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자의 소혜(笑慧)칼럼]경어(敬語) 유감(有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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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자의 소혜(笑慧)칼럼]경어(敬語) 유감(有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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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7.07.12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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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자(수필가, 칼럼위원)

| 중앙신문=중앙신문 | 나이가 들면서 피부가 탄력을 잃고 거칠어 져서 한 달에 한 번씩 피부 관리를 받으러 간다.

일흔이 넘은 나이에 관리를 받아봤자 별 수 없다고 생각하면 별수 없는 결과가 나오지만 나는 그런 생각으로 자신을 위해 돈을 쓰지 않는다.

따뜻한 침대에 누워있으면, 젊고 예쁜 피부관리사가 내 머리 위에 서서 보드라운 손으로 나의 주름진 얼굴을 살살 문질러준다. 이런 저런 멘트를 해 가며 순서대로 마사지를 해주고 팩도 해 준다. 역시 ‘내 돈이 내 딸 노릇을 하는 구나’ 그런 생각을 하며 편안하게 푹 쉬는 기분으로 관리를 받아왔다.

관리를 받으러 온 사람은 여자뿐만 아니라 남자도 가끔 눈이 띄어 놀랐다. 나란히 앉아서 기다리다가 이름을 부르면 간호사의 안내를 받아 관리실로 들어간다.

그러다 어느 날 부터인가 그녀들의 하는 말이 내 귀에 거슬리기 시작 했다.

“여기가 옷장이세요”

“이게 가운이세요. 옷을 갈아입으시고 7번 침대로 가세요.”

침대에 누워서 눈을 감고 관리사가 조근 조근 하는 말을 듣는다.

“크린싱 들어가세요”

“이제 끝났습니다.”

“저, 매니저분 따라 가세요”

“여기가 레이져실이세요”

피부 관리는 잘 받았지만 어울리지 않는 존댓말을 듣는 기분이 거북스럽고 언짢았다.

옛날에 들은 이야기가 생각났다. 어느 대가에서 종부가 될 신부 감을 고르고 골라 자부를 삼았다고 한다. 도무지 존댓말을 모르고 자랐는지 며느리가 시아버지 호칭을 시아배요, 아배요 하고 부르는 게 아닌가. 종가 맏며느리의 말솜씨가 그 모양이니 듣다 못한 시아버지가 며느리를 불러 앉혀놓고 교육을 시켰다.

“어른에게는 존댓말을 써야 하는 법이다. 말에다 님자(字)를 붙여서 아버님! 어머님! 하고 불러야 한다.” 며느리는 “예” 하고 대답했다.

더운 여름날, 밥상에 앉아 있는 시아버지를 본 며느리가 하는 말이 “아버님의 대갈님에 파리님이 앉아계셔요” 했다니 참으로 기가 찰 노릇이다.

요즘엔 어디를 가나 이상한 존댓말을 듣게 된다. 외식 후 커피를 마시려고 설탕이 어디 있느냐고 물으면 종업원의 대답은 “설탕은 저 쪽에 있으세요” 하면서 알려준다. 그 뿐인가 병원진료비를 계산할 때도 “천오백원이세요”라고 말한다.

가족에 대한 존댓말도 듣기 거북할 때가 많다. 남편의 병수발을 하는 제수에게 시숙이 동생의 근황을 물어오면 “요즘, 진지도 잘 잡수시고, 밤에는 잘 주무십니다”고 말을 하니 어느 나라 공대법인지 알 수가 없다.

백화점에서도 ‘소비자는 왕이다’라고 하여 고객에게 친절하고 공손하게 물건을 파는 건 좋은 일이다. 그러나 공손이 지나쳐 “고객님, 이것이 더 좋은 신상품이세요” 라고 말한다면 그건 잘못된 존댓말 사용법이다. 사물에다 존대를 붙여 주체존대의 오류를 범하고 있는 셈이다.

피부 관리를 받기 시작한 지 몇 달 후 직원들과 눈인사를 나눌 정도가 되었을 때 나는 그들의 잘못된 경어 사용을 바로잡아 보려고 C일보 오피니언 란의 기사-“엉터리 존대법, TV의 책임이세요” 를 오려서 30장을 복사해 가지고 갔다. 매니저를 불러 직원들에게 나눠주고 읽어보라고 권했다. 인터넷이나 TV를 통해서 틀린 어법에 익숙해진 젊은이를 깨우쳐주려고 한 일인데 효과가 있으리라 기대해 본다.

다행히 우리나라 최고의 H백화점에서 몇 년 전에 판매사원이 무의식적으로 남용하는 잘못된 존댓말을 바로잡는 캠페인을 벌인 적이 있다. 고객을 대하는 예절에 맞는 공대말교육까지 겸하여 가르치는 참 좋은 경영방법이란 생각이 들었다. 나도 올바른 존댓말을 사용하는 똑똑한 점원이 있는 H 백화점의 고객이 되어야겠다.

서비스 업종에서나 대인관계의 대화에서 남용되고 있는 잘못된 존댓말 사용을 바로잡는 노력이 있어야겠다. TV를 통해 ‘우리말 겨루기’ 같은 퀴즈프로를 만들어 우리말을 바르게 알도록 하듯이, ‘높임말 바로 잡기’에 대한 프로도 만들어 방영 한다면 효과가 있으리라고 본다.

잘못 말하는 경어는 듣기에 거북한 유감스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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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출 2017-07-21 10:32:50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김융기 2017-07-20 19:37:01
글 잘읽었습니다.
꼭읽어 보아야할 좋은 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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