아 온 것이다. 케이크는 여러 선생님과 나누어 먹었으며 손자는 잘 보살필 테니 걱정하지 마시라는 짤막한 글을 동봉해 돌아온 것이다. 서울에서 지방학교로 전학을 온 손자가 마음이 놓이지 않아 선생님을 찾아가 무례한 일을 저지른 것이다. 그동안 세상이 제대로 바뀌고 있는 줄도 모르고 엉뚱한 짓을 한 할미가 된 자신이 부끄러웠다. 그래, 이렇게 변한 게 정석이지 그런 생각을 하며 선생님들에 대한 믿음이 바로 서게 되었다. 이튿날 손자의 학교에 다시 찾아가 새로 지은 학교라 갖춰야 할 시설이 많을 것 같다면서 학교발전기금으로 써 달라며 금일봉을 서무실에다 맡기고 왔다.

뇌물이란 ‘공적인 책임이 있는 사람을 매수하여 법을 어기고 자기를 이롭게 해 달라고 주는 돈이나 물건이다’라고 적혀있다.

90년대 초, 주유소 폴 사인을 세우고 간판도 걸었는데 준공이 나질 않았다. 소장을 채용해서 거처를 마련해 주고 얼마가 지나도록 개업을 못하고 있으니 애가 타고 막막했다. 준공 검사필증이 나오지 않는 이유를 알아낸 다음 나는 꽃다발 속에 편지와 뇌물이 든 봉투를 숨기고 새로 부임한 군수님을 찾아갔다. 건축허가를 받을 당시에는 도시계획상 도로확장이 안 되어있는 상태에 맞춰 캐노피 위치를 정한 것이 문제가 된 것이라고 적었다. 언젠가 확장공사가 실행된다면 그 때 반드시 캐노피를 줄이겠다는 약속의 편지를 쓴 것이다. 군수실을 뒤로 하고 나오면서 비서에게 몇 번이나 굽실거리며 절을 했는지. 부탁을 한다는 게 이토록 사람을 주눅 들게 하는지를 미처 몰랐다.

이튿날 군 직원이 현장 조사를 나왔다. 샅샅이 다 돌아본 후 알았다면서 어제의 봉투를 도로 놓고 가는 게 아닌가. 내가 준 뇌물이 되돌아온 것이다. 커다란 플래카드와 만국기를 내걸고 개업식을 하는 날 군수님이 찾아오셨다.

그 당시 군수는 임명제여서 표를 의식하거나 인심을 얻을 일도 아닌데도 말이다. 행정 착오로 오랫동안 개업을 못하게 해서 죄송하다고 인사차 오셨다니 그분의 고매하신 인격이 존경스러웠다. 청렴하고 일 잘하시는 분으로 소문이 나더니 훗날 N대통령 시절 청와대로 들어가 일하신다는 소식을 듣고 무척 기뻤다.

지금은 청탁금지법(김영란법)까지 생겨 촌지나 뇌물을 받는 공직자는 징계를 받거나 파면을 당하는 시대이다. 마음속으로부터 우러나온 작은 선물은 서로의 정을 표현하는 한 방법이어서 이웃이나 친구끼리의 사이를 더욱 돈독하게 하는 나눔의 정표가 되지만, 돈이 오가는 촌지나 뇌물은 삼가야 한다. 가끔 공직자의 부모상이나 자녀의 결혼식 때 받는 부의금이나 축의금이 뇌물로 둔갑을 해서 물의를 빚기도 하여 요즘은 그 액수도 규제하고 있다. 뇌물을 받는 것은 불로소득(不勞所得)으로 주는 사람 받는 사람 모두가 범법자가 된다. 큰 액수를 받은 게 세상에 알려지면 인격에 흠집을 낸 비굴한 모습으로 카메라 앞에 서게 된다.

뇌물(賂物)은 사람의 뇌에다 돈이나 물건을 도둑처럼 몰래 숨겨 넣고는 그 사람을 유혹하는 음흉한 속셈을 가진 괴물(怪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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