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촌의 세상 돋보기]바둑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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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촌의 세상 돋보기]바둑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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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7.07.20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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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촌(수필가, 칼럼위원)

| 중앙신문=중앙신문 | ‘한 수 하련’

‘좋죠’

휴일에 부모 집에 다니러 온 사십대 중반의 아들을 보고 아버지가 바둑판을 준비하면서 건네는 대화다. 딱히 할 일이 없었던 모양인지 부자는 들마루에 바둑판을 앞에 놓고 마주앉았다. 아들은 오른쪽 다리를 힘 있게 끌어올려 양반 다리를 하더니 허리와 목에 힘을 주어 자세를 꼿꼿이 했다. 그것은 바둑을 두기 위한 편한 자세이기도 하지만, 상대방에게 오늘은 자신 있다는 몸으로 보내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아버지와 아들은 바둑 실력으로는 2급 정도로 맞수다. 나는 커피와 블루베리 한 접시를 바둑판 옆에 갖다 놓고 부자가 바둑 두고 있는 느티나무 밑을 서성거린다.

나도 바둑 가는 길을 알 정도이기 때문에 가끔 바둑판을 들여다보면서 응원을 보내기도 한다. 두 사람의 바둑 실력이 동급이라고는 하지만 아들이 조금 밀리기 일쑤이니 나는 아들 쪽에서 훈수를 든다. 물론 서로가 용돈을 벌기 위한 내기 바둑인지라 조심스럽기는 하다. 사십여 년 전 푸른 시절에 바둑을 두려고 바깥으로 도는 남편을 집안으로 불러들이기 위해 바둑을 배웠다. 아이들이 어릴 적에는 아빠와 엄마가 바둑 두고 있는 곁에서 바둑알로 집을 짓기도 하고 가운데 손가락을 엄지손가락 안으로 꼬구려 넣었다가 바둑알을 퉁기는 게임을 하면서 놀았다. 그러던 아이들이 대여섯 살이 되면서부터 오목을 두기 시작했고 아빠 엄마가 바둑 두는 것을 어깨 너머로 보고 바둑 수를 읽기 시작했던 것이다.

아이들이 초등학생이 되면서부터는 가족 중에 두 사람만 짬이 생기면 바둑을 두게 되었고, 휴일이 되어 온 가족이 조용한 시간을 낼 수 있는 날이면 리레이전을 벌이기도 했다.

추운 겨울에는 뜨듯한 아랫목에서 바둑을 두었고, 세상 사람들이 더워 죽겠다고 아우성치며 피서 가는 삼복에도, 우리는 대청마루에서 수박 한 덩이 갈라놓고 바둑을 두며 휴가를 보냈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에도 바둑 바람이 불고 있다. 어린이들에게 바둑을 가르치려고 학원에 보내는가 하면 자치단체에서도 바둑을 ‘두뇌 스포츠’로 관심을 가지고 지원해 주고 있는 모양이다. 그런데 이왕에 아이들에게 바둑을 가르치려고 마음먹었으면 엄마가 먼저 배워 보자. 언뜻 보면 그것이 꼭 수학 문제를 푸는 것 같아서 머리 아파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쉽게 바둑의 원리를 알 수 있게 되고, 또 바둑돌이 가는 길만 알면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재미있는 것이 바둑 두는 일이다.

요즘 사회 돌아가는 것은 보면 인생을 좀 살아 본 사람으로서 염려되는 부분이 많다. 무엇보다 정서적으로 가슴이 메말라 있고 인내심이 부족하다가보니 이런저런 사고 소식으로 놀랄 때가 많다. 커가는 자녀들이 영어 단어 하나 더 외우고 컴퓨터 좌판을 잘 두들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바르고 따뜻한 인성과 인내심을 길러주는 일이다. 따라서 인생살이와 닮은 구석이 많은 바둑은 기다리는 습관, 즉 인내심을 길러주기도 하지만 무리하게 욕심을 부리다가보면 소중한 삶을 그르치고 만다는 메시지를 주기도 한다.

가족들이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같은 취미를 갖는 것은 우선 온 가족이 함께 할 수 있으며 또 공통된 화제를 만들 수 있어서 바람직하다. 시대가 시대니만큼 가부장적인 권위만으로 자녀들을 따르라고 하기는 어렵다. 공통된 취미를 가지고 함께 즐기면서 자연스럽게 인생을 이야기하다가 보면 핏줄의 끈끈한 정에다가 동지애까지 보태어져 한결 화목한 가족 관계가 이루어질 것이다. 거기다가 모름지기 부모님의 메시지가 전달되어 정서적으로도 안정이 된다.

한 인간의 인성은 대부분 어린 시절에 만들어진다. 따라서 어린 시절에 자연스럽게 몸에 벤 좋은 성격과 습관은 바르고 아름다운 사회의 근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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