얘들아! 그냥 놔 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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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들아! 그냥 놔 둬
  • 이상국  webmaster@joongang.tv
  • 승인 2019.11.14 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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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국 (수필가, 칼럼위원)
이상국 (수필가, 칼럼위원)

| 중앙신문=이상국 | 우측통행이 시작된 지 오래된다. 그래도 우측통행이 불편하다. 좌측통행이 좋았는데. 인습이란 게 무서워 오른손잡이에게 왼손으로 밥 먹으라는 것만큼 불편하다. 지하철을 탈 때나 복도를 걸을 때도 왜 이리 혼잡한지 살펴보면 남들 다 우측통행인데 나만 좌측통행인 것이다.

언제부터 국민들이 이렇게 말을 잘 들었지. 나만 도덕관념이 떨어진 듯하다. 요즘처럼 불편하게 하는 것이 우후죽순 생겨나 여간 신경 쓰게 하는 것이 아니다. 우편번호를 바꾸고 주소를 바꾸고 자동차 번호판을 바꾸고 호적부를 폐지하고…. 그것들을 꼭 바꾸고 폐지해야 하는지. 물론 시대에 맞지 않아, 편리성을 추구하다보니 꼭 그렇게 해야 한다면 할 말은 없다. 그러나 전 국민의 반수 이상이 원하지 않으면 그대로 두고 국민의 대부분이 원한다면 신속하게 바꾸는 게 당연하다.

좌측통행을 할 때, 우리들은 왜 좌측통행을 하는가에 대한 당위성 역사성 시사성이 라디오에서도 나왔고 TV에서도 나왔다. 인간이 장구한 역사를 거치면서 중세 때는 창으로 무장하고 다녀 적을 손쉽게 제압하려면 창이 잘 먹히는 방향, 창이 우측에서 좌측으로 돌아가며 찌르기 때문에 항상 우측통행을 하였다. 반면 근대에 들어와 총으로 무장하면서 좌측에서 우측으로 먹혀드는 총의 속성 때문에 좌측방향으로 걷게 된 것이라는 모종의 법칙에 의해 우리는 오랫동안 좌측통행을 원칙으로 알고 그렇게 해 왔다.

그런데 이게 뭐냐. 갑자기 우측통행을 하라니. 왜?

일본의 잔재, 운행 중인 자동차와 일정거리 확보, 마주보는 자동차의 위험 대비, 외국의 대부분이 우측통행, 운반 중인 수하물과 수하물의 충돌 방지 등등… 이지만 아직도 우측통행에 불만이 많은 나다. 우선 오래된 인습에 역행이라는 것. 적으로부터의 대비는 우측보다는 좌측이 더 설득력이 있다는 것. 층계를 오르거나 복도의 좌측엔 손잡이가 설치돼 있지만 우측엔 없어 고령자는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는 점, 그리고 그걸 모두 떼어 우측으로 바꾼다는 것도 국가적 차원에서 적지 않은 돈이 필요하다는 점. 그래도 찾아보면 더 많이 있을 것이다.

주소지도 마찬가지다. 우선 일제의 잔재라는 국민적 반일감정에 호소했을 것이다. 그러나 주소지 지번이 우리에겐 훨씬 낯익은 집 찾는 방법이다. 내비게이션도 그렇다. 내비게이션이 완전히 개발이 안 돼서 그런지 대개의 사람들이 아직도 지번 주소지를 선호한다.

얼마 전 교육청에서 학교 이름 바꾸기 운동을 벌인 일이 있다. 우선 일본식 이름을 폐기하고 학교의 정체성을 찾아준다는 구호를 갖고 나왔다. 신선했다. 그러나 아직도 일제식 이름을 폐기하지 못하고 그대로 사용하는 부락의 이름이 잔존하고 있는데 쉽게 고쳐질까. 두개 면을 하나의 면으로 통폐합하면서 한 면의 이름 첫 글자를 따고 또 다른 면의 이름 마지막 글자를 합해 만든 이름. 이것을 원래대로 복원한다면 행정구역을 다시 뜯어 고쳐야 하고 각각의 지적 측량을 다시 해야 하며 지번, 도형을 모두 다시 조사 작성해야만 한다.

컴퓨터가 나오고 디지털, 자동화, 3D세상이라지만 그렇게 호락호락한 것이 아니다. 일제가 제작해 놓은 지적도는 아직도 그대로 사용되고 있다. 이것이 우리나라 행정의 실제이다. 박원순 시장의 ‘서울로 7017’에 소요된 비용은 700억, 연간 운용비는 43억, 광고홍보비 700억 원이라 한다. 박원순 시장이 처음 서울시장이 되었을 때, 시장이 되면 무엇을 하겠냐는 질문에 ‘실적 없는 시장이 되고 싶다(언젠가 매스컴에서 들은 말이다)’고 한 말을 좋아했다. 그런데 정치 물을 먹다보니 생각이 바뀐 모양이다.

우리 집 가까이 초등학교가 있다. 초등학교 정문이 꽤 넓다. 교장이 바뀔 때마다 정문이 바뀐다. 처음엔 주차장이 되었다가 다음엔 주차선이 없어지고 다시 교문이 되었으며 다음에 화단이 되고 그 화단도 얼마 후 없어졌다가 다시 생성됐다가 소멸하기를 여러 차례. 그리고 다시 화단이 생겨나더니 아예 두껍고 높은 시멘트 콘크리트 구조물로 화분을 만들었다. 그 후 교장이 바뀌어도 다시는 바뀌지 않았다. 그런데 교문 바꾸기는 절대 교장의 주머니에서 나온 돈이 아니라는 말씀이다.

교장뿐 아니다. 서울시장의 ‘서울로 7017’ 또한 그렇다.

인간은 높은 자리에 앉기만 하면 자기 치세 남기지 못해 안달이 나는 모양이다. 국민들은 정치인의 치세보다 왜정 때의 구닥다리 지적 정보보다 우리 손으로 만든 정확한 지적도를 보는 게 시급한 일이다.

얘들아! 제발 그냥 놔 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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